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2 04:43최종 업데이트 23.06.12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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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수사관들이 5일 압수수색을 위해 국회 의원회관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실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바야흐로 압수수색 시대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은 워낙 자주 쓰여 신물 나고, 요즘은 압색공화국이란 말이 더 실감난다. 툭하면 압수하고 여차하면 수색한다. 탈탈 털어 그러모으면 뭔가 나올 테니까. 덤으로 '별건'도 챙기고.

경찰은 5일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데 이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서다. 같은 혐의로 지난달 30일에는 MBC 임현주 기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임 기자의 속옷 서랍까지 들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 의원과 임 기자는 한 장관의 개인정보가 담긴 국회 인사청문회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는 데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의 정당성 논란과 별개로 윤석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압수수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증거를 확보하려는 수사절차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빈도가 높고 형평성에 어긋날 때가 많다는 지적이다. 수사권 남용을 넘어 정치보복과 공포정치의 도구라는 비난까지 쏟아진다.

압색공화국
 

지난 5월 23일 강원 춘천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 앞에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과 경찰이 경쟁하듯 벌이는 압수수색은 흡사 굶주린 포식자 같다.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잔뜩 담긴 휴대전화 압수는 기본이고, 컴퓨터의 각종 파일, 통화기록과 문자메시지 등 통신자료도 확보한다. SNS 계정과 이메일도 뒤진다. 필요에 따라 금융 계좌와 신용카드 사용 명세까지 조사한다. 한 사람의 일상과 삶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파헤치는 것이다.

압수수색은 경찰과 검찰만 하는 게 아니다. 지난 2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경남본부와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강원지부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보듯이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 국가정보원이 전면에 나선다. 군사기밀유출 혐의와 관련해서는 군 수사기관도 민간인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 넉 달째 진행 중인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 사례다.

수사기관 관점에서 압수수색은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수사를 하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다.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를 확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압수수색 영장의 남용과 악용이다. 수사 범위를 벗어난 먼지떨이 압수수색은 별건 수사나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킨다. 종종 근거도 없이 추측이나 예단만으로 영장을 집행한다. 마치 진단을 제대로 못하는 의사가 일단 환자의 배를 가른 다음에 환부를 찾으려는 꼴이다.

압수수색 대상자는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낙인찍히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여기에는 압수수색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언론 보도도 한몫 한다. 특히 정치적 사건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다. 압수수색이 다 성공적이거나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언론에 요란하게 보도된 압수수색 중에는 맹탕도 적지 않다. 이른바 전시용 또는 압박용 압수수색일 때 더욱 그렇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된 시민언론 <민들레>는 지난 1월 사무실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후 대표를 비롯한 몇몇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세 차례 더 진행됐다. <민들레> 측은 "명단을 입수한 것 외 다른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며 "얻어갈 게 없는 보여주기식 압수수색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 장관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된 정치인과 언론인 압수수색은 수사 필요성과 별개로 보복성으로 비치는 면이 있다. 최강욱 의원과 한 장관의 지독한 악연은 널리 알려져 있고, MBC 기자는 이른바 '바이든 보도'의 주역이다. 게다가 고위직 인사청문회 때 일종의 관행이던 국회(의원)와 언론매체(기자)의 정보 교류에 갑자기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영 어색하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걸릴 의원과 기자가 한둘이 아닐 테다.

2020년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진행했던 박은정 검사(현 광주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도 지난해 8월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검찰은 박 검사의 친정부모 집까지 압수수색했다.

박 검사에 대한 수사는 2020년 12월 보수성향 변호사단체의 고발에서 비롯됐다. 윤 총장 감찰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 등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검찰이 이듬해 6월 무혐의 처분하자 이 단체는 항고했다. 서울고등검찰청이 재기수사 명령을 내린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해 6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박 검사는 친정집이 수난을 당한 직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저는 '수사로 보복하는 것은 검사가 아니라 깡패일 것'이라고 주장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의견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 기준이 사람이나 사건에 따라 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잘못된 수사 관행을 비판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모든 죄는 걸린 죄"라는 말과 "공정하지 않은 수사는 하지 않음만 못하다"라는 말이다. 형평성과 공정성을 잃은 수사는 권력과 정의에 대한 환멸을 자아낼 뿐이다.

