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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아침, 메일을 열어보니 "그냥 마음이 울적해 함 써 봤심더"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두 달 넘게 저와 매일같이 만나고 있는 SK(주) 고 송은동 씨의 유가족이 보낸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웬 메일일까 했는데 제목 그대로 많이 울적했나 봅니다. 목구멍에 차오르는 말들을 이렇게라도 쏟아내고 싶었나 봅니다.

아홉 장이나 되는 편지를 읽으며 웃음도 터지고, 눈물도 삐져 나왔습니다. 그분의 허락을 얻어 이곳에 편지의 일부를 싣습니다. 편지 곳곳에 있는 실명이나 육두문자는 뺐지만 맞춤법이나 사투리는 구태여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2월25일 림프암으로 사망한 고 송은동 사원의 처남 김종원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60여일 넘게 농성을 하면서 느낀 점을 여러분들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처음에 저희들이 농성을 시작했을 때 막연히 1차 소견서만 빠진 것 가지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왜 그 소견서를 안 넣었을까?" 라는 생각만 가지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모으고 서류를 점검 하다가 보니 정말 엄청난 장난을 친 것이 자꾸 드러나더군요. 작업환경측정표, 산재 신청시 기본이 되는 입사시 건강 검진표, 그리고 SAMPLE SYSTEM 도면 심지어 중소기업 악덕 기업주도 하지 않는 근무이력 조작까지 정말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솟아나는 짓을 했더군요.

사실 저도 이번일 처음 시작할 때 산재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산재보상법 책 뒤지고 교수님들 만나서 자문 받아보고 나름데로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혼자서 이리 뛰어다니고 저리 뛰어다니고 하루에 500㎞넘게 쫓아다닌 일도 있었습니다.

저도 집에 가면 아내와 한참 재롱 피우는 딸이 있습니다. 딸이 한참 말을 배울 시기인데 아빠를 자주 못 봐서 그런지 요즘 어쩌다 저를 보면 저보고 엄마라 합니다. 농성하기 전에는 저보고 아빠라 했는데 하도 자주 못 보니 아빠라는 말을 잊어 버렸는지......

올 봄 비가 그 어느 해 보다 많이 왔습니다. 전 회사에 교대근무를 하다가 비가 오면 창 밖을 쳐다보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안절부절 합니다. 제가 회사를 다니다 보니 아버지와 동생이 제가 천막에서 자는 것을 못하게 하십니다. 집에 자고 있다가도 비오는 소리가 들리면 잠에서 깨어 창 밖을 항상 쳐다봅니다. 저희 아버지와 동생이 천막에서 자고 있으니 걱정이 되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던지 "가족들을 설득 시켜 농성을 그만 두자고 할까?" "포기 하자고 할까?"라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집에 가서 혼자 이불 덮어 서고 울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옆에서 격려하고 힘을 주셨기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중략)

전 친동생도 아니고 처남이지만 자형하고는 정말 친했습니다. 둘이서 아내들 몰래 좋은 술집에 가서 술 한번 먹자고 약속도 했는데 그 약속도 안 지키고..... 같이 당구도 치고 여름에 피서도 같이 가고 좋은 추억도 많이 있습니다.

몇 칠전 누나 큰아들이 저보고 "삼촌 언제 시간나?" 하고 묻길래 "삼촌이 당분간 시간 내기가 힘들 것 같다" 고 하니 울먹이면서 "우리 아빠가 빨리 미국 출장갔다 와야지 같이 올챙이를 잡으러 갈건데" 하는 말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든지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 두 명의 조카들에게는 올챙이 같이 잡으러 갈 아빠의 존재는 없습니다. 같이 놀이동산 갈 아빠도 없어요, 미국 출장갔다 오실 아빠를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빠는 오지 않습니다. 커면서 느끼고 이겨내야 할 상황이지만 그 애들이 이겨내기까지 그애들이 받아야 할 정신적 충격,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까요.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셨나요. 그런 제 조카들의 마음을 회사 높으신 직책을 맏고 계시는 분들은 알고나 계시나요.

저도 석유화학계통에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이번 일에 심각성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의 상황은 정말 어렵습니다. 한때는 상여금 대신 저희 회사 계열사의 이불을 받아간 적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희 조합원들이 SK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정말 울산의 모든 노동자들이 부러워하는 SK가 이럴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전 이번에 정말 실망 많이 했습니다.

전 항상 어린 조카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약속합니다. "삼촌이 대가리가 터져도 너희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진상을 밝힌다." "회사에서 어떤 방해들 하더라도 꼭 산재 만든다" 고요. 전 힘도 없고 빽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의의 힘으로 진실의 마음으로 조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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