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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김희정씨.
최김희정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왜 오히려 피해자가 피해다녀야 합니까. 가해자는 멀쩡히 교단에 서서 학생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생활하는데…."

아직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다. 우연히 TV에서 본 그는 다름 아닌 '교수 성폭력 피해자'였다. 성폭력 피해자가 신문기사도 아닌 TV 시사다큐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민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당당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이 인물은 바로 최김희정(32. 서강대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씨. 앞선 멘트는 그가 지난 6월 MBC의 한 시사다큐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용단'이었다.

지난 5일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난 그는 "사실 당시 인터뷰는 일종의 '패닉' 상태에서 했던 것"이라며 "가해자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는 대학이나 피해자는 숨어다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일종의 오기였다"고 말했다.

최김씨는 햇수로 3년동안 '남성 중심의 대학'과 '성폭력 교수와 그의 비호세력'과 싸움을 벌였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결코 원치 않은 이름으로. 그리고 지난 8월 긴 싸움의 열매가 맺어졌다. 결코 달지만은 않은 열매였다.

서강대(총장 류장선)는 지난 달 18일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어 최김씨를 성추행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한 영상대학원 김아무개 교수를 해임했다. 김 교수는 관련사건으로 이미 지난해 법원으로부터 700만원의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또한 같은 해 학교 측으로부터 3개월 정직이라는 징계를 받은 후 올해 복직했으나, 최김씨를 또다시 괴롭혀 이같은 처분을 받았다.

지난 2년간의 김 교수 사건으로 서강대는 올해 반성폭력 학칙(성폭력·성희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위해 양성평등성상담실도 개설했다. 이 모든 것은 최김씨가 지난 2년간 벌인 싸움의 과정에서 얻어낸 일종의 '부가가치'였다.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 주겠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성희롱

최김씨가 기나긴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은 2년 전인 2001년 10월 31일에 벌어진 사건이 발단이었다. 당시 최김씨의 스승이자 대학원장이었던 김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가진 회식자리에서 최김씨를 희롱했다.

다른 남학생 등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최김씨에게 "이리 와 봐라", "너를 여인으로 만들고 싶다. 무슨 소리인지 아느냐. 네가 결혼하면 네 남편 사이에서 잠을 자고 싶다. 너와 키스를 하고 싶다"라면서 그의 손과 뺨 등을 만졌다. 희롱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최김씨의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그의 뺨에 입을 갖다 댔다.

당황한 최김씨는 어쩔 줄 모른 채 화장실을 가겠노라며 자리를 빠져 나왔다. 이후 최김씨는 이 일에 대해 여성단체, 동료 학생들, 학부 여성위원회 등과 상의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학부 여성위원회는 총학생회, 다함께 서강대 모임 등과 함께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를 꾸렸다.

성희롱 사건 이후 최김희정씨가 시달려야 했던 후유증. 당시 최김씨의 온몸에 이와같은 두드러기가 올랐다.
성희롱 사건 이후 최김희정씨가 시달려야 했던 후유증. 당시 최김씨의 온몸에 이와같은 두드러기가 올랐다. ⓒ 최김희정
이후 공대위는 김 교수에게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김 교수는 무시했다. 하지만 공대위의 사과 요구는 계속됐다. 공대위는 김 교수의 사퇴 및 사과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등 학내 선전활동을 펼쳤다.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김 교수 사건의 진상 조사 및 사퇴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서명용지에 사인했다. 전교생이 7000명 남짓이니 3명 중 1명 꼴로 동참한 셈이다. 서강대 개교이래 이례적인 참여였다. 그러나 김 교수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뜻밖의 '음해론'도 나왔다. 몇 개월 전 실력있는 여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하자 최김씨를 비롯한 대학원생들은 학교측에 '재임용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적이 있었다.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는 당시 학생들의 주장을 무시했던 것에 대한 반발로 최김씨가 김 교수를 음해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터져 나왔다. 최김씨로선 황당한 일이었다.

학생들의 뜻을 묵인하기는 학교측도 마찬가지였다. 공대위는 당시 대학 본부에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 및 김 교수 해임을 요구했다. 대학 홈페이지에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는 글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최김씨는 "당시 대학본부에서 그런 글을 올린 학생의 아이피(IP) 주소를 추적해 찾아가 학교 이미지를 생각해 그런 글을 올리지 말 것을 강요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건에 당연히 적극적인 대처에 나설 줄 알았던 최김씨는 크게 실망했다. 그의 부모님도 "이 사건이 알려지면 학교에서 당연히 중징계 할 것"이라며 학교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던 터였다.

