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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 최신 개량형인 PAC-3.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인 'F-X'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다른 대형무기도입 사업은 F-X 사업에 가려져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F-X 사업 규모가 당초 4조2천억원 규모에서 1조원 가량 늘어나게 됨으로써, 여타 무기도입 사업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F-X 사업 규모가 늘어남으로써 일정 정도 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신규 착수하기로 했던 1조8천억원 규모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도입사업은 엄청난 환차손을 비롯한 예산 압박으로 착수시기를 2005년으로 연기해 2011년경에 전력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또한 진통을 거듭하던 2조원대 규모의 차세대 공격헬기(AH-X) 도입 사업도 올해 착수되는 7500억원대의 다목적헬기 개발(KMH)사업의 진행 상황을 봐가며 추진여부를 검토키로 하고, 일단 연기되었다.

[집중기획] 무기도입 사업의 추진 실태와 문제
1. '미국제 무기'에 휘둘리는 한반도, F-X 뒤에도 수조원대 사업 줄이어
2. 부시 달래는 '당근'치곤 너무 비싸지 않을까
3. 차기전투기 놓고 자주파-친미파 대립


그러나 F-X 사업 및 AH-X 사업과 함께, 4대 전력증강사업으로 일컬어져온 차기방공망 사업(SAM-X)과 이지스급 구축함 사업(KDX-Ⅲ)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두 가지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각각 2조 3천억원과 2조 8천억원으로 이 둘을 합하면 F-X 사업을 능가하게 된다. F-X 사업 못지 않게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사업들인 것이다.

MD의 '늪'으로 가는 길

▲지난 98년 진해에서 개최된 국제 관함식에 참가한 미 이지스 순양함 '모빌 베이'. ⓒ 해군

현재 국방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형 무기도입사업을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안보상의 필요보다는 한미관계의 정치적인 고려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F-X 사업은 물론이고, 다른 사업들이 차질을 빚고 있는 와중에도 잘 나가고 있는 SAM-X와 KDX-Ⅲ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부시 행정부가 신전략구상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업들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중순,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나이키 미사일의 발사율이 8%에 불과하다는 '군사기밀'이 유출·보도되면서, 국방부는 한편으로 '나이키 미사일이 그 정도로 고물은 아니다'고 해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이키 미사일을 대체할 패트리어트 최신 개량형인 PAC-3를 서둘러 도입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러한 국방부의 대책을 통해 고물 미사일 논란을 가라앉은 바 있다.

그러나 SAM-X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PAC-3 도입은 단순히 나이키 미사일을 대체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는 사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고물 나이키 미사일에 쏠리게 하고 MD 참여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진 사업이다.

PAC-3는 현재 미국이 유일하게 개발 완료한 MD 무기체계로서, 한국이 이를 도입할 경우 한미연합전략 MD 체계의 일부로 활용될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이지스급 구축함 사업 역시 마찬가지로 MD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현재 이 사업의 전투체계로 경합을 벌이고 있는 미국 록히드 마틴의 이지스 체계와 네덜란드 탈레스의 아파르(APAR) 체계는 모두 탄도미사일을 '추적'하는 레이더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도입예정인 전투체계에 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스탠다드 미사일-2(SM-2) 블록4' 이상의 미사일이 장착될 경우, 이 사업 역시 MD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게 된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들은 "해군의 작전성능요구에 탄도미사일 요격이 포함되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는 기밀에 해당되는 사안임으로 밝힐 수 없다"고 답변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추는 것은 미래 전략 환경을 대비하는데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함으로써 KDX-Ⅲ 사업이 MD와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도 있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 국방부는 한국에 이지스 전투체계 3척을 일괄판매하기로 했다고 의회에 통보하면서 "이 시스템은 북한의 점증하는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혀, 한국의 이지스함 도입 사업이 MD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이보다 더 불투명할 수는 없다

▲E-3 공군조기경보기(AWACS).
F-X 사업의 경우에는 사업 규모가 대단히 크고, 4개의 후보 기종이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압력을 행사해온 것이 밝혀지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나마 적지 않은 정보들이 공개되어 왔다.

