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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 골목길 담장을 타고 바알간 얼굴의 장미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다. 탐스런 그 모습이 하도 예뻐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다.

▲ 장미 정원의 콘서트 모습. 쇼팽 기념비와 정면의 무대가 보인다.
ⓒ 조미영
작년 그때도 이렇게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폴란드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의 장미 정원은 이맘 때가 되면 더욱 빛을 발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계절이 장미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시기이기에 방사형의 잘 가꾸어진 정원의 눈부심은 당연하다. 그리고 여기에 작은 감동이 더해진다.

이곳에서는 6~9월 일요일마다 작은 콘서트가 열린다. 공원 내 쇼팽 기념비 옆에서 펼치는 피아노 콘서트여서 일명 '쇼팽콘서트'라고도 하는데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좋아한다.

▲ 무대 옆에 조그맣게 세워진 콘서트 알림 입간판
ⓒ 조미영
나도 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180번 버스를 타고 가는데 오늘따라 유독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많다.

'일요일이라 결혼식이라도 있나?'

혼자 상상을 하며 공원입구에 이르러 내리는데 이 분들 역시 이 곳에서 내리신다. 길을 건너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이 콘서트를 보러 오신 게 분명했다. 나도 입구에서 파는 폴란드 전통과자를 사들고 따라 들어섰다. 물론 무료공연이며 좌석은 없다. 잔디나 벤치에 취향에 따라 앉으면 된다.

12시 무렵 정원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야유회를 나온 듯 가볍게 차려입은 젊은이들과 모자까지 잘 갖춰 입은 노년층은 물론 다양한 나라의 관광객까지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 할머니,할아버지 관객이 참 많다!
ⓒ 조미영
이윽고 쇼팽 기념비 옆 조그만 연단에 시선이 집중된다. 간단한 피아니스트 소개 후 바로 연주가 이어졌다. 둥근 분수대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장미정원의 손님들이 일제히 침묵하고 그를 응시한다.

시작 전에는 단 한 대의 피아노와 조그만 스피커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들의 소리는 수많은 청중의 눈과 귀를 잡아끌며 정원 구석구석으로 촉촉이 스며들었다.

뒤늦게 찾아온 한 무리의 관광객들은 감상에 폭 빠진 이들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침묵하며 조심조심 발자국을 디딘다. 나 역시 수동카메라의 육중한 셔터소리가 방해될까봐 결국 멋진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굳이 연주자의 실력이나 명성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이 작은 콘서트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다.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는 장미향에 섞여 솔솔 불어오고, 두 손 꼭 잡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평온한 얼굴과 눈을 살포시 감고 음악에 빠져든 사람들의 차분한 모습이 오감은 물론 마음까지 한껏 풍요롭게 해준다.

▲ 관객들의 박수~
ⓒ 조미영
▲ 연주자의 모습
ⓒ 조미영
문득 요란한 무대와 성능 좋은 음향 시설이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방해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화려한 정원의 소박한 콘서트는 이렇게 1시간여 가량 진행된 후 끝났다. 일정이 바쁜 관광객이 먼저 빠져나가고,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들도 자리를 뜬다.

그러나 내 옆자리의 할머니께서는 쉬 자리를 뜨지 못한다. 아까의 평온함을 조금이나마 더 간직하시려는 듯 미동도 없이 앉아 계신다. 얼굴 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대로 한참 계시다 조용히 발걸음을 내디디셨다.

그 모습이 하도 좋아 나 역시 그 분위기에 취해 한참 앉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남기고 간 미소가 나에게 묻어나듯 절로 웃음이 난다.

▲ 연주회가 끝났다.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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