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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만 5천여명의 재학생과 재수생이 치렀던 수능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수학능력고사가 끝나기가 바쁘게 언론기관이 흥분에 들떠 야단들이다. 올해 수능은 작년보다 쉬웠다느니, 재수생의 성적이 재학생보다 높았다느니 하며 전문가의 말까지 인용해가며 보도에 열심이다.

할말을 잃은 교육과정평가원은 '수시모집에 우수한 학생이 빠져나가 난이도 조절이 어려웠다'느니 하며 변명하기 바쁘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언론의 상업주의 근성은 이성을 잃고 있다. 서울대학은 인기학과는 몇 점 이상이어야 하고 연·고대는 몇 점이어야 입학이 가능하다느니 하며 학벌 부추기기와 점수 서열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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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한 수험생은 이러한 언론의 보도를 믿고 성적을 발표 하기도 전에 자신의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놓고 일부언론은 사과문까지 내고 있지만 죽은 수험생과 그 부모는 아무에게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 6일 수능 시험을 마친 뒤 답을 맞춰보는 수험생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 마이너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서로가 자기 언론사가 입시전문가라는 되는 듯 '언어·수리 당락 큰 변수'다 또는 '서울대 상위학과 365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느니 추측보도에 열심이다.

뿐만 아니라 수능이 끝나기 바쁘게 올해의 난이도가 지난해 비해 높아 성적이 몇 점 올랐다고 했다가, 재수생은 성적이 올랐고 재학생은 오히려 떨어졌다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마치 난이도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국어, 영어, 수학 점수로 사람의 가치까지 서열 지우는 원인이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어떤 신문은 학력저하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학생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기 바쁘다. 교육이 무너지고 수험생이 비관자살하고 학부모들이 사교육비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도 없이 오직 일류대학을 위한 입시제도가 당연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수학능력고사란 이름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이다. 수능의 출제내용은 고등학교교육과정을 얼마나 충실히 이수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출제된 내용은 고등학교교육과정 내용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몇 점에서 몇 점까지는 어느 대학입학이 가능하고 나머지 몇 점에서 몇 점까지는 어느 대학입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줄 세우기다.

교육이란 삶의 안내다. 사람답게 사는 길,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입시교육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보다 영어문법 실력이 나은 사람을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부모를 공경하고 준법정신이 투철한 학생보다 수학문제를 잘 풀이하는 학생을 더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마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잡다한 지식을 테스트하는 퀴즈처럼 미로를 헤매다 찍기로 몇 점 더 받은 학생이 더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수능이 고등학생이면 당연히 치러야 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잘못된 입시제도로 자식이 고생하고 있다는 문제인식은 할 엄두도 못낸다. 내 자식이 경쟁에서 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기는 것이 선이 된다.

일류대학이 목적인 교육은 가정에서 부모도 똑같은 수험생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 부모는 죄인이나 다름없다. 자식의 눈치를 보며 혹시 모의고사성적이 나쁘면 부모의 잘못인 양 안절부절이다. 자식이 좋은 점수를 받는 길이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고등학교는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할 교육과정이 있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학교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공개적으로 말을 못하지만 수능 과목이 아닌 기타과목 시간에는 은근히 자습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한 시간이라도 보충수업을 더하고 조금이라도 자율학습을 오래 하는 학교가 교육을 잘 하는 학교로 인정받는다.

모의고사라도 쳐 서울대학입학 가능한 점수를 받는 학생은 모든 교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우리 학교의 명예를 빛내줄 소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서울대학을 몇 명 입학했느냐에 따라 학교는 희비가 엇갈린다. 서울대학에 한 명이라도 못 보내는 해는 모든 선생님들이 죄인이 된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면 학교 앞에는 '축, 김000 서울대학입학' 축 이000 고려대학 입학'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붙는다. 학교의 명예를 빛내 준 그들에게는 학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송과 예우가 따른다. 두고두고 학사보고 때마다 '서울대학 몇 명 입학'이라는 역사로 기록돼 후배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패자가 겪는 좌절이나 고통 따위에 신경 쓸 계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업자득이고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들만의 축제는 이렇게 언론과 교육자와 학부모들의 암묵적인 공모(?)로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 전에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게임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 이야기
( http://report.jinju.or.kr/educate/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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