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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을 찬 선비, 남명 조식 상 방울을 찬 선비, 남명 조식 상
▲ 방울을 찬 선비, 남명 조식 상 방울을 찬 선비, 남명 조식 상
ⓒ 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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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살이던 1571년 선조가 경상감사를 통해 남명에게 음식을 내려보냈으나 상소하여 사양 하였다. 산림처사로서 군왕의 호의를 받을 수 없다는 겸양이었다. 12월 21일 갑자기 등창으로 병을 얻었다.

병환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듬해 초부터 옥계 노진, 동강 김우옹, 한강 정규, 각재 하항 등이 찾아와 문병하였다. 동강이 "혹시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 마땅히 어떤 칭호를 써야 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남명은 "처사(處士)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2월 8일 몸체에서 숨을 거두었다. 1월에 경상도 감영에서 남명에게 병이 있다고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은 특별히 전의를 파견하였지만, 전의가 도착하기 전에 남명은 세상을 떠났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경의(敬義)의 중요함을 제자들에게 이야기했고, 경의에 관계된 옛 사람들의 중요한 말을 외웠다. (주석 1)

그런데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다.

선조가 <사제문(賜祭文)>을 내려 보낸 것이다. 선조는 '통정대부 사간원 대사간'을 증직하고, 예관을 보내어 남명의 영전에 치제하였다. 일찍이 군왕이 백성의 죽음에 사제문을 쓴 사례는 찾기 어렵다. 선조 임금이 남명을 '대로(大老)'라고 부르며 보낸 사제문 요지다.

하늘이 사문(斯文)을 버리니, 선비가 나아갈 바를 잃었다. 사람들은 진성을 아로새기고, 순정을 무너뜨려 세속에 아부했지만 공은 뜻을 더욱 굳게 가져 끝내 변절하지 않았다. 문장은 여사(餘事)로 삼고 오직 도를 향해 매진하니, 그 이르른 경지가 홀로 높았다.

언론을 발함에 의기가 순정하고 사장(辭章)이 엄위했다. 누가 말했던가. 이는 봉황의 소리라고, 모든 사람의 입에서 재갈을 벗기니 간신들의 뼈를 서늘하게 하였고, 뭇 벼슬아치들의 얼굴에 땀이 흐르게 하였다. 위엄은 종사에 떨쳤고, 충분(忠憤)은 조정을 격앙시켰다.

사람들은 공(公)을 위태롭다 걱정했지만, 공은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간당이 물러가고 현덕을 찾음에 공을 으뜸으로 부르니 백의로 등대함에 절박견결한 양책을 바치어 묻고 대답함이 산울림 같고 고기와 물이 서로 의지하고 기뻐하듯 하였다.

내 대통을 이은 뒤 일찍이 성망을 흠모하여 선왕의 뜻을 따라 족초하였건만, 공은 더욱 멀기만 하니 내 정성이 부족했는가 부끄러워 했다. 충성어린 유장(硫章)은 남이 감히 못할 말을 하였고 그로써 과인은 공의 학문이 깊고 넓음을 알았다. 이를 유장대신 둘러치고 조석으로 읽어보며, 공이 오기만 하면 고굉(股肱)으로 삼으려 했는데, 어찌 생각이나 했으리 한번 병들자 소미성이 빛을 잃을 줄이야.

누구를 의지해서 냇물을 건느며 높은 덕을 어디서 우러르리. 소자는 어디에 의탁하며, 민생들은 누구에 기망하랴.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슬픈 마음 가눌 길이 없다. 옛날 은일지사를 되돌아보니 그 시대마다 열렬히 빛났다. 허유(許由)와 무광(務光)이 풍성을 세워서 당노가 순박했고, 노중연(魯仲連)이 진나라에 항거하였고, 엄자릉은 노나라의 기강을 부식하였다.

일개 절조로도 이같이 일세의 퇴폐를 막았거늘 하물며 긍옥같이 곧은 미덕으로서랴. 비록 몸은 두어이랑 전답에 거식했지만 세상의 경종을 한몸으로 좌우하여 그 빛 일대를 밝히고 그 공 백세에 남을 것이니 영예로운 증직을 가했으나 어찌 예를 다했다 하겠는가?

지난날 선왕께서 세상을 같이 하지 못하심을 한탄하시더니, 내 이제 그 말씀 되새겨 봄에 마음이 부끄럽다. 음성과 용모를 영원히 못보게 되었으니 이 한스러움 어찌 헤아리리오. 남쪽하늘 바라보니 산 높고 물만 길구나. 하늘이 유일(遺逸)을 아끼지 않아 나라의 대로(大老)가 잇달아 세상을 뜨니 온 나라가 텅 비어 본받을 데 없음을 어찌하랴. (주석 2)

주석
1> 허권수, <남명의 한시선>, 123쪽.
2> <남명학연구논총 제1집>, 384~38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조식평전#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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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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