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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아내가 운전면허를 딴 지가 4년이 되었다. 그때가 40중반이었다. 내가 큰 맘 먹고 본인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학원등록을 해주었다. 필기시험에 쉽게 합격을 하고, 다음에는 운전실기를 배우러 검단에 있는 학원을 다녔다. 교동섬에서 첫배를 타고 나가면 학원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실기시험도 비교적 쉽게 합격을 했다.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얼마 있다 면허증도 발급 받았다. 보통 1종 면허였다. 운전면허증을 받았다길래, 그럼 얼마나 운전을 잘하나 자동차 키를 주고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2단을 놓고 가기는 가는데, 똑바로도 못 갔다. 운전대를 놓치면 죽는 줄 아는지, 운전대를 부여잡고 딴엔 열심히 운전을 한다고 하는데 운전실력이 말이 아니었다. 대뜸 내가 소리부터 질렀다.

"아니, 이런 실력으로 면허증을 받았단 말이야? 기어도 넣을 줄 모르고 운전대도 어떻게 잡는 줄 모르면서 운전을 해?"

아내도 자신의 운전실력이 미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찍소리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강사가 되어 운전요령을 처음부터 가르쳤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고분고분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말끝이 송곳처럼 뾰족했다.

"당신은 처음부터 잘했어! 새 차 뽑은 날부터 박아서 문짝 찌그러뜨리고 무슨 큰 소리야!"

ⓒ 느릿느릿 박철
아니 제자가 선생한테 덤벼도 되는 것인가? 남편이 아내 운전을 연수하다 보면 몇 가지 정해진 코스가 있다. 처음에는 "운전을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 좌회전을 하면서 깜빡이도 안 키고 해?" 등 따끔한 잔소리부터 시작하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못하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슨 운전을 그 따위로 해? 그러고 어떻게 면허증을 받았어!"

그러면 아내 쪽에서도 발끈해서 남편에게 대든다. 입에 담기는 뭣하지만 "아이구, 더러워서 운전 못 배우겠네!"하고 나온다.

이쯤 되면 부부지간이라도 그때부턴 막말이 오고가고, 둘 중에서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리고 만다.

그런데 요상한 건 아내에게 좀더 따뜻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도 있는데, 막상 조수석에 앉으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수양이 덜 된 탓일까?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소리부터 지르게 된다. 또 배우는 입장에 있는 아내도 절대로 고분고분하지 않는다.

한번은 초등학교에서 무슨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 엄마 아빠를 다 오란다. 아내가 먼저 교회 승합차를 몰고 학교엘 갔고, 나는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조금 시간이 지나서 승용차를 타고 학교엘 갔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아내가 학교 교문을 통과해서 커브를 꺾어 빠져나가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내가 가급적 왼쪽 문에 붙어서 커브를 꺽으라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그리고 내가 지나가는 자리를 그대로 따라오라고 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천천히 시범을 보이며 학교 교문을 빠져나갔다. 그랬는데 아내가 내 뒤를 따라오더니 멀쩡한 학교 콘크리트 교문을 긁어대며 커브를 꺽은 것이다. 승합차는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새 차였다. 차문이 흉하게 찌그러졌다. 차문이 찌그러지니 내 마음도 찌그러졌다.

"아니 그래, 그 넓은 문을 제대로 못 빠져 나와서 문짝을 찌그러뜨린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원을 크게 그려서 돌라고 그랬잖아!"

점잖은 체면에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아내가 창피하게 소리를 지른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 덤볐다.

"내가 물어내면 되잖아.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남자가 쫀쫀하게 차 좀 긁은 거 가지고 창피하게 소리를 질러!"

그 이후로 아내는 자존심 상해서 운전 못하겠다고 1년 동안 장롱 속에 운전면허증을 고이 모셔두었다.

1년이 지난 다음, 아내는 '운전면허증도 있고 차도 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냐?'며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나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가급적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 대신 조심하라고, 차 긁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 다치는 수가 있으니 늘 방어운전을 하라고 당부했다.

