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0 19:54최종 업데이트 23.04.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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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 오동도의 여순사건 기념관에 있는 ‘손가락총’ 조형물. 당시에는 손가락질만으로도 빨갱이로 몰려 무고한 민간인이 불법학살되는 일이 빈번했다. ⓒ 이돈삼

 
나는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고 여행의 일부는 글로 기록하고 정리한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막히자 나는 90일가량 휴전선 인접 지역에서 한국전쟁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관련 자료를 찾아 늦깎이 공부를 하면서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연재 글의 제목은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처음에는 24편으로 구상했지만, 한국전쟁 전후 흐름을 담아보자는 과욕으로 36편으로 늘어났다. 이 여행기는 <중앙일보>의 주말신문 격인 <중앙SUNDAY(선데이)>에 지난해 4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이미 앞선 3년 동안 <변방의 인문학>을 중앙선데이에 연재한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한 달에 한 편씩 4주 간격으로 9회까지 실렸다.

중앙 측 "여순은 다루지 말아달라" 주문

그런데 지난해 12월 말에 실려야 할 10회차 원고가 빠져버렸다. 한국전쟁 전 일어난 여순 10.19 사건을 다룬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묻지마 총살, 1만여명이 사라졌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인쇄 직전에 PDF 파일을 받아 내가 최종 확인까지 했는데 그날 밤 인쇄에서는 빠져버린 것이다. 내 원고가 실려야 할 28면에는 다른 필자의 연재가 들어갔다.


신문에 실리는 글이란 게 한 주 정도는 밀릴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심상치 않았다. 연재가 불발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1월 26일에야 담당 기자를 통해 '국장단'과 간접적으로 대화를 했다. 느릿한 대화가 오갔고 또 다시 거의 한 달이 흐른 뒤인 2월 20일에야 10회 원고는 아예 싣지 않을 것이니 '그것(여순10.19)'을 건너뛰고 다음 글로 이어달라는 입장을 통보받았다.

10회차 글의 주제는 여순10.19였다. 그들이 싣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내 글이 "국장단 판단으로는 피해자 혹은 민초 쪽에 무게를 더 실어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순 내용은 패스하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 달라"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여순'은 다루지 말라는 말이었다(이 모든 연락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루어졌고 나는 그 대화 내용을 아직도 저장하고 있다).

나는 여순10.19를 건너뛰자는 연락을 받고 4시간 반 만에 <중앙선데이> '국장단'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연재를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중앙일보> 매체에 연재한 것이 다 합쳐서 6년 정도였다. 그러나 연재 중단을 결정하고 통보하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이에 <중앙선데이>에 내 생각을 서신으로 알렸다. "여순10.19는 현재,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사회적 합의인 여야 합의에 의해 제정된 실정법에 의해 피해자 구제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피해자 쪽에 무게를 더 실어서 게재할 수 없다는 방침은, 전적으로 귀사의 의사결정이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여순10.19는 대한민국의 건국에서 중요한 한 걸음이었고 그 명암은 아주 뚜렷합니다. 그것을 빼고 한국전쟁에 이르는 한국현대사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부족한 글을 오랫동안 실어준 데 대해서는 감사의 뜻을 표하지만,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새로운 국장단의 새로운 편집방침에 맞춰 여순10.19를 빼고, 영혼이 빠져나갈 것이 뻔한 글을 싣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것으로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을 중앙선데이에 게재하는 것은 중단하겠습니다."

그때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아야 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쟁통에 벌어지는 민간인들의 죽음이다. 폭격이란 행위로, 예방이란 조치로, 진압이란 명분으로 민간인을 학살한 것이 그렇다. 백보를 양보해서 전쟁이란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역사 앞에서는 겸손하게 성찰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한 것이 그들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달라도 다른 것 자체로 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글이 아무리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여행기에 지나지 않지만, 다른 지면이 아닌 내 글에 대한 이런 방침에 '내 생각'을 묶어두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을 설득할 능력이나 힘도,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그건 내 상식과 다르다고 말할 뿐이다.
 

여순 사건 당시 미군이 기관총을 든 가운데, 운동장에 모여있는 여수시민의 모습을 찍은 사진. 이후 좌익과 부역자를 가려내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고 손가락질 하나만으로도 빨갱이로 몰려 불법 학살을 당했다. ⓒ 심명남


왜 나는 다시 <오마이뉴스>에 쓰는가

연재를 중단하니 숙제 하나가 없어졌고 몸과 맘이 그만큼 가벼워졌다. 그러나 한국전쟁 연재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욕구가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또 다른 연이 작동해서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것이 거론됐고 하기로 했다. 잘나거나 내놓을 만한 글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공부하자고 했었는데 진도가 3분의 1만 나간 채 미결로 남겨두는 게 거북하고 찜찜했다. 

고백하건대 허접한 글이지만, 약간의 사회적 의의도 견강부회로 붙였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여순10.19를 빼고 말할 수는 없고, 그것도 피해자의 입장을 억누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굳이 내 입으로 한번 더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 대목에서 제지당했으니까. 그리고 이것을 디딤돌 삼아 한국전쟁 답사 곳곳에서 느낀, 때론 소소하고, 때론 소름끼치고, 때론 울컥하던 소감을, 글을 읽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나눠보고 싶다.

더불어 <중앙선데이>에서 게재 거부당한 여순 원고를 공개한다. <중앙선데이> 국장단이 걱정한 것처럼 이 글이 피해자 혹은 민초 쪽에 무게를 더 실었는지는, 그래서 논란이 될 정도인지는 읽는 사람들이 각자 판단할 일이다. 

윤태옥 작가의 여순 10.19 사건 <중앙선데이> 삭제 원고 바로보기 

   

2022년 12월 31일자 <중앙 선데이> 28면. 9회 넘게 이어진 한국전쟁 연재의 10번째 편인 여순 10.19 사건은 지면화되지 못했다.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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