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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이 사고를 쳤다. 그 높아만 보이던 정부를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싸움을 펼치던 어머니들. 그들이 집을 떠나 천막에서 생활한 지 26일만에 서울시교육청으로 하여금 '백기'를 들게 했다.

지난 10월 18일 과연 이 싸움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삼삼오오 서울 종로구 송월동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공정택)에 들어가 장애인 교육차별 철폐를 외치며 기습적으로 벌인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6일째 되는 11월 12일 서울시교육청은 이들이 요구한 10개항의 요구조건을 대부분 수용하는 합의문을 작성했다.

▲ 26일간의 긴 천막농성을 통해 쟁취한 승리를 축하하는 집행부
ⓒ 이철용
농성 첫날 기습적인 농성에 당황한 서울시 교육청은 모든 건물의 셔터를 내리고 출입자를 통제했고 긴급 투입된 경찰병력은 외부인의 출입을 강력하게 저지했다. 한 때 음식물 반입까지 불가능했던 급박한 상황과 추워진 날씨, 여러 가지 악조건은 오히려 이들을 더욱 강하게 했다.

온갖 차별과 서러움 속에서 잡초처럼 밟히며 살아왔던 장애아동의 어머니들, 그들의 저력은 악조건 속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과거 구걸하다시피 관료들의 눈길을 마주치지 못하며 '우리 아이들도 학교 다닐 수 있도록 해주세요'하며 사정하던 이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다.

수 차례 진행된 협상 자리에서 이들은 당당했다. '빼앗긴 우리 아이들의 권리'를 돌려달라고. 이들을 만난 관료들이 오히려 위축되었다. 그렇게도 위세 당당하게 군림하던 이들이 어머니들에게 주눅이 들어 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모든 것을 얻어내진 못했지만 처음으로 싸운 싸움에서 어머니들은 무엇보다 강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은 말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 이철용
그 긴 싸움을 마치고 지난 20일 오후 종로구 사직동 장애인교육권연대 사무실에서는 조촐한 축하연이 마련되었다. 투쟁의 일선에서 삭발을 했던 최숙, 김경애, 김혜미, 박문희 어머니를 비롯한 장애아동의 부모들과 아이들, 도경만 선생을 비롯해 함께 했던 교사들 60여명이 뜨거운 감격의 시간을 가졌다.

각자 집에서 준비한 갖가지 음식들은 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몇몇 부모들은 이런 날이 올 줄을 꿈에도 몰랐다며 집행부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표했고 이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이번 싸움은 어머니들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매일 밤 농성장을 찾으며 먹을거리를 나르던 아버지들도 있었다. 자축연 자리에 참석한 몇몇 아버지들은 그 동안 어머니 중심으로 움직이던 지역조직에 아버지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 그 동안 함께했던 가족들이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함께 했다.
ⓒ 이철용
26일간 가정을 뒤로 하고 천막생활을 하던 어머니들이 이제는 본연인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 어머니는 며칠 전 대학입시를 치른 딸에게 미안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가장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 시간에 집을 비우고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지는 고통이었지만 이번에 포기하면 앞으로 희망이 없기에 그 큰 부담감을 갖고 농성장을 지켰다.

축하의 자리, 그러나 이들은 말한다. 이제는 시작이라고. 승리에 도취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는 주위도 돌아보며 체계적이고 전체적인 싸움을 준비한다고 말하다.

왜 이들이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가? 싸우지 않아도 순리적으로 법적으로 보장된 장애아동의 권리들이 지켜질 수 있다면 이들이 가정을 떠나서 거리로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수십년간 메어두었던 응어리를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할 것이다.

▲ 우리들의 당당한 아이들
ⓒ 이철용

▲ 김혜미, 도경만 두 분의 열창....
ⓒ 이철용

▲ 자, 이제 시작입니다.
ⓒ 이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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