이제 아내의 운전실력은 원숙한 경지는 아니지만, 제법 많이 늘었다. 장을 보러갈 때에도, 다른 볼일을 보러갈 때도 자기가 운전해서 간다. 그렇게 신나고 좋은 모양이다. 전에는 부부싸움을 하다 삐쳐서 서울 친정집엘 가려면 일단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배터까지 10km 걸어갈 수도 없고, 그래서 애들 방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분을 삭였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가 차를 몰고 배터까지 간다. 그리고 서울로 가버린다. 부부싸움을 하고 아내가 화가 나서 서울 간다고 차에 시동을 걸고 잠깐 뜸을 들이는 동안, 내 방에서 '부르릉'하는 차 소리를 들으면 참 마음이 아프다.

결국 아내는 독학으로 운전을 배운 셈이다. 내가 좀더 너그럽게, 아내 말대로 따뜻하게 대해줄 걸. 할아버지가 손주 장기 가르쳐주듯이 그렇게 가르쳐줄 걸 하는 뉘우침이 든다. 내 아내가 나보다 운전을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가정 전체와 아이들을 위해 아내가 운전할 줄 아는 것은 훨씬 낫다. 그걸 인정한다.

혹 이 글을 보는 분들 가운데, 아내 운전연수를 시킬 생각이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대의 사랑스런 아내를 부드럽게 따뜻하게 대해주시길 바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운전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바로 그것이 진짜 운전의 고급기술이다.

엘릭 프롬은 그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랑은 '이해'(Understand)라고 했던가? '이해'가 아내 운전연수의 가장 훌륭한 테크닉이다. 그걸 알면서도 왜 진작 실행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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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전 초보시절을 돌아보며


저는 섬교회 목회자 아내입니다. 운전 면허증을 따고 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더군요. 그날은 주일날이었습니다. 교회학교 예배시간은 다 되어가고 승합차를 운행해줄 사람은 없고, '에라 모르겠다' 내가 운전을 하자고 생각했죠. 폼을 잡고 앉았지만 마음은 떨리고 시간은 없고 급한 마음이었습니다.

저만치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급히 좌회전을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차는 넓게 잘 포장된 길을 놔두고 내일이면 논으로 나가야 할 모판자리 논에 모판을 밟고 당당히 서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다행히 한쪽바퀴만 빠진 것이 아니라, 두 바퀴가 다 들어가서 기울어지거나 뒤집히지는 않고 바로 서 있더군요. 가슴은 쾅쾅거리고 머리 속은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4살배기 딸아이가 앞좌석으로 건너와 내 품에 안겼습니다. 아이를 안고 앉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 데 차를 기다리던 철없는 아이들은 논에 빠진 승합차 뒷 창문을 열고 올라탔습니다. 아니, 논에 빠진 차에 왜 올라탄단 말입니까? 딸아이를 앉고 간신히 나와서 차에 올라탄 아이들을 내려오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논에 빠진 차를 보고 동네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동네 트랙터와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차를 꺼내 놓았습니다. 농촌의 한 해 농사인 모를 망가뜨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 걱정스러웠습니다. 논 주인이 들에 나가서 만날 수가 없어서 하루 종일 걱정하다가 저녁때 남편과 논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멀리서 보니 우리 논에 차가 들어가서 사람이 다치지 않으셨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못자리가 다 망가져도 사람 안 다치면 그게 더 감사한 일이죠."
"목사님 사모님 많이 놀라셨을 텐데 잘 위로해 주세요."


저는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그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농촌에서의 모는 한 해 농사이거든요. 그 모가 많이 망가져서 속이 많이 상하셨을 텐테도 오히려 위로해주시는 그 아주머니를 보며 고맙고 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그 아주머니처럼 용서와 위로를 해주는 사람이 되려고 다짐을 하며 그 집을 나섰습니다. 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손을 잡아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제 마음을 알았나 봅니다.

(이 글은 CBS라디오에서 방송되어 화장대를 상품으로 받았습니다.) / 김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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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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