그러나 그 파장에 있어서 F-X 사업을 훨씬 능가하고 그 예산도 결코 적지 않은 SAM-X와 KDX-Ⅲ 사업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진행되고 있다. 이들 사업과 관련해 '고물 나이키 미사일을 대체하기 위해 PAC-3 도입이 필요하고, 대양해군과 일본 등 주변국가들의 해군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지스함 도입이 절실하다'는 얘기 이상으로 국방부가 공개한 내용이 무엇이 있을까?

PAC-3 도입이 MD 참여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제기에 대해 국방부의 첫 번째 해명은 "PAC-3는 탄도미사일 요격용이 아니다"였다. 그러나 PAC-3가 기본적으로 탄도미사일 요격용으로 성능 개량된 것임을 입증하자, 국방부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는 것과 미국이 주도하는 MD에 참여하는 것은 별개"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에 대해 한미군사동맹 구조에서 어떻게 독자적인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냐는 반론을 제기하자, 이에 대한 답변은 없다.

이와 같은 국방부의 일관성 없는 해명은 이지스급 구축함 도입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탄도미사일 요격과 관계없다"고 말하다가, 도입 예정인 전투체계가 탄도미사일 요격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해명을 요구하자, '군사기밀'이라며 확인도, 부인도 해주지 않고 있다. 한 군관계자도 시인하고 있듯이, 확인도 부인도 안하는 것은 사실상의 시인을 의미한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자

▲미 해병대의 차세대 공격헬기인 AH-1Z 바이퍼 공격헬기.

작년 12월 20일 평화네트워크에서 입수한 내용을 바탕으로 오마이뉴스가 최초 보도한 한미연합 차원에서 만들어진 'MD 기구'의 실체는 이후 연합뉴스 등의 취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오산 미공군 기지에 이 기구가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기구의 존재 확인은 한국의 MD 관련 무기체계의 도입 및 미국의 MD 무기체계 한국 내 배치 계획과 함께, 한국이 비밀리에 MD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의혹이 아닌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는 그동안 김대중 정부가 TMD(전역미사일방어체제, 현재는 MD에 통합되어 있다)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국민과 국제사회의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북한이 "남한이 MD에 참여할 경우 사태는 매우 복잡하고 엄중해질 것이며 민족의 장래가 위태롭게 될 것"(노동신문 2002년 1월 14일)이라고 경고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남북관계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중 정부의 MD 불참은 대북포용정책의 중요한 전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MD 무기체계 도입을 비롯한 MD 참여문제에 대해서 우리 사회에 철저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언론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기밀로 묶어놓으면서 추진하고 있는 MD 관련 무기체계 도입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MD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 문제를 국회 차원에서 공론화할 것을 주문하는 요구에 대해 난색을 표해왔다. 한 의원 보좌관의 "정부여당 내에서 MD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게 좋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해볼 뿐이다.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집권시 MD 참여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MD 참여가 그냥 넘어갈 문제인가? MD에 참여하는 것이 안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경제적 부담과 남북관계 및 대중, 대러 관계만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당초 약속은 그냥 공약(空約)으로 넘길 사안인가?

MD가 새로운 군비경쟁과 국제사회의 평화를 해친다는 문제의식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인가? 부시 행정부가 MD 구축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위협론에 집착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거꾸로 돌린 것을 잊었는가? 남한의 MD 참여가 분명해질 경우 중대한 사태가 올 것이라는 북한의 경고는 상투적인 말에 불과한가?

내년부터 한반도에 배치될 미국의 MD 무기들은 통상적인 것으로 보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5조원이 넘는 돈이 기본적인 정보도 공개되지 않은 채 MD 관련 무기 구매로 사용되는 것은 그냥 눈감고 넘어갈 사안인가?

PAC-3 도입은 이미 결정되었고, 이제 가격협상만 남아 있다. 이지스함 전투체계 기종도 5월에 결정될 예정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이상하리 만큼의 침묵 속에 MD의 늪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는 사안들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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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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