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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집 대문에 일반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줄을 설치해 놓았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옷을 벗겨놓고 때렸다네요. 애가 동네 목욕탕에 와서 엄마 아빠가 싸운 이야기를 그대로 하면서 '아빠가 칼을 들고 엄마 찔러 죽인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부끄러워 그 다음날부터 목욕탕에도 못왔답니다."

지난 11일 새벽 4시45분경 술에 취해 잠든 남편 김아무개(41. 무직)씨를 목졸라 살해한 뒤 곧바로 자수한 주부 이아무개(39. 마산)씨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목격담이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남편 김씨는 결혼 이후부터 술에 취하면 수시로 아내한테 폭력을 행사해 왔으며,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 날도 외박한 뒤 집에 돌아와 2시간 동안 아내를 구타한 뒤 잠이 들었다고 한다. 범행 직후 이씨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경찰에 자수했으며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두 딸의 장래를 위해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저녁에 만난 마산시 ○○동 주민들도 이 사건의 이면에 깔린 남편의 '상습적인 가정폭력' 목격담과 함께 이씨를 옹호하는 증언들을 쏟아냈다.

남편을 살해한 이씨를 동정하는 동네사람들

사건 현장 바로 앞에서 만난 50대 주부는 "싸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산다는 40대 주부는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들 부부가 심하게 싸운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혼한 뒤에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았는데, 아이 낳기 전부터 자주 싸웠다고 해요. 평소에도 아줌마는 멀리 다니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고작 간다고 해봐야 저 앞에 보이는 놀이터 정도죠. 아줌마는 몸도 약한 데다가 늘 그늘이 져 있었지요. 시댁에서도 남편이 폭력을 자주 휘두른다는 사실을 알았던 거 같아요."

이들 부부가 살았던 집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놀이터가 있었다. 벤치에 40대 이웃주민들(여)이 앉아 있었다. 이번에 사건이 난 집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서로 나서서 말을 쏟아냈다. 그들은 "옷을 벗겨놓고 때렸다"는 말도 했다.

"진동청소기의 막대기로 때린 날도 있데요. 아줌마가 얼굴에 밴드를 붙이고 놀이터에 나올 때가 있는데,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문에 받쳤다'고 하는데 척 보면 아는 거죠. 그것도 맞은 지 곧바로 밖에 못 나오고 사나흘 뒤에서 나오는 겁니다. 몽둥이에다 흉기까지 들고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학원 강사의 목격담

▲ 초등학교 1학년인 큰 딸이 그린 그림일기.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고 아빠가 간호했다"는 글이 적혀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6살과 8살짜리 두 딸은 바로 옆집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녔다. 학원강사 역시 다음과 같은 목격담을 들려주었다.

"자주 싸웠죠. 지난 해 가을 어느 날 해거름 때였는데, 옆집에서 아저씨가 전자레인지며 가전제품들을 창문 밖으로 던지는 거에요. 마침 수업 중이었는데 학원생들이 놀래서 수업도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 간 적이 있었죠."

그는 또 "지금은 없어졌지만, 작은 애가 지난 해 말에 그린 그림에는 엄마가 피를 흘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또 "아빠가 술을 드시고 와서 너무 무서워서 작은 방에 숨어 있었다, 우리는 벌벌 떨고 있었다, 아빠가 술을 안 먹고 왔으면 좋겠다"고 쓴 그림일기를 본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최근 두 딸이 그린 그림에는 '가정 폭력'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학원강사는 "최근에는 특정한 그림을 보고 난 뒤에 그리는 연습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큰 애가 그린 그림일기에는 "어제는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간호했다"고 되어 있었고, 작은 애는 엄마와 아빠 얼굴을 크게 그려놓고, 거기에 '엄마 아빠'라고 써놓기도 했다. 또 지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큰 절을 올렸다는 내용의 그림일기도 있었다.

큰 애는 현재 마산의 한 초등학교 1학년이다. 두 딸은 사건이 벌어진 뒤부터 이모집에서 지내고 있다. 이웃 주민들은 한결같이 "애가 잘 자라야 할텐데"라며 걱정했다.

주민들 중에는 "그래도 남편인데…"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동네 가게 앞에서 만난 중년 남자는 "남편이 줄곧 때렸다고 하니 할말은 없지만, 그래도 남편 아니냐"며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지"라고 말했다.

남편을 살해한 이씨는 13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남편의 형과 아우 입장 엇갈려

▲ 작은 딸이 미술학원에서 그린 그림. 엄마, 아빠의 얼굴이 그려져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경찰은 이씨의 살해 동기와 과정뿐만 아니라, 의처증이 있던 김씨가 각목 등으로 아내를 구타한 후 병원에도 가지 못하도록 하고 약만 사주었고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끊기도 하는 등 가정폭행이 상습적으로 이뤄졌다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한 김씨의 한 동생도 경찰에 와서 평소에 형이 형수를 폭행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형수를 이해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면서 "형수를 만나서도 '죽은 사람은 이왕 죽은 것이고 형수나 잘 추스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반면 그는 "김씨의 형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냐'면서 경찰이 가해자에게 동정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마산가톨릭여성회관 황광지 관장은 "이씨는 결혼 뒤부터 11년간이나 폭력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면서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참담하고, 오늘 잠시 두 딸을 보기도 했는데 엄마가 빨리 풀려나서 평온한 가정을 꾸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장검증] 여기저기 남아있는 폭력의 흔적

▲ 11일 새벽 남편을 살해하기 전 각목 등으로 맞아 이씨가 흘렸던 피가 수건과 이불에 묻어 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마산동부경찰서는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살해한 이아무개씨와 함께 14일 오전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굳게 닫쳐있던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집 안에는 살인보다는 남편의 폭력을 실감할 수 있는 증거들이 있었다.

사건 당일 남편은 각목을 휘두르면서 폭력을 행사했다. 이씨가 흘린 피가 이불과 수건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이씨는 현장검증에서 "남편은 항상 각목을 침대 밑에 둔다"면서 "그 날도 각목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남편은 당일 2시간 가량 폭력을 휘둘렀으며, 이씨는 오른쪽 귀 부위에 아직도 피가 흐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씨는 두 눈이 감길 정도로 퉁퉁 부은 얼굴로 현장감정을 벌였다. 또 현장에는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뽑아버린 전화선과 두 동강이 난 이씨의 휴대전화기가 있었다.

이웃 주민 10여명이 대문 앞에서 현장검증을 마치고 나오는 이씨를 지켜보기도 했는데, 그들은 "우짜꼬, 우짜꼬, 마음이 아파서"라는 말을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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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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