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대병원 홈페이지.
서울대병원 홈페이지.
서울대학교병원(원장 박용현)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브랜드 파워 1위 병원'이란 황금빛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그 아래쪽에는 각종 언론에 보도된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기사가 실려 있다. 2002년 한 해 동안 각종 주요 일간지에 실린 기사만 250여건이다. 그런데 요즘 또 다시 언론에 '서울대병원'이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서울대 교수의 성희롱 사건' 때문이다.

'브랜드 파워 1위' 병원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
간호사들, "상습적으로 당해왔다"


지난 12일 서울대병원 수술장 간호사들은 자신의 서명이 담긴 용지를 들고 병원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간호사들을 비롯해 간호 조무사, 사무원 등 수술장 구성원 100여명이 서명한 서명지였다. 내용은 이 병원 L 교수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한다는 것.

서명에 동참했다는 한 간호사는 "교대 근무 시간 때문에 서명 못한 2명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수술장 스태프들이 서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또 다른 간호사는 "내가 입사한 이래 서명에 나서는 등 간호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사건을 공론화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파워 1위 병원'임을 자랑하는 서울대병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간호사들이 연판장을 돌리기에 이른 것일까.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병원을 찾은 26일 오후 4시 이 병원의 본관 앞에서는 예닐곱명 정도의 병원 직원들이 피켓시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상습적 폭행·성희롱 교수 ○○○을 해임하라"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병원 식당 및 노조 사무실 복도 등에도 같은 사안을 고발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는 이 병원 수술장 스태프들이 '공개사과를 요구한다'며 서명에 동의했던 바로 그 L(53·과장) 교수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병원 시계탑 제2회의실에서는 L 교수 사건에 대한 특별인사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김성권 부원장 및 치과진료부원장·소아진료부원장·행정처장 등 인사위원 10명이 참여한 자리였다.

병원의 한 사무실에서 서명에 동참한 간호사들을 만났다. 모두 서울대병원에서 10년 이상씩 근무한 간호사들이었다. 이들은 "수술장 간호사들에게 L 교수하면 그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순환 간호사들은 보통 2개월에 한번씩 각 과를 '로테이션'하는데 L 교수가 있는 과에서 겪는 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클릭! 수술장 간호사들이 밝힌 L 교수 성희롱 사례 모음 전문읽기

"음담패설은 보통, 간호사 뒤에서 허리 잡고 들었다 내려놓기도"
"피묻은 수술장갑 벗지도 않은 채 손으로 간호사 머리 쳐"


지난 26일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L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병원 직원들.
지난 26일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L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병원 직원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날 기자를 만난 A 간호사는 "정말 어떻게 5년을 버티고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L 교수와 지난 5년간 같이 일했다는 A씨는 "그간 '(후배들에게 말해 온)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가 내 18번이었다"며 그간 겪었던 일들을 실타래 풀듯 풀어놓았다.

공채로 서울대병원에 입사한 지 15년이 넘은 A씨는 수술장 '베테랑' 간호사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의 첫발을 이 병원에서 내딛게 된 그는 '환자 잘 보살피고 나만 열심히 하면 간호부장도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자신감 넘치는 간호사였다. 그러나 L 교수가 있는 모 과로 가면서는 처음의 의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타부타 말도 못하고 참기만 한 채 몇 년간을 L 교수와 일해 왔다.

A씨는 L 교수와 얼굴을 마주했던 첫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첫날부터 음란패설을 늘어놓았어요. 농담처럼. 그때는 무슨 농담을 저렇게 하나 했지. '성희롱'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L 교수의 음담패설과 반말은 갈수록 강도가 높아졌다.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일 안하고 어딜 가냐. 화장실 가려면 폴리(foley; 소변줄) 꽂아"라고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허리도 굵고 목도 굵냐. 볼은 왜 그렇게 빵빵하냐. '뽈따구' 터지겠다"는 말들도 심심찮게 했다.

A 간호사의 옆에 있던 C 간호사 역시 "L 교수가 있는 과에 배정됐을 때 내게 했던 첫 마디를 기억한다"고 거들었다. C 간호사는 "L 교수는 처음 나를 보자마자 '너 대학 나왔어? 강간이냐?'라고 했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강간'이란 '강원도 소재 대학의 간호학과'를 이르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C 간호사는 "당시 그래도 병원 생활한 지 몇 년이 됐을 때여서 '이 사람은 상대할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신참 간호사들은 L 교수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설명했다.