최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학교로부터 받은 상처가 크면 클수록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학교를 믿고 학교에 문제제기 했는데'라는 분노섞인 오기가 생겼다"며 "잃은 게 많아지니 정말 제대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회고했다.

결국 대학 측은 해를 넘기고 나서야 응답했다. 서강대는 2002년 1월 김 교수의 징계를 위한 교원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두 달간의 조사와 회의 끝에 같은 해 3월 서강대는 김 교수에게 정직 3개월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솜방망이' 징계였다. 그 이전에 김 교수는 이미 1년간의 안식년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김 교수가 학교를 떠나 있으면서 사건의 파장도 잠잠해지는 듯 했다. 학교 측의 유명무실한 징계에 최김씨를 비롯한 공대위는 반발했으나 당사자가 일단 학교에서 사라진 마당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대학당국 또한 학생들에게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강조하며 이미 징계했으니 문제삼지 말라는 입장을 누차 표명했다는 것이 당시 공대위 참여 학생의 설명이다.

솜방망이 징계... 이어진 2차 가해

하지만 1년 뒤 '사건'은 계속됐다. 최김씨는 아직도 그때의 분노와 울분을 잊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최김씨가 '2차 가해'라고 부르는 사건은 김 교수가 복직한 뒤에 벌어졌다.

1년간의 휴식 후 다시 대학에 돌아온 가해자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이 아닌 최김씨가 있는 대학원실에 머무르겠다고 통보해왔다. 김 교수는 "내 책상을 이리로 옮길 것"이라며 "이곳에 상주하겠다"고 알려왔다. 최김씨는 당황했다.

"마주치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얼굴을 보라는 거잖아요. 저보고 학교에서 나가라는 얘기로밖에 안들렸어요."

뿐만이 아니었다. 최김씨는 김 교수의 동료교수에게도 '모욕'을 겪었다. 새 학기가 되자 그가 신청한 과목 담당인 A 교수가 최김씨를 연구실로 불렀다.

A 교수는 최김씨에게 "자네가 그 학생이냐"며 "그 때 일을 말해보라"고 강요했다. 그때 최김씨와 같이 연구실을 찾은 후배는 "그 일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언니에게 고통이니 말할 것을 요구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교수의 요구는 계속됐다.

결국 자초지종을 들은 A 교수는 최김씨에게 "아직도 해임을 요구하는데 용서하고 화해하는 게 좋지 않느냐, 그리고 피해자가 내 수업 들어와서 처절하게 앉아 있으면 내가 불편하다"며 자신의 수업을 듣지 말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공대위는 다시 소집됐다. 학생들은 학교측에 '2차 가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김 교수 수업에는 '수업거부'로 대응했다. 결국 대학 당국은 다시 징계위를 소집했고 지난 8월 김 교수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다.

기나긴 싸움을 끝낸 최김씨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인지 그저 담담하다"고 말했다.

"사실 해임 결정 소식을 듣고도 특별히 기쁘지 않았어요. 아직 후유증으로 건강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12학점 듣기도 버거웠는데요. 그간의 시간이 아마 너무 힘들어서일 거에요. 박사 과정이면 으레 강의도 나가고 하지만 제가 그런 것을 꿈이나 꿀 수 있었겠어요? 미래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과연 내가 얻은 것은 뭐고 잃은 것은 뭔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견고한 남성중심의 교수사회와의 전쟁을 치른 그에게 성공적인 미래는 보장될 수 없었다.

2년 간의 싸움을 끝낸 후, 그가 얻은 것

ⓒ 오마이뉴스 남소연
2년간의 싸움 후 그에게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의 성씨만 따서 쓰던 그의 이름에 어머니의 성도 덧붙여졌다. 일종의 정체성에 대한 재인식이었다. 그리고 감사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가 성추행을 당한 후 외가 식구들은 두 팔을 걷고 가해교수의 징계를 바라는 서명을 직접 받으러 나섰다. 아무에게나 받을 수 없는 터라 가리고 가려서 정말 가까운 이들에게만 골라 받아온 30∼40여장의 서명용지에 그는 깊은 위로를 느꼈다고 했다.

"이상하게 친가보다는 외가 식구들에게 내 상처에 대해서 더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구요.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내가 아버지 가족만의 핏줄이 아니라는 걸, 다시한번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아버지의 성만이 아닌 어머니의 성도 같이 쓰게 됐지요."

그간 잊고 살았던 여성성을 인식하게 된 것도 성과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학부-석사-박사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여성'임을 잊고 살았노라고 했다.

학위 이수 과정에서의 경쟁은 사회의 그것 못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굳이 여성임을 인정해야할 필요성을 느낄 수가 없었다. 도리어 '거부'하고 철저한 경쟁터에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현재 자신이 여성임을 다행스러워한다고 했다.

