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도심을 흐르는 작은 규모의 천을 하천으로 부르지만, 하천법에 따르면 하천은 '지표면에 내린 빗물 등이 모여 흐르는 물길'을 모두 뜻합니다. 강이든 개울이든 모두 하천인 셈입니다. 다만 규모에 따라 국가하천, 지방하천, 소하천으로 나뉩니다. 강처럼 큰 물길은 국가하천이고, 조그맣게 흐르는 실개천은 소하천에 속합니다.
오래전 '가재 잡고 도랑 치던' 농촌 마을의 개천 역시 소하천일 것입니다. 그 옛날, 마을에 흐르던 천은 물놀이뿐 아니라 빨래나 목욕 등 물이 필요한 일이면 언제든 찾는 장소였습니다. 각자 집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지금과 달리, 이웃과 얼굴을 마주할 소통의 장이었던 셈입니다.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된 건 급수를 따질 필요 없이 깨끗한 물이었기에 가능했을 테죠. 이 역시 지금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하천이 오염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공장이나 폐기물 매립장 등 특정 오염원을 넘어, 농약이나 도로 위 먼지,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가 빗물을 만나 하천으로 흘러들기도 합니다. 차량 매연 역시 대기 중에서 하천으로 녹아들며, 합성세제는 하수처리로도 완전히 제거되지 못해 그대로 쌓여갑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그 뿌리는 비슷합니다. 이렇듯 각종 산업과 화학기술의 발달은 유례없는 '풍요'를 불러왔지만 그만큼 더 많은 오염요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충북 옥천의 하천도 예전의 모습과 깨끗한 환경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마을 개울가'가 과거 얘기가 됐듯, 천을 즐기는 현재의 모습도 추억 속 그림이 될 것입니다. 대청호를 통해 우리가 사용할 물이 되고, 금강을 넘어 바다까지 이어진다는 사실 역시 하천 환경을 가꿔야 할 이유입니다.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하길 바라며, 계속 지켜가고픈 옥천 하천의 풍경과 이미 지나간 풍경을 함께 담았습니다.
[금구천] 여름엔 물놀이, 겨울엔 눈싸움
어느 뜨거운 일요일, 다리 밑 금구천에서 청량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 지금 뛴다!" 1번 선수가 먼저 물속으로 뛰어든다. 공중에 뜬 찰나, 팔다리를 쭉 뻗어 한껏 멋진 자세를 취한다. 곧이어 2번 선수도 망설임 없이 첨벙! 물보라가 사방으로 튄다. 잠깐 잠수했다가 수면 위로 내민 얼굴엔 웃음이 가득. 보기만 해도 시원한 이 선수들에게 '불쾌지수'는 남의 이야기다. 오로지 유쾌한 순간.
"주말마다 놀아요. 비 올 때 빼고요." (채종원 학생)
피서를 즐기던 채종원(삼양초 3), 채종혁(옥천중 1), 김대우(삼양초 4), 김정우(삼양초 6), 노종민(삼양초 4) 학생은 모두 같은 태권도장 출신. 낮 12시쯤 만나 자전거나 킥보드로 옥천읍 한 바퀴를 돈 다음, 좀 덥다 싶으면 하천에 뛰어든다. 한참 놀다 저녁때가 되면 헤어지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방랑 피서객'인 셈.
"해수욕장은 코로나 때문에 못 가요." (김정우 학생)
겨울엔 물놀이 대신 눈싸움이다. 코로나19로 어딜 가기도 힘든 시기, 함께 놀며 계절을 난다. 그렇게 물놀이가 한창일 때 자전거를 탄 또 다른 학생들이 다가온다.
"거기 재밌어?" "어, 여기 깊어!" "들어가 볼까?" 하천 위쪽에서 놀던 친구들의 합류로 다이빙장은 만석. 이제 곧 저녁인데, 오늘은 왠지 해가 질 때쯤이나 집에 돌아갈 것 같다.
