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을 통해 '식량안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식량안보란 "국가가 인구 증가, 천재지변(天災地變) 등의 각종 재난,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도 항상 국민들이 일정한 수준의 식량을 소비할 수 있도록 적정 식량을 유지하는 것"(두산백과)이다. 이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면서 수입 농산물이 우리나라 식탁물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수입 농수산물인 생커피콩(76.4%), 멥쌀(62.2%), 사료용 옥수수(56.5%), 제분용 밀(52.6%), 사료용 옥수수(43.0%) 등의 가격이 상승했다. 제분용 밀 가격이 오르면서 밀가루, 국수, 라면 등의 가공식품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이미 식용류 가격은 많이 올라서 한때 대란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주요 식품 기업의 식용유 가격이 지난해 동일 기간보다 작게는 23.0%, 많게는 24.5% 올랐다.
문제는 가격 상승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농산물 수출 제한에 나서는 국가들이 속출하면서 세계 식량 위기·식품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농산물 가격들이 오르는 가운데에서도 반대로 가격 하락을 고민해야 하는 농산물이 있다. '쌀'이 그러한 농산물이다.
쌀 소비 위해서... 전통주 활성화가 중요
통계청 자료를 보면 5월 15일자 산지 쌀값은 20kg 기준 4만 6538원(80kg 기준 18만 6152원)으로 조사됐다. 전년도 같은 기간을 비교해 보면 0.9%(405원) 하락한 것이다. 이것은 작년 풍년에 따른 생산량 증가와 쌀 소비의 지속적인 감소, 그리고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소비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특히, 작년 2차 시장격리 이후에도 산지 쌀값 하락세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기에 공급 과잉된 쌀 15만 톤 이상을 다시 시장격리 해야 한다는 농업계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올해 1월 27일 발표한 '2021년 양곡소비량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kg이며, 이는 전년 57.7kg 대비 0.8kg 감소한 수준이다. 반면, 총 쌀 소비량은 680천 톤으로 2020년 650천 톤 대비 30천 톤으로 4.6% 증가하였다.
업종별로는 도시락류, 면류, 떡류, 식사용 조리식품의 수요가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이중 도시락류의 제조업은 전년 대비 16% 증가하는 등 즉석밥 등의 식사용 조리식품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집에서 밥을 해먹기 보다는 외식이 많아졌거나 많은 부분을 도시락 등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증가한 것이다.
최근 젊은 세대들의 입맛의 변화 및 탄수화물의 섭취 제한 등으로 인해 쌀 소비를 증가시키는 정책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밀가루를 대체할 만큼의 새로운 쌀 가공제품의 개발이 어렵다 보니 기존 면류, 떡류에 밀가루를 소량 대체하는 형태로 쌀 소비를 증가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집에서 먹던 한끼 식사를 대체 하는 정도의 쌀 소비가 대부분이어서 추가적인 쌀 소비 증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추가적인 쌀 소비를 위해 기호식품인 전통주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사실 술은 그동안 쌀 소비에 있어 떡류 다음으로 소비가 많이 되는 제품이었다. 최근 도시락 등에 밀려 3번째 소비 제품으로 내려갔지만 아직 쌀 소비에 큰 역할을 하는 시장임은 틀림없다.
과거 술 통한 쌀 소비 늘어나자 '금주령'도
과거 역사를 보면 술로 인해 쌀 소비가 너무 많이 되다보니 문제가 된 적도 많았다. "한양에 들어오는 쌀이 죄다 '삼해주' 만드는 데 쓸려들어가니 이를 금함이 옳습니다." 조선 영조 때 형조판서 김동필이 올린 상소문의 내용이다.
삼해주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주로 다른 술에 비해 쌀이 많이 사용되는 제조법을 가졌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고종 2년에도 대왕대비가 쌀이 많이 들어가는 삼해주 빚기를 금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큰 인기를 끌다보니 결국 금주령까지 불러온 술이 바로 삼해주다.
현대에 와서도 먹을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쌀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대표적인 것이 막걸리 등에 대한 쌀 사용 금지이다. 정부는 1963년 2월 22일 열린 제15차 각의 의결사항에 따라 3월 1일부터 막걸리 원료로 백미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조치를 취하였다.
1964년에는 사용 원료의 2할 이내로 백미 사용을 허용하는 조치가 취해져서 쌀 20%, 밀가루 80%의 막걸리가 나왔으나, 이마저도 1966년 8월 28일부터 백미 사용이 전적으로 금지되었다. 이처럼 쌀의 소비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술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통주가 많이 소비될수록 쌀의 소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술의 쌀 사용량은 다른 쌀 가공품의 사용량보다 많다. 한 예로 2017년 안동시의 조사에 따르면 안동지역 7개 양조 업체가 연간 소비하는 쌀의 양은 570t가량으로 80kg 짜리로 7천 가마에 이른다고 한다. 이 소비량은 안동지역에서 한 해에 소비되는 쌀(1만 540t)의 5.4%가량을 차지할 만큼 많은 양으로 술 제조에 있어 쌀의 소비량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증류식 소주 대중화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 소주시장의 10%를 우리농산물로 만든 증류식 소주가 차지하게 되면 매년 쌀 3만 6천 톤을 더 소비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꼭, 증류식 소주일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전통주들은 지역의 쌀을 소비한다. 전통주의 소비가 많아지면 막걸리든 약주이든 그 지역의 쌀들이 소비가 늘어가게 된다.
많은 부분이 수입 원료로 만들어지는 쌀 가공제품에 비해 전통주는 우리 쌀과 농산물 소비를 하는 제품이다. 국산 쌀 소비 증진 대책에 전통주 소비 확대 만 한 게 없는 이유이다. 조금 더 전통주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전통주의 소비가 증가된다면 우리 농민들의 쌀 소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