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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봄, 쉼터 모습
올해 봄, 쉼터 모습 ⓒ 노일영
 
마을 회관 앞 데크 위에다 쉼터를 만들기 시작한 건 순전히 반장 때문이었다. '경남공익형직불제'라는 공익 실천프로그램의 지원금 300만 원을 받아서 쉼터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반장이었고, 모두 다 바쁜 가을걷이 시기에도 주민들을 압박해서 데크로 모이게 만든 사람도 반장이었다.

그런데 쉼터를 만드는 첫날, 점심을 먹기도 전에 반장의 팔목이 부러져 버렸다. 팔목의 상태는 꽤 심각했다. 반장은 팔목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무려 4일이나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반장이 수술비와 입원비를 합쳐서 200만 원 가까이 지출한 걸 보면, 마을의 욕쟁이 할머니인 천산댁이 늘 주장하는 "뭐를 할라 카믄 손모가지라도 하나 내걸고 해뿌야 지대로 되는 기라꼬"라는 말이 좀 과하게 실현된 셈이다.

마을 주민들의 반응을 보면 반장의 부상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다만 시작 단계에서 팔목이 부러져서 다들 놀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주민들의 반응

형틀 목수 출신인 명섭이 아재는

"이런 거 맨드는 거는 손재주하고 아무 상관이 엄는 기라. 현장 경험이 중요한 기지. 그란데 반장이 지 손으로 꼴랑 닭장 하나 맨들어 노코, 이거 맨드는 거를 너무 우습게 보더라꼬. 정신머리가 마 글러 묵은 거 아이가."

명섭이 아재를 따라다니며 형틀 목수 생활을 한 춘길이 아재도

"현장 생활을 안 해봐가꼬 조심성이 한 개도 없더라꼬. 그카믄 마 다칠 일밖에 없는 기라. 반장이 맨든 닭장도 사실 개판 아이가! 닭장에 넣어놔도 맨날 닭들이 밖에서 놀고 있더구만. 그기 무신 닭장이고."

현장 팀장 역할을 한 남편은

"반장님의 야망이 반장님을 삼킨 거지 뭐. 야망은 너무 컸고, 의욕은 너무 강했고, 경험은 전혀 없었고, 의자는 너무 흔들렸지.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반장님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시작한 일인데, 잡일이 아니라 뭔가 제대로 돕고 싶었겠지."

욕쟁이 천산댁은

"그 씨X노무 쌔끼가 불쌍한 기라. 이거 쉼턴지 뭔지를 맨들라 카믄 누구 하나 손모가지를 걸어뿌야 되는 긴데, 반장 그 쌔끼 손모가지가 당첨이 됐뿟는 거 아이가. 다들 반장한테 고맙다 캐라. 반장 손모가지 아이었으믄 너거뜰(너희들) 손모가지가 날아가뿟을 끼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내사 마, 반장 그노무 새끼, 첨부터 꼴 봬기 싫었다 아이가. 중핵교·고등핵교 댕길 때, 노상 패싸움이나 하고 밭에 들어가가꼬 서리나 하던 놈 아이가. 그캐 노코 나이 좀 처묵고 다시 고향에 기내리 와가꼬, 무신 도덕군자 매로 이래라저래라 카는 거 보믄, 우습지도 않더만. 다 자업자득 아이것나."

반장이 팔목이 아프다며 병원으로 떠난 뒤, 남편과 두 아재는 현장에 있는 의자를 모두 치웠다. 반장이 서까래를 건다며 의자에 올라갔다가 의자에서 떨어져 팔목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남편과 두 아재는 조금 귀찮아도 비계와 사다리만 이용해서 서까래를 걸었다.

반장이 병원으로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팔목이 부러져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세 사람은 말없이 작업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작업의 속도는 무척 빨랐다.

뜨악한 관계

하지만 평화롭고 조화로운 시간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형틀 목수 생활을 한 두 아재가 서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두 아재의 변화된 태도에는 분명 남편의 잘못도 있었다.

관람객 입장에서도 남편이 두 아재를 대하는 모습에 뜨악했기 때문이다. 수컷들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남편과 두 아재를 보니, 이건 인간관계가 아니라 서열을 기반으로 한 주종 관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만약 두 아재가 형틀 목수 출신이 아니었다면,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두 아재도 동네에서 목수라는 말을 들어왔고, 작업을 좀 하다 보니 쉼터 만드는 일에도 적응이 됐고, 결정적으로 나이도 어린 남편의 명령에 가까운 지시를 따르는 것에도 점점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남편이 지붕에다 폴리카보네이트를 고정하고 있다.
남편이 지붕에다 폴리카보네이트를 고정하고 있다. ⓒ 노일영
 
"아이고, 아저씨! 육각 피스를 그렇게 그쪽에다 넣으면 안 된다니까요. 피스가 길어서 나무 밖으로 튀어나오잖아요. 보기에도 안 좋고···."

