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투박한 종이와 커버가 재미있는 어린이 그림동화를 아이들 보여줄 요량으로 몇 권 사기로 했다. 김성수 교수와 강영주 교수같이 북의 문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은 이것저것 들춰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분단 60년이 되어서 이젠 북의 문학을 별도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니 이것도 웃을 수 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문학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의 각 분야가 이제는 둘에서 다시 하나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가 된 것이다.
대표단이 오늘의 여정인 평양시내 괸광을 하기위해 삼삼오오 호텔 로비에 나와 담배를 피고 담소하며 일정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문 밖에 나가 길 건너를 기웃거렸다. 호텔에 주차해 있는 차량이나 돌아다니는 차들은 다 외제차들이었다.
차량이 적기는 해도 접대용 관용차인 듯 승용차는 특히 벤츠가 많았고 아우디나 볼보 같은 독일차의 비중이 크고 일본의 닛산과 도요다도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버스는 일제가 대부분인데 승합차로는 현대의 스타렉스도 많이 눈에 띠었다. 체류기간 6일 동안 북의 평화자동차에서 만든 '휘파람' 은 몇 대밖에 보지 못했다.
대표단이 탄 버스는 아홉 시에 출발해 붉은 구호와 선전탑들이 많은 거리를 지나갔다. 거리마다 차를 기다리는지 담소를 하는지 거리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활기차다기보다는 느슨한 사회주의적 분위기였다. 살펴보니 해가 질 때까지 거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어제 대표단을 안내했던 황선생이 마이크를 잡고 일정을 설명했다. 우리는 그저 평양시내 관광이라서 을밀대나 대동문, 부벽루 같은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보는 줄 알았는데 조금은 황당하고 예상 밖의 장소였으니 황선생이 소개한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은 상황이 많이 급박합네다. 볼 것도 많구 시간 일정이 늦어지기 시작하면 어제처럼 힘드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에 복종해야 하겠습니다. 일들이 어긋나면 평양에 와서 위병만 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만경대 혁명 유적지와 통일선전탑을 돌아보시고 옥류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됩니다. 오후에도 많이 바쁜 데 개선문과 지하철 승차 그리고 학생소년궁전을 돌아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
복종해야 한다는 말에는 웃고 말았지만 만경대 혁명 유적지는 뭐고 통일선전탑은 또 뭐지?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차, 싶었다. 나중에 정도상 실장이 말한 대로 북에서 정한 일정은 우리들이 일반인들이 아니라 특정집단이고 민족의 이름이 붙은 작가대회였으므로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을 조금 무리해서 강조한 듯했다. 아마 이 일정은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만 될 일종의 '교육' 코스인 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었다.
이제 곧 평양관광 길이 일반인에게도 열릴 모양이지만 우리들에게 돌아보게 한 이 정도의 코스는 일반 관광객들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버드나무가 많은 거리를 돌아 금방 만경대 혁명 유적지에 도착했다. 평양은 옛날부터 버드나무가 많아서 류경(柳京)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한다. 평양에 현대그룹에서 지은 체육관 이름이 '류경 정주영 체육관'인 것도 여기서 가져다 붙인 이름인 것이다. 대표단이 버스에서 다 내리자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단정하게 입은 여성 안내원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