[보청천] 시원한 천변에서 캠핑을
마찬가지로 뜨겁던 어느 토요일 오후. 청성면 한두레권역 '너와두리캠핑장'이 야영객으로 북적인다. 캠핑장 앞으로는 보청천이 흐른다. 수심이 깊어 물놀이를 할 순 없지만,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시원한 기분.
눈앞엔 푸른 산과 하늘이 어우러져 시야를 탁 틔워준다. 답답한 도심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늘 밑 간이 의자에 앉아 풍경을 즐기다 보면, 편안한 마음에 달달한 졸음이 스르르 찾아온다.
"지난해 여름에도 왔어요. 시설도 깨끗하고 족구장도 있어서 좋아요. 원래 여름에는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안 되더라고요."
대전과 너와두리캠핑장은 약 1시간 거리로 가까운 편. 형제들과 함께 4인 캠핑 자리 3동을 빌렸다는 박혜숙씨 역시 대전에서 찾아왔다. 여러 번 방문할 만큼 만족스러웠다고. 가까운 덕분에 금요일 저녁 퇴근 후 바로 출발하기에도 부담 없다.
"공기도 되게 좋아요. 밤에는 별도 많고 시원하죠." (박혜숙씨)
청주에 사는 채현우 어린이도 단골 야영객 중 한 명이었다. 이모네와 함께 한 달에 두 번은 찾아온다고. 물놀이를 할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사촌 동생과 함께 보청천에서 낚시하거나 공놀이하며 추억을 쌓는다. "캠핑 와서 산 보며 놀면 힐링 되는 느낌이에요."
[서화천] 비가 와도 좋지 아니한가
옥천읍 오일장이 열리던 토요일 오후, 군서면 월전리 구진벼루에도 피서객들이 찾아왔다. 서화천 물길 따라 높다란 벼랑이 이어진 곳. 피서철마다 다른 지역 방문객으로 북적인다는 이곳은 좋은 낚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날은 쨍쨍하던 해가 쏙 숨더니 이내 소낙비가 쏟아졌다.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실내에 잘 못 가니까 바람도 쐴 겸, 물이 좋아서 왔어요."
대전에서 온 남길도씨 역시 낚시를 하던 중이었다. 옥천에 일터가 있어 근방으로 종종 낚시 여행을 떠난다고. 이날은 친구 부부와 함께 피서 차 이곳을 찾았다. 부산이 고향인 이들은 청년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인연이었다.
"여기는 처음이에요. 원래 이원면 용방리에 있는 금강 본류 쪽으로 자주 갔죠."
비가 와도 문제없는 이유는 성왕교 밑에 자리 잡은 덕분. 시원한 빗소리가 오히려 운치 있다. 그 모습을 감상하며 물에 발 담그고 두런두런 얘기 나누니 편안할 따름. 어느덧 더위는 물러가고, 더없이 쾌적한 '바람'을 쐬던 한때였다.
[군서면 사정리] 청정한 물 흐르던 '마을 삶터'
"옛날엔 마을 앞 천에서 고기도 잡아먹고 다슬기도 잡고 놀았어요. 그때는 물이 깨끗했어." (김영헌씨)
오늘날 곁을 내어주는 하천 너머엔 '옛일'이 된 추억이 숨어있기도 한다. 구름에 해가 가려 조금은 덜 더웠던 어느 날, 군서면 사정리 경로당 앞 정자에 모인 구억말 마을 어르신들이 옛이야기에 들뜬다. 경로당에서 큰길로 걸어 나가면 보이는 서화천 유역이 그 무대. 구진벼루만큼 크진 않지만 어울려 놀기엔 모자람 없었을 하천이다.
