2004년 8월 9일에는 10ㆍ26사건 당시 육군본부 고등검찰부와 보통검찰부의 부장으로서 김재규부장을 '내란목적살인죄'로 기소했던 전창렬 씨가 초청되었다.
김삼웅 위원 : 참고인께서 김재규 씨를 총 몇 시간 정도 신문하셨습니까?
참고인 전창렬 : 만난 것은 한 30시간 정도는 만나서….
김삼웅 위원 : 다섯 차례, 30시간 안팎을 신문하면서 직업인으로서 신문을 하셨겠지만 인간적으로 봤을 때 과연 김재규 씨가 앞서 밝힌대로 이런 것을 시도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적인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이 드는지, 그런 느낀 점 있었습니까?
참고인 전창렬 : 그것이 내심의 의사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얘기는 못하고, 두 가지 생각이 다 있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삼웅 위원 : 신문을 하실 때 사상계 사장이었던 장준하 씨 유족을 도왔다든가 정구영 씨 에게 편의를 봐 드렸다든가 하는 부문에 대해서는 신문이 없었습니까?
참고인 전창렬 : 그것은 그때 제 자신이 몰랐기 때문에, 거기서 얘기를 하지 않는 한 제가 알지를 못했기 때문에 묻지 못했습니다.
김삼웅 위원 : 그런데 거사를 하고 초기에는 상당히 경황 없이 허둥대고 그랬다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아까 참고인께서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그런 것을 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는 우발성일 수가 있고 또 한가지로 보면 전혀 정치한 계획이 없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민주화를 위해서 자기 한 몸을 던졌을 수도 있고, 두 가지로 유추가 되거든요.
그러면 참고인께서는 그때 한 3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에 그런 조사를 할 때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까?
참고인 전창렬 : 아까도 얘기했습니다마는 여러 가지 요소가 다 혼재되어 있는데 더 강한 것을 보면 개인적인 압박감, 스트레스 이런 것이 많이 작용했고 그렇게 하려면 이 좋은 시기에 자기가 표면에 나서서 한번 이것을 해 보자 이런 집권욕이라는 것이 더 강했지 않느냐 이렇게 판단이 들었습니다.
김삼웅 위원 : 집권욕도 강했다고 그러면 그렇게 당장 자기가 총지휘를 해야 될 위치 같은 것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았고, 바로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측근들한테 물어볼 정도로 그랬다 그러면 자기가 집권을 하기 위해서 거사를 기도했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치로 봤을 때 조금 맞지 않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참고인 전창렬 :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러냐하면 아까도 얘기했습니다마는 그런 전후의 행적이 오로지 민주화를 위해서 했다는, 어떤 내심의 의사라는 것은 그분의 과거 행적 속에 드러나야지 추단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판단이 들고,
그 다음에 예를 들면 사후라도 그런 목적이라고 한다면 정말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각오로 유서를 하나 쓰든가 망명을 하든가 자살을 하든가 이렇게 해서 자기 주장을 정정당당하게 그 당시에 했어야 되지 않느냐, 국방부에서 장시간에 걸쳐서 눈치 보고 그런 과정으로 봤을 때 그때는 직권 해석이 막연하고 나이브한 생각이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그런 식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 않느냐 이렇게 판단이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