L 교수의 '성희롱'은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가을 A씨는 L 교수로부터 '성추행'이라 불릴 만한 일도 당했다고 한다. "그날 아침에 (수술을 시작하기 위해 L 교수가) 수술장에 들어오자마자 '빠데루' 얘길 꺼내더니 '일 못하는 것들은 빠데루 시켜야 한다'면서 뒤로 다가오더라구요." 그러더니 L 교수는 A씨의 허리를 감싸 안아들더니 그대로 바닥에 놓아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제 바로 앞에 있던 수술대가 있었는데 수술을 앞둔 터라 소독된 수술대를 잡으면 안됐기 때문에 잡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어요."

몸도 몸이지만 당시 A씨가 느낀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수술장에는 수술에 참여하기 위해 남자 의사들(레지던트)을 비롯해 후배 간호사들도 같이 있었다. A씨는 당시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했다고 기억했다.

문제는 이런 언행들이 대부분 수술장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A 간호사는 "그간 한두 번도 아니고 수술장에서 그런 일을 당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수술 때마다 그걸 다 삭이고 참여했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수술장 간호사들이 반발하게 된 발단또한 지난 7일 수술 도중 일어났다. 당시 A씨와 함께 수술에 참여하던 신참 간호사가 수술에 쓰이는 젤리(jelly)를 과하게 짜자 L 교수는 짜증을 내며 '역시 처녀라서 농도를 못 맞춘다'며 화를 냈다. 그러곤 옆에 서 있던 A씨에게 "니 거 발라. (처녀가 아니니까) 너 많이 나오잖아"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수술 중이었기 때문에 A씨는 거세게 항의할 수도 없었다. '니 거'라는 말이 여성의 분비물을 뜻하는 말임을 알아챈 A씨는 L 교수에게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하지만 L 교수는 "저거봐. 넌 입이 싸"라고 받아쳤다. A씨는 "더 이상 그런 말하지 마시고 수술하시라"고 강하게 의사표현을 했지만 L 교수는 그치지 않았다.

이날의 사건은 오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후 수술에서 후배 간호사 B씨가 L 교수에게 폭행 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점심식사 후 수술장으로 들어간 A씨는 후배 간호사 B씨가 울먹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여긴 A씨는 수술 후 B씨를 한켠으로 데리고 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1시간을 울던 후배는 "L 교수에게 맞았다"고 털어놓았다.

B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신장절제술을 하던 도중 '압력을 내리라'는 L 교수의 말에 B씨가 몇까지를 내려야 할지 몰라 기계를 끄고 다시 켜자 '과장이 하는 수술에 어떻게 신규 간호사가 들어올 수 있느냐'며 소리를 질렀다는 것. 이후 수술을 마친 L 교수는 B 간호사의 머리를 손으로 내리쳤다. 피 묻은 수술 장갑을 벗지도 않은 채였다.

A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후배들에게 '조금만 참아라. 우리 과는 원래 분위기가 이러니까 조금만 참고 일하자'라고 했는데 그날은 정말 안 되겠더라"고 말했다.

간호사들 "참을 수 없다. 공개사과하고 교수직 내놓아야"
병원측 "소위원회 구성, 사건 조사한 뒤 결정내리겠다"


병원 내 곳곳에 붙어 있는 사건 고발 대자보들.
병원 내 곳곳에 붙어 있는 사건 고발 대자보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튿날인 8일 오전, 이 사건이 수술장 간호사들 사이에 알려졌다. 이날 이들은 회의를 갖고 사건 해결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C 간호사는 "L 교수가 있는 과를 돌았던 간호사라면 그같은 일을 안 당한 사람이 없다"며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한두 명의 일이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2월 15일까지 수술장 직원 모두에게 공개적으로 정중하게 사과할 것과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서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간호과장을 통해 L 교수에게 이런 뜻을 전했다. 그러나 L 교수는 오히려 A 간호사를 불러 "너 입조심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11일 저녁, 수술장 간호사와 직원들은 L 교수의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서명용지를 돌렸다. 서명에 참여했던 간호사는 "다들 격앙된 분위기였다"며 "동의 정도가 아니라 모두 당연한 요구라는 생각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당시 서명에 동참했던 간호사들은 "L 교수는 이때까지도 간접적으로 '서면사과는 몰라도 공개사과는 할 수 없다'는 뜻을 비쳤다"고 주장했다.