윤석열의 부인과 이재명의 부인, 그리고 천공
 

지난 1월 17일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박범계 위원장과 원내대표단 등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부인들에 대한 수사를 비교해 보자. 이 대표의 부인 김혜경씨는 남편이 경기도지사를 지낼 때 법인카드를 유용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주로 측근 배모씨의 범행으로 인정되고 김씨는 아직 기소되지 않았지만, 관련 업소 129곳에 대한 압수수색이 말해주듯 경찰의 수사 의지는 강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면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혐의에 대한 수사는 특혜 시비에 휘말렸다. 2021년 12월 '주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공범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 사건에 깊숙이 발을 담근 김 여사는 단 한 번도 조사받지 않았다. 검찰은 비판적 여론이 고조되자 서면조사를 했다고 슬그머니 밝혔다.

김 여사는 또 대선 때 허위이력 의혹과 관련해 시민단체와 교육단체 등에 의해 사문서 위조, 업무방해, 사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다. 역시 대면조사는 없었고 서면조사로 대체했다. 관련 대학이 5개나 되지만, 어느 대학이든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조국 사건 초기, 검찰이 관련 대학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김 여사의 혐의에 대해서는 범죄 여부를 떠나 대체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반론도 만만찮지만, 수사가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대신 대선 기간에 김 여사의 허위이력 의혹 수사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한 시민이 가택 압수수색을 당했다.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당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후보자의 이름이나 사진 등을 명시하는 현수막을 게시해서는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 90조 1항을 위반한 혐의였다.

지난 2월 <권력과 안보>라는 책을 통해 역술인 천공이 대통령 관저 선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도 강도 높은 압수수색을 당했다. <권력과 안보>의 소재는 그가 대변인 재직 시 써둔 일기다. 천공 관련 의혹은 남영신 전 육군참모총장의 '전언'에서 비롯됐다. 책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일 남 총장은 부 대변인에게 천공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와 함께 서울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육군 서울사무소에 나타났다는 '현장보고' 내용을 알렸고, 부 대변인은 이를 일기에 남겼다.

대통령실의 고발로 촉발된 그에 대한 수사는 경찰과 군 양쪽에서 진행 중인데, 압수수색을 벌인 쪽은 국군방첩사령부였다. 책에 담긴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관련 내용이 군사기밀에 해당한다는 게 수사 명분이다. 이에 대해 부 전 대변인은 대부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2월 23일 오전 방첩사 수사관들은 부 전 대변인의 아파트 주차장에 잠복했다가 외출하려는 그를 막아서고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함께 집으로 올라갔다. 압수수색은 24시간을 넘겨 이튿날 오전에야 끝났다. 수사관들은 물론 부 전 대변인과 변호인도 꼬박 밤을 새웠다.

부 전 대변인 주변 인물들도 수난을 겪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와 가까운 군 관계자 몇 명이 참고인 또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중에는 사무실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도 있다. 이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부 전 대변인의 다른 혐의(별건)를 찾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편 의혹의 핵심인물인 천공은 경찰의 출석 요구를 계속 거부하다가 끝내 서면진술서 제출로 갈음했다. 이에 대해 언론계에서는 경찰이 천공의 입에만 의존하지 말고 그를 수행하는 측근들의 휴대전화와 차량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시기의 동선과 행선지를 확인했다면, 참이든 거짓이든 의혹의 실체가 드러났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참고인에 대해서는 필요시 압수수색도 벌이면서 천공에 대해서는 유난히 참고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소극적 수사로 일관한 이유가 뭔지 의아해하는 국민이 많다.

"권력이 권력을 저지해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 연합뉴스


무분별하고 과도한 압수수색은 법조계에서도 논란거리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압수수색 영장 청구 시 사전대면심문을 도입하는 형사소송법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판사가 직접 검사나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압수수색이 꼭 필요한지 따져보겠다는 방안이다. 애초 6월 도입을 목표로 추진했는데, "수사의 신속성과 밀행성을 해친다"는 검찰의 강력한 반발에 한발 물러선 상태다.

6월 2일 대법원 형사법연구회와 한국형사법학회는 '압수수색 영장 실무의 현황과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영장 발부 경험이 있는 현직 법관과 검사, 변호사, 법학자 등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법원 측은 "범죄 입증과 무관한 전자 정보에 대한 과도한 압수수색이 이뤄질 수 있다"며 "사전대면심사로 인권 침해나 사생활 노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사전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검찰 측은 "수사가 지연되고 수사 사실 자체가 새나갈 수 있다"고 반대했다.

수사기관 종사자들이 진실이 아닌 권력을 섬긴다면 국민적/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함부로 쓰기 마련이다.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 효율성을 중시하는 검찰의 논리도 가볍지 않으나 '압색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법원의 견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곧 국민의 견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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