"허허, 위원장. 작업은 보기 좋은 게 중요한 게 아이라, 튼튼한 게 최고 아이가. 피스가 밖으로 좀 튀나오믄 어떻노. 어차피 사람들 움직이는 동선 안에 있는 것도 아이잖아."


남편은 못마땅한 표정이었고, 명섭이 아재는 그래서 어쩔 건데, 하는 태도였다.

"아저씨, 옆에서 나무들이 서로 물어주고 있고, 가새(좌우 두 기둥과 상하의 보 또는 토대로 짜인 벽체 구조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지른 나무 막대나 쇠)도 많이 붙였기 때문에 육각 피스로 굳이 그 작업을 하실 필요가 없다니까요!"

"거참, 현장에 나가믄 내 시다나 해뿔 자네가, 꼴랑 집 하나 맨들어 노코, 2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한 내한테 이래라저래라 카는 기가? 내 목수 짬밥이 얼만데, 여서 내가 이딴 소리를 들어야 되는 기고, 거참 더러버서···."

  
이 대화가 오간 뒤 남편과 두 아재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남편은 혼자서 작업을 했고, 두 아재는 육각 피스가 없어질 때까지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오늘 얼추 기본 뼈대가 마무리되었으이까네, 내일은 하루 쉬믄 되것네."

명섭이 아재가 우두머리가 된 것처럼 결정을 내리고, 춘길이 아재와 유유히 사라졌다. 남편은 나무 밖으로 튀어나온 육각 피스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씨X, 내가 미쳤지. 저딴 노인네들하고 일을 시작했으니."

"쫌, 그만해! 동네 아줌마들이 다 듣잖아!"

"시X, 그 영감들 귀에 들어가라고 욕하는 거잖아. 형틀 목수 일과 집 짓는 목수 일은 완전 다르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은···."


수컷들이란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예상했던 대로 남편은 집에 없었다. 역시나 남편은 아침도 먹지 않고 쉼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명섭이 아재가 쉬자고 했으니, 남편은 쉬지 않을 게 뻔했다.

명섭이 아재와 춘길이 아재는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침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두 아재는 남편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주를 홀짝거리며 두 아재는 옛날에 형틀 목수 생활을 할 때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욕쟁이 천산댁이 나타났다.

"X발, 젊은 기나 늙은 기나 다들 꼴값 떨고 앉았네. 저 지랄들을 하는 거 보믄, 뭐 달린 거뜰은(것들은) 아새끼들 낳을 때 빼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라. 다들 뭐 하는 기고? 어데 영화 찍나?"

남편은 천산댁의 말을 듣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두 아재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천산댁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아이고, 이 영감탱이들아! 반장 손모가지를 쉼터에다 바치노코 이 지랄을 떨고 싶나? 너거뜰 행실을 보이까네, 너거뜰은 술을 입구녕이 아이라 X구녕으로 처묵어야 되지 싶따."

다음날 남편과 명섭이 아재는 지붕을 덮을 폴리카보네이트를 사러 전남 광주로 향했다. 남편은 혼자 가려고 했지만, 명섭이 아재가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어색한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오후 2시경 69만 3천 원어치의 폴리카보네이트를 싣고 돌아온 두 사람은 출발할 때의 어색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수컷들이란! 나는 정말로 우리 동네 수컷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지붕에 놓인 폴리카보네이트
지붕에 놓인 폴리카보네이트 ⓒ 노일영
 
 폴리카보네이트로 지붕을 덮기 전
폴리카보네이트로 지붕을 덮기 전 ⓒ 노일영
 
 완성된 지붕
완성된 지붕 ⓒ 노일영
 
지붕을 폴리카보네이트로 덮고 나서, 하루가 지난 뒤 주민들이 모여 기념사진 겸 경상남도에 제출할 증명사진을 찍었다. 쉼터 완성 후 다음날 사진을 찍은 이유는 반장의 퇴원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반장은 왼팔에 두툼한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반장은 아주 행복하고 만족한 얼굴로 쉼터를 등지고 카메라를 향해 김치를 외쳤다.

#협동조합#마을기업#이장 #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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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함양으로 귀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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