"지금은 더러워지고 말도 못 해. 저 위에서 공장도 막 들어서서." (차분서씨)
기억하기로 1960~1970년대만 해도 하천은 깨끗했다. 여름엔 물놀이, 겨울엔 썰매를 타며 놀던 곳. 빨래나 김장도 하천에서 했다. 깜깜한 밤이면 목욕하던 곳도 하천이었다.
"마을에 샘이 없으니까 그랬지. 배추를 이고 가서 김장했어. 서로 이집 저집 품앗이처럼 했지." 찬물에 손이 얼었지만 그래도 "옛날이 좋았다"는 차분서씨. 다 함께 빨랫거리나 배추를 들고 하천을 찾던 그때가 그립다고. 지금이야 세탁기 버튼 몇 번이면 끝이니 몸은 편하다. 하지만 마주한 이웃과 함께 방망이질하며 얘기를 나누던 모두의 빨래터는 이제 없다.
"그땐 하천물도 그냥 마셨어. 물고기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 옛날에는 돌로 보를 쌓아서 그 돌 틈새에 고기도 많았는데 지금은 전부 다 세멘(시멘트) 보 아니여. 그래서 하천에 서식을 못 해." (김재인씨)
[청산면 판수리] 추억이 담긴 물길, 계속해서 흐르길
청산면 판수리 주민들 역시 마을에 흐르는 '개울'과 추억이 많았다. 결혼 후 적어도 50년 이상 판수리에 살았다는 이정숙, 김순득, 안정옥씨가 예전 기억을 더듬는다. 마을회관 바로 옆 자리한 하천은 보청천 유역. 20~30년 전만 해도 물도 좋고 물고기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만하지 않다. 수심이 얕아 제방이 없던 과거에는 맨발로 건너다녔던 작은 동네 개울. 지금은 높은 제방에 폭도 더 넓어졌다.
"전에는 세탁기도 없고 집집마다 우물이 없었어요. 공동 우물에서 길러다 먹고 그랬죠. 그러니까 개울에서 빨래할 수밖에 없었지, 뭐." (이정숙씨)
이곳 하천도 공용 빨래터였긴 마찬가지. 빨래판도 없던 시절, 널찍한 돌 위에서 옷을 빨았다.
"다른 마을은 비 안 오면 도랑이 안 흘러갈 정도로 물이 없었어. 그래서 논에 있는 둠벙(웅덩이)에서 빨았지. 우리 마을은 개울이 있어서 좋았어요." (안정옥씨)
지금처럼 논에 댈 물을 제공하는 저수지가 없던 때 하천이 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흙을 더 파서 웅덩이를 만들고, 그 물을 타래박으로 퍼다가 모심기에 사용했다. 이래저래 중요한 생활기반이었던 셈. 판수리에서 나고 자란 최은식 이장은 하천에서 놀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옛날에는 학교 갈 때마다 제방 위로 걸어 다녔죠. 그럴 때 친구들이랑 다 같이 수영도 하고 그랬어요." (최은식씨)
청산중학교로 향하던 등굣길. 판수리 외에 목동, 덕지리, 의동, 효목리 마을 친구들과 함께 천변 따라 걷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소하천 정비사업을 통해 마을 하천 경관을 가꾸기 시작한 이유도 어릴 때부터 보아온 하천에 애정이 있기 때문. 무성해진 풀과 나무를 베고, 채인 흙을 걷어내 물길을 다시 흐르게 했다.
"내년쯤에는 왕벚꽃나무를 심을 예정이에요. 나무를 심어놓으면 더 관리하게 되겠죠." 지난 6월에 시작한 정비사업은 9월까지 이어질 예정. 최은식씨는 풀과 흙을 정기적으로 관리할 인력이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소하천 정비는 10년에 한 번쯤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기도 하다.
"추억이 있는 곳이니까, 그래서 가꾸는 거죠."
기억 속 하천과 지금 우리 곁의 하천. 앞으로도 맑은 물길과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게 된다.
월간 옥이네 통권 50호(2021년 8월호)
글·사진 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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