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찬 일입니다. 불에 타 영정으로 남게 된 가족 앞에 49재 음식을 올릴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먼 한국 땅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지... 참사로 가족들을 잃고 폭염과 폭우 아래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사측·정부와 싸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난 6월 24일 발생한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로 희생된 노동자 23명의 유가족들이 참사 현장에 마련된 영정을 앞에 두고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아래 가족협)·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11일 오전 11시 참사 현장 앞에서 49재를 치렀다.
유가족과 친지·시민 등 참석자 200여 명은 폐허가 된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떠올리면서 비통함 속에 예식을 지냈다. 참가자들은 아직도 가족을 잊지 못해 통곡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위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재발 방지 대책 마련·유가족-사측 교섭 재개'를 위해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49재 전 진행한 추모식에서 김태윤 가족협 공동대표는 "49재까지 합쳐 세 번째 참사 현장에 왔지만, 지금까지도 어떠한 것도 해결된 것이 없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고 휘어진 철근들을 볼 때마다 불길 속에서 죽어갔을 가족들이 떠올라 괴롭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은 위험물질인 배터리가 폭발해 1000℃가 넘는 화마 속에서 목숨을 잃었음에도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지난 7월 5일 교섭 이후 자취를 감췄다"라며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실을 알고 싶다고 강조했음에도 고용노동부와 경찰 등 행정당국은 참사 후 어떻게 수사가 되고 있는지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또한 "유가족들은 가족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싶다"면서 "원청 아리셀·에스코넥의 박순관 대표를 즉각 구속수사하고, 유가족들이 추천한 인사와 함께 민·관 합동 조사기구를 설치해 진상을 명백히 규명해달라"고 호소했다.
대책위 공동대표로 참석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들을 죽인 이들은 유가족들이 49일 동안 생지옥을 경험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서 "이 49재를 통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치열하게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황옥철 광주학동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와 김미숙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대표도 "최근까지 일어난 사회적 참사들은 모두 '관공서의 관리감시 소흘'이란 공통점이 있다"면서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지금까지 잘 싸웠던 것처럼 앞으로도 함부로 죽음이 농락당하지 않도록 올바른 길을 만들 수 있도록 올바른 길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고 위로를 전했다.
추모식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주관 아래 진행된 49재서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들을 올렸으며,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진상규명을 이뤄낼 것을 다짐하면서 하얀 국화를 헌화했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승려들의 독경에 유가족들은 고인들의 이름을 부르고 박 대표를 구속하라고 통곡했으며, 49재 마지막 순서로 희생자들의 위폐를 태울 때 참석자들은 깃발가를 함께 부르며 앞으로의 투쟁에도 끝까지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오는 17일에는 참사 55일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마련된 희망버스 55대가 아리셀 참사 현장을 찾아 가족협·대책위와 함께 진상규명 촉구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