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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두 당사자 우리은행 BPR 프로젝트를 놓고 법적 소송까지 벌이게 된 삼성SDS(왼쪽)와 얼라이언스 시스템(오른쪽) 홈페이지 이미지.
분쟁의 두 당사자 우리은행 BPR 프로젝트를 놓고 법적 소송까지 벌이게 된 삼성SDS(왼쪽)와 얼라이언스 시스템(오른쪽) 홈페이지 이미지.

한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가 국내 최대 시스템통합(SI) 업체인 삼성SDS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이미징 솔루션업체인 얼라이언스시스템(대표 조성구)은 지난 23일 삼성SDS의 대표이사와 금융사업부 임직원 3명 등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관계가 사실상 주종 관계를 이루는 현실에서 중소업체가 드러내놓고 대기업을 사기죄로 고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마디로 쥐가 고양이를 물어버린 격.

특히 이번 고소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솔루션을 받아 이를 최종 고객에게 공급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친 혐의라, 만약 검찰 수사결과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삼성SDS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삼성SDS 측은 얼라이언스시스템이 제기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향후 검찰의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얼라이언스 측은 고소장에서 "지난 2002년 우리은행 업무프로세스재설계(BPR) 프로젝트 추진 당시, 삼성SDS를 통해 이미징 솔루션을 동시사용자 300명 라이선스 사용료를 받고 공급했는데 삼성SDS는 우리은행에 무제한 사용자 라이선스로 공급계약을 했다"고 주장했다. 즉 삼성SDS가 얼라이언스 측에는 우리은행에 300명 동시사용자용으로 공급할 것이라고 속이고, 최종 고객인 우리은행에는 무제한 동시사용자용으로 팔았다는 것이다.

조성구 사장은 "소프트웨어의 가격은 동시사용자 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300명 라이선스료와 무제한 라이선스료는 100억원 이상의 가격차이가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사장은 "당시 300명 라이선스료도 삼성SDS가 정상가격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을 요구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대기업이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중소 벤처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건 것은 미친짓인 줄 알지만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법정투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얼라이언스시스템 "삼성SDS가 속였다는 증거 확보했다"

얼라이언스시스템이 서울지검에 삼성SDS를 고발한 접수증
얼라이언스시스템이 서울지검에 삼성SDS를 고발한 접수증 ⓒ 오마이뉴스 이승훈
그러나 삼성SDS 측은 이같은 혐의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피고소인이기도 한 삼성SDS 금융사업부 관계자는 "해당 솔루션은 우리은행과 삼성SDS가 맺은 계약서에 분명히 300명 동시접속 라이선스라고 명시돼 있다"며 "이 부분을 (얼라이언스 측에)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 왜 고소를 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조성구 사장은 "우리도 우리은행 측으로부터 300명 동시사용자 라이선스로 계약을 맺었다는 공식답변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고소를 한 것은 공식답변을 뒤집을 다른 핵심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로는 무제한 사용자 라이선스로 이면계약을 맺었다는 주장이다. 향후 양측의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사실 시스템통합(SI)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협력관계다. 보통 기업들의 업무재설계 등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대형 SI업체는 주사업자로 사업을 따내고,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SI업체를 통해 자사의 제품을 공급하는 형식으로 사업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SI업체도 질 좋은 제품을 공급해줄 소프트웨어 업체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상생의 관계에서 상쟁의 관계로

상생의 관계가 돼야할 SI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가 이처럼 극단적인 갈등을 빚게된 것은 왜일까? 여기에는 사업추진에 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주종관계에서 비롯된 삼성SDS와 얼라이언스 간 몇 차례의 충돌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가장 먼저는 이번 고소건과도 얽혀있는 우리은행 BPR 프로젝트와 관련된 양측의 대립이다. 2002년 우리은행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삼성SDS와 얼라이언스는 '전략적협약'을 맺었다. 협약의 골자는 삼성SDS가 얼라이언스의 제품을 향후 삼성계열사에 독점공급하도록 하겠다는 것. 얼라이언스 측에 따르면 이러한 협약을 맺은 것은 우리은행에 공급할 얼라이언스 제품의 가격을 할인하는 대가였다.

