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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 3천억원 규모의 차세대 전투기 도입(F-X) 사업이 미국 보잉사의 F-15K를 밀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국방부의 한 현직장교는 3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부가 특정사에게 유리한 점수를 주라고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김동신 국방장관은 이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면서,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다음달에 기종 선정을 마무리하겠다고 F-X 사업 강행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 | ▲ 성적조작(?) ⓒ 이성열 | 기실 F-X 사업 논란의 본질은 '한국군의 작전성능요구 및 한국형 전투기 개발·생산' 대(對) '한미동맹' 사이의 갈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군사적 필요'와 '정치적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가 '정치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군사적 필요에 따라 원칙대로 가겠다는 초기의 입장에서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는 2단계 평가에서 '정책적 고려'를 하겠다고 물러선 것이나,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이번달 말 방한을 앞두고서는 일부 평가점수를 0-100점에서 60-100점으로 바꿔달라고 평가단에 요청(?)한 것은 정부 내에서 한미관계라는 정치적 현실을 얼마나 큰 변수로 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F-X 기종 선정 과정이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발언을 비롯한 대북강경책, 한국의 대선, 보잉사의 미국 차세대 전투기 입찰 경쟁에서의 패배 등 정치적 변수와 맞물리면서, F-X 사업에서의 정치적 고려는 '핵심적인'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부당한 무기 구매 압력과 한반도 긴장 고조 발언, 그리고 동계 올림픽에서의 돌출 사건 등이 잇따라 생기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미감정 역시 F-X 사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오판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내에서 F-X 사업의 정치적 파장을 크게 고려하는 것은 한 가지의 '우려'와 또 한가지의 '기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F-15K로 낙점하지 않으면 '부시가 한반도에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F-15K를 도입하면,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이 수그러들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과 기대는 모두 근거가 없다.
| | ▲미국 보잉사의 F-15 전투기 ⓒ cs21.net | 물론 한국이 F-15K 도입 결정을 하지 않으면, 부시 행정부가 김대중 정부에 '괘씸죄'를 적용하려고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최대 정치자금원의 하나이자, 한국에 F-15K를 팔지 못하면 전투기 생산라인을 폐쇄해야할 보잉사의 입장을 부시 행정부가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잉사 지역구 의원들은 물론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 주한미군 및 태평양 사령관 등이 틈만나면, 한국 정부에 F-15K 구매 압력을 행사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다른 기종을 도입하거나, 사업을 연기한다고 해서 부시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해코지를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김대중 정부 '무시'는 F-15K 때문이 아니라, 대북정책 및 MD 문제 등의 이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김대중 정부의 최대 업적인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제동을 걸어왔고, 대북군사정보 제공을 대폭적으로 줄임으로써 '홀대'를 해온 상황이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이 F-15K를 도입한다고 해서, 부시 행정부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 및 이에 따른 김대중 정부 '무시' 정책은 한반도문제가 평화적으로 풀릴 경우, 자신의 21세기 군사안보전략에 적지 않은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F-15K 도입 여부에 따라 바뀌고 말고 할 성질의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이스라엘 및 미국내의 친이스라엘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 하푼-Ⅱ 미사일을 비롯한 4억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팔려고 하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이집트에 최첨단 무기를 파는 것은 친이스라엘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계산된 비즈니스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집트에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국가들로부터 또 다른 수요를 창출해 무기 시장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야할 '정치적 고려'는 무엇일까?
정부가 한미관계의 정치적 현실 때문에, 특히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F-15K를 도입한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F-15K 도입으로 부시의 대북강경책이 부드럽게 될 리도 없을 뿐더러, 한국의 무기도입 사업은 F-X 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 |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Rafale) 전투기 ⓒ cs21.net | 오히려 F-X 사업을 비롯한 무기도입 사업은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남한 정부가 북한과의 군사적 신뢰구축 및 긴장완화를 강조하면서 전투기를 비롯한 최첨단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군사적 신뢰구축에 역행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한의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을 발표하자, 러시아에 첨단무기를 '외상'으로 팔 것을 요청한 것은 남북한의 군비경쟁 매커니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북한의 '외상' 판매 요청을 러시아가 거부함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 수면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북한으로서도 군사력 강화를 강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F-X 사업을 비롯한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을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 및 긴장완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안보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안보전략의 우선 순위에서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을 '일단' 뒤로 미루고, 북한과의 군비통제 협상에 우선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방부 관계자를 비롯해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시점부터 전력증강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즉,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통일과정으로 접어들더라도, 미래의 통일코리아의 안보 기반을 지금부터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의 전력증강에 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듯이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추진 중인 최첨단 무기체계는 주변강대국의 위협에 대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유사시 사용될 무기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규모 전력증강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북한의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 '남한이 도입하려는 무기체계는 통일코리아의 안보자산이다'라는 점을 북한에게 설득하지 않고서는 끊임없는 군비경쟁과 이에 따른 군사적 긴장은 해소될 수 없다.
그렇다고 전력증강사업을 계속 늦출 수만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푸는 한 가지 방법은 무기도입의 우선 순위를 전투기, 미사일, 공격용 헬기, 이지스함 등 공격적인 성격의 무기 도입은 뒤로 미루고, 공중조기경보기 등 정보 자산을 우선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는 북한을 덜 자극하면서도, 90%를 미국에 의존하는 군사정보의 '자주화'를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F-X 사업을 비롯한 전력증강사업과 관련해 정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이상한 풍토 가운데 하나는 한미관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도, 그것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서는 극히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은 미국 군산복합체의 배만 불릴 뿐, 우리의 안보나 남북관계 진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격적인 성격의 무기도입이 북한의 군비강화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남한은 또 다른 무기를 도입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미국 군산복합체의 '마켓팅 전략'에 한국의 안보와 남북관계가 종속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F-X 사업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F-X 사업은 단순히 전투기 수 십대를 들여오는 차원 정도가 아니라, 미래의 안보환경과 한미관계는 물론, 독자적인 전투기 생산 능력 확보, 남북관계, 남한의 경제적 현실, 그리고 한미 군사동맹 관계의 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추진해야 하는 '국가적 사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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