12일 오후, 수술장 간호사 및 직원들은 "이런 상태에서는 해결이 안 되겠다"는 데 동의, 병원 노조(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 지부)에 이 사건을 위임할 것을 결정했다. 또 노조측에 수술장 직원 100여명이 서명한 서명용지와 그간 수술장 간호사들이 L 교수로부터 당한 성희롱 및 비하발언 일지를 정리해 전달했다.

이후 노조 측에서는 '병원내 폭행과 성희롱 근절 및 L 교수 해임을 위한 대책위원회(위원장 이향춘)'를 구성하고 병원내 통신망 및 대자보를 통해 이같은 사건에 대한 글을 게시하는 등 공개 대응을 시작했다.

이같은 일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사태가 커지자 L 교수는 19일 수술장 간호사 및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과했다. 간호사들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L 교수는 "나의 처신과 언행이 수술장 간호사들에게 인격적 모독을 느끼게 했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그 동안 사람들이 몇번의 충고를 해주었을 때 귀담아 듣지 못했던 점이 후회되며 과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많은 간호사들이 불쾌했다면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했던 간호사들은 "형식적인 사과였다"며 만족스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A 간호사는 "그냥 서면 사과문을 읽어내리는 정도였기 때문에 이 사람이 진심으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C 간호사 또한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사과였다"며 "이런 교수가 병원이나 학교에 남아 진료를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일인가"라고 분노했다.

노조·학생회·간호사들, "병원과 대학 모두 사건해결에 나서야"

<오마이뉴스>는 여러차례 L 교수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는 여러차례 L 교수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26일 병원은 L 교수 사건에 대한 특별인사위원회를 열고 그 결과를 노조에 전달했다. 이날 특별인사위에 참석한 정이성 행정처장은 노조측에 "인사위 결과 진상 조사를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해 양측 및 참고인의 진술을 듣는 등 조사를 한 뒤 오는 3월 4일 2차 특별인사위를 연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알려왔다.

이와 관련 병원 측에서는 "이번 사건이 최대한 잘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대병원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병원에서도 이번 사안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특별인사위원회도 열게 된 것"이라며 "병원장께서도 직접 수술장 간호사들에게 찾아가 사과를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3월 중에 다시 열리기로 한 특별인사위원회에서 이번 사건이 잘 해결될 수 있는 결정이 나오도록 병원에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그다지 희망적인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최은영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 사무장은 "지난 99년에도 모 의사가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의자를 땅에 내리치며 협박을 하고 그 간호사의 팔을 잡고 처치실로 끌고가 바닥에 밀치며 폭언을 하는 등 폭행한 사례가 있었지만 당시 해당 의사에게 내려진 처벌은 '감봉'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사무장은 "의사에게 '감봉' 조치는 현실적인 징계가 되지 못하며 이보다도 병원측이 성희롱이나 폭행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재발 방지 기구 및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사무장은 "노조와 피해 간호사들 모두 L 교수의 해임 및 재발 방지 대책마련이 이뤄질 때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라며 "해결이 되지 않을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및 여성단체들과 협의해 사건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건과 관련 L 교수와 연락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끝내 만날 수 없었다. 26일 교수실에 직접 찾아갔으나 교수실 직원은 "회진 후 외부 회의 참석차 바로 퇴근하셨다"며 "연락처는 가르쳐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튿날 다시 통화를 시도했으나 교수실 직원은 역시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며 "외부에 나가시면 사무실에서도 선생님과 연락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L 교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간호사들의 주장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그와 연락을 했었다는 병원의 한 관계자는 "현재 많이 힘들어하고 있으며 노조측에서 공개한 간호사들이 만든 자료에 대해서도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수술장 간호사들과 서울대병원 노조가 모은 L 교수 성희롱 및 인격비하 발언 및 서울대내 폭행 사례 모음.
수술장 간호사들과 서울대병원 노조가 모은 L 교수 성희롱 및 인격비하 발언 및 서울대내 폭행 사례 모음. ⓒ 오마이뉴스 김지은
'L 교수 사건'의 파장은 앞으로도 커질 전망이다. 현재 서울대병원 노조와 수술장 간호사들은 병원과 학교측에 L 교수의 교수직 해임과 원내 성희롱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또 지난 22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에 L 교수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건이 공론화되기 시작하자 서울대 의대 및 간호대 학생회 측에서도 공동대응에 나설 뜻을 비쳤다.

