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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기 씨의 얼굴은 폭행당한지 나흘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 피멍으로 얼룩져 있다.(왼쪽) 오른쪽은 지난 10일 경찰에 폭행당한뒤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김영균, 민주노총 |
부평비디오 논쟁이 한창이다. 대우자동차 노동자와 경찰이 서로 유리한 대목만 편집해 인터넷에 띄우고 있다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네티즌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그러나 설령 의도된 편집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조작할 수는 없다. 특히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비디오의 핵심은 '전후 사정이야 어떠하였든' 노동자들이 짐승처럼 맞았다는 점이다. 그 노동자 중에는 <오마이뉴스>가 만난 이 사람처럼 "일하느라 서른일곱에도 장가 못가고 해고당하기 전에는 노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이도 포함돼 있다.
누가 이 평범한 노총각을 투사로 만들고 거리에 나가 경찰과 맞서게 하고 있는가? 어떻게 우리사회는 이 서른일곱살의 노동자에게 다시 일할 권리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이제 비디오 논쟁의 핵심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둘러싼 논쟁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평비디오를 본 국민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장면은 얼굴에서 흘러내린 피로 온 몸을 덮고 있는 한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피가 고여 눈도 뜨지 못한 채 "뭐야.... 뭐야..."라는 말만 되뇌며 노조원조차 알아보지 못하던 그 부상자는 대우자동차 조립1부에 근무하던 전병기(37) 씨.
전씨는 그날 가장 부상이 심한 사람 가운데 1명이었다. 전씨는 부상후 119에 실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가 불가능해 더 큰 병원으로 옮긴 후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수술을 해 겨우 눈을 뜰 수가 있었다.
지난 90년 대우자동차 조립1부에 입사해 11년 동안 일해온 전씨는 올 2월 갑작스런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입사한 후 '노조'엔 얼씬도 하지 않은 전씨였지만, 회사의 횡포를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 전씨는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인천에 위치한 길병원에서 만난 전씨의 얼굴은 대부분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흘이 지난 지금까지 양쪽 눈이 벌겋게 충혈돼 시각 장애를 겪고 있었으며, 내려앉은 콧잔등에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었다.
전씨는 지난 10일 경찰의 폭력진압이 벌어지던 당시 시위대의 앞쪽에 있었다. 그 때 전씨는 "옷을 벗고 자리에 앉자"는 박훈 변호사의 말을 듣고 웃옷을 벗은채 길바닥에 누웠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씨는 경찰이 그렇게 덮치리라고는 상상도하지 못했다.
- 병원에 실려왔을 때 상황은 어땠나
"처음 병원에 들어섰을 때는 피가 맺혀 눈이 떠지지 않았다. 119에 실려 안병원에 갔다가 그곳에서 치료가 안돼 길병원으로 옮겼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뜰 수가 있었다. 지금도 두 눈의 피멍은 가시지 않고 있다. 코뼈는 내려앉았고 전신에 피멍이 들었다. (환자복을 들추며) 팔과 다리 모두 성한 곳이 없다."
- 경찰이 진압을 위해 대열로 들어올때 위험을 느끼고 피하지 않았나.
"바로 직전까지 경찰의 진압 명령소리를 듣지 못했다. 경찰이 그렇게 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옷을 벗고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함성 소리가 들리고 눈앞이 번쩍하더니 아무것도 안보였다. 방패로 맞았는지 진압봉으로 맞았는지 모른다. 몇 명이 둘러싸고 때리는데, 방패, 봉, 주먹, 발길질, 하여튼 무수히 맞았다. 손으로 가릴 생각도 못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 ⓒ 오마이뉴스 김영균 | - 도망치거나 할 수는 없었나.
"내가 서 있기만 했어도 그렇게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10년을 다닌 직장인데, 그 주변 지리를 훤히 아는 마당에 맞고만 있었겠나. 앉아서 도망갈 틈도 없었다. 피가 흘러 눈을 뜰수가 없는데도 매질이 계속되었다. 나중에 피를 흘리며 앉아 있으니까 전경 2명이 와서 '이거 어떻하지'라며 이야기 하는게 들렸다. 그들이 양쪽에서 나를 일으켜 119 차량에 데려갔다."
- 경찰은 노동자들이 감금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진압했다는데.
"나는 도로 중앙에 있어 경찰이 잡혔는지 잘 모른다. 다만 인도쪽에서 노동자들이 경찰 몇명을 둘러싸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 경찰은 당시 노동자들이 흙을 뿌리며 침을 뱉는 등 먼저 폭력을 유발했다고 한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인도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상황은 잘 모르겠다.
- 박훈 변호사가 시위를 주동하며 "(경찰을) 죽지 않을만큼만 패도 된다"고 했다는데.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당시 박 변호사의 말은 마이크가 울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 원래 노조 활동을 했었나.
"나는 노조도 아니고 투사도 아니다. 노조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기준도 없이 10년을 넘게 일한 직장에서 내몰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조립 1부만 해도 전체 900명 중 절반이 넘게 잘렸다.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노동자들이 싸우는데는 이유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동자들을 모두 투사로 만들고 있다."
- 아내나 가족들의 걱정이 컸을듯 한데.
"일 하느라 아직 장가도 못갔다. 어머니가 올라오셨지만, 바로 내려가시라고 보냈다. 서울에서 제대로 일도 못하는데, 걱정만 끼쳐드려서 너무 죄송하다."
- 입원한지 5일 정도 지나 어느정도 나은 것 같은데, 휴유증은 없나.
"아직 똑바로 누워 잠을 잘 수가 없다. 눈에 맺힌 죽은 피가 빠질때까지 허리를 세우고 자야 한다. 한 이틀동안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화장실을 가다 부딪히기도 했다. 자리에 누우려면 어깨가 아파 한동안 고생해야 한다."
- 경찰의 진압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경찰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다. 그래도 경찰인데,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든다."
- 2개월간 임금도 못받고 파업을 진행중인데, 퇴원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금으로선 생계가 막막하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다시 동료들에게 돌아갈 생각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동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나만 다쳐 병원에 있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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