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의 글 중에 오늘에 되새겨야 할 글에 <군법행주부(軍法行酒賦)>가 있다.
<군법행주부>는 한(漢) 나라의 고조(高祖)와 해제(惠帝)가 죽고, 고조의 비(妃)인 여태후(呂太后)가 정권을 전단할 때, 고조의 손자 유장(劉章)이 여러 여씨들과의 연회석상에서 주리(酒吏)를 맡아 음주(飮酒)를 군법(軍法)에 의거 실행한 것을 두고 쓴 글이다.
군법행주부
술은 병기(兵器)와 같은 것이니
그치지 않으면 스스로 망하게 된다
하물며 즐거움도 지나치면 어지럽게 되나니
진실로 술자리에서는 절제해야만 마땅하리라
대체 어떤 사람인가, 저 유씨(劉氏)의 아들은!
당당한 기상이 산과 같이 우뚝하도다.
의연하게 비상한 법을 정하여
비상한 어려움에 대처하였도다
이 사람은 바로 발란반정(撥亂反正)할 큰
그릇이었으니
어찌 졸장부 같은 사람이었으리오?
일찍이 그 할아버지가 무예를 좋아하여
예의를 태만히 하고 앞세우지 않았다
술에 취해 칼을 뽑아 기둥을 치기도 하였으니
어찌 손님 사이에 질서인들 있었겠는가?
집안의 어른이 죽고 난 뒤에
시끄럽게 뭇 자손들이 바지락거렸지만
어미는 제멋대로 하고 아들은 용렬하고 신하는 거만하여
나라는 위태롭고 법도는 흔들렸다
저 여러 여씨(呂氏)들이 유씨(劉氏)의 천하를 노려
궁궐을 자기 집 문지방으로 여기면서
벼슬을 주고 빼앗는 것도 제 마음대로 하고
게다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태워버릴 듯, 깔아버릴 듯, 죽여버릴 듯하여
온 집안이 모두 적국 사람이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시시한 예의로 이들을 제압하려 한다면
산을 뽑는 것보다 오히려 어려웠으리라
굽실굽실 머리를 숙이고 그들의 명령을 듣는 것은
또한 주허후(朱虛侯)가 편안히 여기는 바가 아니었다
연회석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보니
창을 잡고 방으로 들어올 듯하였다
어찌 그들이 깔보는 정도에만 이르고 말겠는가?
세력이 커지면 도모하기 어렵고 기회도 없으리라
번쩍이는 흰 칼날이 허리에 있으니
떨쳐 일어나 한번 쳐서 덮치고 싶었으리라
하물며 군령을 숭상하는 것은
바로 한(漢) 나라 왕실의 법도임에랴!
이는 여씨(呂氏)도 안심하던 것이어서
또한 거슬리지 않고 허락을 받았던 것
이윽고 한 사람이 명령을 범하자
문득 손발이 잘려버렸다
만좌한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실색을
하였으니
사지가 떨릴 뿐 아니라 간담도 서늘했다
다들 말하기를, "주도(酒道)를 잃어 목 벨 만하였으니
진실로 법을 범하였다면 어찌 목숨을 보존하리오?
유장(劉章)은 가장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니
우리는 삼가 피할 따름이다"고 했다
예전엔 이리처럼 날뛰고 범처럼 고함치더니
이제는 머리를 조아리고 죽음에 나아가네
여씨 세력 끝날 때까지 아무도 그를 어쩌지 못했으니
이는 실로 그날 술자리에서의 사건 때문이었다
우뚝히 한 시대의 견고한 요새를 진압하였으니
저 예의나 익히는 사람과 견주어보면 어떠한가?
여기서 알 수 있으니, 사람은 의기가 없을 수 없고
의기가 없는 남자는 남의 미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안타깝게도 저 한나라 왕실엔 법도가 없어서
군법으로 그 일을 해내었도다
제왕의 궁정은 피 흘릴 곳이 아니거니와
칼과 톱은 음악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예의로 제압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어디 있으랴!
군신은 하늘과 땅처럼 그 분수가 다르잖은가!
이부자리도 오히려 어지럽혀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지엄하신 천자 앞에서랴!
하늘의 험함을 체득케 하는 데는 예의만한 것이
없나니
사람이 누가 하늘을 이기겠는가?
고조(高祖)의 한 외로운 손자여
얻으면 유씨 천하요 잃으면 여씨 천하이니
아마도 이 또한 필부의 행실인가 하노라
거듭 탄식하거니와, 예의가 없으면 나라가 망하나니
유씨 천하가 여씨 천하로 되지 않았음이 요행이로다. (주석 1)
주석
1> 앞의 책, <남명집>, 158~16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