조성구 사장은 "당시 삼성SDS가 정상가의 반도 안되는 가격을 제시하면서 더 할인해 주면 앞으로 삼성그룹에 우리제품을 독점 공급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며 "그런데 지난 2년동안 한번도 삼성SDS를 통해 삼성계열사에 제품을 공급하지 못했고, 오히려 삼성SDS는 우리제품 대신 외국 경쟁사 제품을 들여와 공급했다"고 당시 느꼈던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삼성SDS 측은 법적 문제는 물론 도의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SDS 관계자는 "아무리 삼성그룹 관계사가 고객이라고 해도 최종적으로 솔루션을 고르는 것은 고객의 권한"이라며 "얼라이언스 제품이 들어가지 못한 것은 고객이 요구하는 솔루션이 아니었거나 협약서와 무관한 기존 제품의 업그레이드 사업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양측의 대립은 올 들어서도 계속됐다. 지난 7월 삼성SDS와 대구은행 BPR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얼라이언스가 프로젝트 완료를 한달여 앞두고 사업에서 전격 철수를 선언했다. 중간에 철수할 경우 그동안 투입됐던 인력과 자원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모두 날리는 것이라 중소업체로서는 매우 큰 위험부담을 져야함에도 사업에서 손을 뗀 것이다.

대구은행 프로젝트를 놓고도 갑론을박

얼라이언스 측이 주장하는 사업포기 이유는 삼성SDS가 애초에 약속했던 가격이 아니라 30% 이상 할인된 가격에 계약을 맺자고 했기 때문이다. 조성구 사장은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 계약을 먼저 맺지 않고 나중에 계약을 맺어준다고 하면서 일단 일을 함께 할 것을 요구한다"며 "계약도 못 맺고 일을 시작하게 된 중소업체들은 중간에 대기업이 부당한 계약가격을 요구해와도 이때 철수할 경우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회사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삼성SDS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업철수를 결정한 것은 이렇게 손해를 보고 할 바에야 국내에선 차라리 사업을 안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며 "이러한 관행은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나서서 깨야할 문제"라고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삼성SDS는 이에 대해 "제품 가격이라는 것은 경쟁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인데 당시 얼라이언스 측과 서로 간에 원하는 바가 안맞았다"며 "사업을 추진하다 발생한 문제는 서로 협의를 통해 풀어야하는데 얼라이언스가 갑자기 철수한 것은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입장차를 드러냈다.

한쪽의 일방적 희생 강요하는 구조에서 소프트웨어사업 발전 요원

삼성SDS와 얼라이언스 간의 이같은 대립에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문제점이 그대로 압축돼 있다.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상생의 관계가 돼야할 SI업체와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가 현실에서는 중소업체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대형 SI업체들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소프트웨어 업체가 SI업체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른 판로가 없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SI업체가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시켜주지 않을 경우 제품을 판매할 길이 없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SI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용기가 있는 중소업체들은 거의 없다"며 "유지보수(A/S)비용은 물론 작업할 때 SI 업체 직원들의 식사 값까지 떠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문제는 SI업체들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무리한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발주자가 사업예산을 축소하기 위해 최저가입찰제를 실시하면 SI업체들은 소프트웨어 업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격에 사업권을 따내고 손실을 고스란히 중소업체에 전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대기업의 요구에 손실을 감수하면서 사업에 참여하게 되는 중소업체들에게 경쟁력있는 솔루션 개발을 위한 투자는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등한 협력관계 설정과 프로젝트의 부실과 중소업체의 부실을 부르는 최저가 입찰 관행을 개선해야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을 마치 노예처럼 부리는 대기업의 행태가 고쳐지지 않고 공들여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요구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국내에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계속 할 수 없다"며 "국내 업체들이 포기하면 결국 외산 소프트웨어가 국내 시장을 점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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