"그간 나는 어쩌면 여성임을 잊고 살았는지도 몰라요. 앞으로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제대로, 잘 살아보자는 생각을 해요."

그는 지난 8월 자그마한 요가원을 차렸다. 요가를 시작한지는 7년이나 됐지만 성희롱 사건을 겪은 후 후유증 치료를 위해 요가에 더 매달리게 됐다.

사건을 겪은 후 그의 몸은 원인 모를 병을 겪었기 때문.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나는가 하면 신경성 위염도 생겼다.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같은 피부병을 그의 아버지도 앓았다. 어머니도 늘상 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심리적인 충격을 몸은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김씨는 자신의 요가원에 여성들이 많이 와서 좋은 기운을 받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여성임을 자랑스러워하고,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면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렇게 숨지 만은 않을 거예요. 사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에는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여성들이 힘을 좀 많이 냈으면 좋겠어요. 내가 소중하다는 걸 알면 내가 누려야될 권리에 대해서도 당당히 주장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평생 갚아야할 빚을 진 분들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지요."

최김씨는 다음 학기에는 미처 못쓴 논문에 매진할 생각이다. 애초 '인터넷 커뮤니티'에 초점이 맞춰졌던 그의 논문제목은 이렇게 바뀌었다. '한국사회의 소수자와 인터넷 커뮤니티'. 그가 김 교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인터넷상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서다. 자신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면서 만났던 다른 대학의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도 힘 닿는 데까지 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최김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실 인터뷰 한번하고 나면 한 2주간은 아무일도 못해요.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도 하나하나 기억을 끄집어내서 말을 하고 나면 추스리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왜 응했냐구요? 침묵하면 안되니까요. 잠재적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죠."

어쩌면 그의 진정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일는지 모른다.

2년 진통 끝 반성폭력 학칙·성 상담실 마련
'김 교수 사건'이 서강대에 준 교훈

▲ 서강대학교
ⓒ서강대 홈페이지

"결국 (서강대 내) 성폭력 대응 시스템 전반을 바꾼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서강대학교 여성위원회 회원인 조김현지(23. 국어국문 4)씨는 '김 교수 성희롱 사건'의 성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조김씨는 사건 당시 총학생회 등과 연대해 구성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펼쳤다. 피해자였던 최김희정씨에게는 소중한 '동지'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조김씨의 표현대로 '김 교수 사건' 이후 서강대는 '변했다'. 학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학이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

올 2월에는 '반성폭력 학칙'(성폭력·성희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학생생활상담연구소 산하에 '양성평등 성 상담실'(이하 성 상담실)을 개소했다. 물론 반성폭력 학칙이나 성 상담실이 생기기까지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의 학칙이 만들어지기까지 학생대표들과 대학본부 사이에 1년여간의 '줄다리기'가 있었다.

5월 또다시 발생... '사건접수-진상조사-파면조치' 일사불란 대응

이런 진통 끝에 올해 서강대는 지난 5월 국문과에서 벌어진 A 교수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 눈에 띌 정도로 적극적인 대처를 했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은 성 상담실은 사건을 접수하고 대학 측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는 학칙에 따라 피해자가 학생일 경우 학생 3인, 교수 3인 , 교직원 3인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이 교직원 및 교수와 대등한 위치에서 해결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대책위의 진상 조사 후 징계위가 소집됐고 혐의사실이 확인된 A 교수는 7월 말 파면됐다. 중징계였다.

서강대 성 상담실의 이지연 교수는 "반성폭력 학칙이나 성 상담실이 생긴 이유는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하고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며 "김 교수 사건 때는 피해자가 여성단체나 총학의 힘을 빌어 2년씩 힘겹게 싸웠는데 그럴 경우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학이 쉬쉬하고 나서서는 안 된다"며 "대학 성폭력은 무엇보다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상담창구나 학칙을 만들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충고했다.

서강대 성 상담실은 지난 6월 대학이 생긴 이래 최초로 교수를 대상으로 '여성학 세미나'를 실시했다. 올해 11월에는 서강대 총학생회와 함께 교수와 학생이 함께 하는 '성폭력 예방 간담회'(가칭)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강대 여성위원회 측은 미진한 학칙 보완과 성 상담실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조김현지씨는 "현재의 학칙은 징계 사실을 공고 규정 및 '2차 피해'에 대한 규정, 피해자 지원 조항 등이 명시되지 않았고 현재의 성 상담실도 상담교수 2인으로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같은 점은 학생-대학 간 논의를 거쳐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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