이자호(의학과 2년) 서울대 의대 학생회장은 "학생회 차원에서도 공론화하고 공동대응하기로 했다"며 "이번 사건이 처음은 아닌 것으로 알지만 그간 제대로 된 징계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이번 사건은 의사와 간호사,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이라며 "사건 해결을 위해 학생회에서도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간호대 학생회측에서도 "노조 측과 사건 해결을 위해 협의하고 서명운동에도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김영남(간호학과 3년) 서울대 간호대 학생회장은 "이번 사건과 비슷한 일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선배들(간호사)을 통해 불거진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처음 이 얘기를 듣고 무척 놀랐고 믿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여성단체에서도 "국가인권위나 여성부 또는 노동부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건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여성의전화연합 상담부 김혜경씨는 "성희롱이란 성적 폄하 발언을 포함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모든 성적인 언어나 행동"이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명백한 성희롱"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남성인 의사가 여성인 간호사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또 김씨는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문화를 반영하는 사건이라고 본다"며 "병원 측은 사건 해결과 병원내 성희롱 예방 교육 및 홍보, 병원내 성폭력 상담소 설치 등 재발 방지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0년간 폭행·성추행 사건 5건… 가해자 처벌은 대부분 감봉"
서울대병원 노조에서 밝힌 폭행 사건일지

▲ 서울대병원 노조에서 만든 서울대병원 내 폭행 사례 모음인 <폭력 X파일>.
ⓒ오마이뉴스 김지은
서울대병원에서 의사 및 인턴에 의한 폭력 및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대병원 노조(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 지부)측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고소나 진상조사 등으로 이어진 사건은 5건. 당시 피해자들은 전치 2∼3주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받은 처벌은 '감봉'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93년에는 안과의국에서 전공의가 수술장부 구입과 관련, 여직원을 폭행해 손가락 골절상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혔다. 가해자는 벌금 30만원을 내고 2개월 감봉조치를 받았다. 피해자는 타부서로 이동시켰다.

안과 여직원 폭행사건의 해결과정에서 직원정례회의를 통해 폭력재발 방지책에 대해 교육하기로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듬해에는 정형외과 인턴 권모씨가 병동간호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업무관계로 오고간 전화상의 대화가 인턴의 반말과 폭언, 폭행으로 이어졌고 간호사는 환자가 있는 병동에서 폭행 당해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았다. 가해자는 감봉 2개월과 벌금 70만원의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군복무를 마친 뒤 서울대병원에서 현재 재직하고 있다.

1999년 6월에는 서울대병원에서 위탁 운영하는 서울시립 보라매병원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담당 간호사를 협박,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레지던트 강모씨는 금식 환자에게 수액이 연결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담당 간호사에게 반말로 항의하며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간호사에게 던지려다 비켜 던지는 등 위화감을 조성했다. 이후 강모씨는 간호사의 팔을 잡고 처치실로 끌고 가 간호사를 바닥에 밀치고 문을 닫는 등 협박성 행동을 했다.

이후 노조에서 이 문제와 관련 대책위 구성, 병원장 면담, 청와대 민원 접수 등 대응을 했으나 병원에서 강모씨에게 내린 징계는 감봉 6개월이었다.

2001년, 2002년에는 치과에서 연달아 두 건의 폭력사건이 일어났다.

2001년 5월 치과병원 보철과에서는 치과 허모 교수가 담당 간호조무사에게 "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구둣발로 걷어차고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손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병원은 사건 발생 두 달 뒤 "병원은 교수에 대해 징계권이 없다"고 통보했고 그해 12월에서야 허모 교수의 보직해임이 결정됐다.

다음해에는 의무장 곽모 교수가 업무관계로 치과 보철과 여비서를 폭행해 전치 2주 상해를 입혔다. 가해자는 반성의 기미 없이 사건을 왜곡시키는 내용의 전단을 만들어 직원에게 돌렸다. 병원은 가해자인 곽모 교수에게 보직인 의무장을 면직시켰으나 노조의 겸직해제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련의 병원 내 폭행사건과 관련 최은영 서울대병원 노조 사무장은 "그간 병원에서는 미비한 조처를 내릴 뿐이었다"며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징계 및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최 사무장은 "이번 L 교수 사건도 직위를 가진 의사였기에 벌어진 일이었다"며 "간호사와 의사라는 협력관계의 본질을 인정하고 서로의 인격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권박효원 기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