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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 구내매대에 한복을 예쁘게 입고 있는 접대원 동무.
고려호텔 구내매대에 한복을 예쁘게 입고 있는 접대원 동무. ⓒ 정용국
일행 전체가 이동하는 일정을 빼고 나면 고려호텔 안에서만 머물게 되는데 호텔 안에는 44층의 회전 라운지와 1층의 맥주를 파는 곳과 3층의 바와 비슷한 곳이 하나 있어서 일행은 삼삼오오 어울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곤 하였다. 입구 오른쪽으로는 차를 파는 곳이 있어서 호텔로서의 구색을 갖춘 셈이었다.

그 뒤로 구내 매대가 있어서 가끔 생수도 사고 구경삼아 들러 보았는데 조선에는 소주와 맥주를 빼면 거의 소위 우리들이 담근술로 부르는 류의 과실주가 많았다. ‘백두산 영지술’ ‘장뇌산삼술’ ‘황구렁술’ ‘왕찔광이술’ ‘보가지술’ ‘백두산 들쭉술’ ‘금강산 돌버섯술’이 그것들이었다. 그중 황구렁이술 속에는 큰 구렁이가 한 마리 들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고려호텔 입구에 있는 찻집의 안내판이 이채롭다.
고려호텔 입구에 있는 찻집의 안내판이 이채롭다. ⓒ 정용국
나는 가능한 한 매대에서도 접대원들에게 말을 많이 시켜 보려고 애썼다. 가령 황구렁이 술은 뭐가 좋으냐, 보가지술은 무엇으로 만들었느냐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말을 유도했는데 그녀들은 늘 살갑게 대답해 주었다.

“황구렁이술은 남자들의 정력에 특효가 있어서 좋단 말입니다.”

이 말을 해놓고 여성 안내원은 볼을 붉히며 저고리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리며 웃었는데 그 모습이 여간 예쁜 것이 아니어서 나는 백두산 들쭉술과 생수를 사며 함께 사진을 한 장 박아 두었다. 조선에 와서 처음에는 한복을 치렁치렁 입은 모습들이 어색하고 답답하게만 보였는데 자꾸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고 정중한 복장이라고 생각되었다.

조심스럽게 옷자락을 여미고 소매를 추스르는 모습이 여간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퇴근할 때 보면 바지와 간단한 블라우스나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근무시간에 한복을 입고 있을 때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가만 보니 그녀들은 한복을 입고 호텔에서 접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개선문 근처에 있는 노점. 똑 같은 모양의 천막은 평양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개선문 근처에 있는 노점. 똑 같은 모양의 천막은 평양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 정용국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 많은 노점상을 보게 되었는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조선에서도 이런 개인적인 노점이 가능한 일인지 몰라 조금 당황했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공동으로 해야 할 일 외에 개인의 노력으로 하는 벌이는 그 규모를 보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연 설명으로 농가에서도 공동농장일 외에 소규모의 텃밭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을 내다 팔아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개인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상황을 보아 그 노점에 들어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쉽게 그 기회는 와주지 않아서 결국 멀리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버스에서 지나가면서 본 바로는 얼음단물이나 얼음과자를 파는 것으로 보였다. 백두산 가는 길에 삼지연읍에서도 떡이나 얼음과자를 들고 다니며 파는 할머니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노점은 완전히 내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인 것으로 보였다.

영광역 뒷길에서 만난 평양의 아가씨. 양산을 든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
영광역 뒷길에서 만난 평양의 아가씨. 양산을 든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 ⓒ 정용국
평양에서 하룻밤을 자고 종일 빡빡한 일정을 거의 ‘주체사상 교육’ 수준의 관광으로 파김치가 된 대표단은 저녁을 먹으며 들기 시작한 소주로 인하여 슬슬 주당으로서의 면모를 발동하기 시작했다. 우리 6조 조원으로는 김원일 선생님과 홍상화 선생, 남송우 교수, 김성수 교수, 은희경, 김인숙 소설가와 오인태 시인이 조장을 맡고 있었는데 밤 10시 30분부터 3층 바에서 술 한잔씩을 할 테니 내려오라는 전갈이 있었다. 3층의 바에는 우리 조 외에도 신경림 선생과 안도현 시인 등이 벌써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술자리에는 김원일 선생, 오인태 시인, 김인숙, 은희경 소설가, 김성수 교수와 내가 합석을 했다.

백두산 들쭉술과 송악 소주, 대동강 맥주를 시켜 놓고 어느 것이 우리들 입맛에 적당한지 조금씩 마셔 보았다. 조선의 소주들이 대부분 한국의 달짝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라기보다는 달지 않고 쓴맛이 강해서 마시기 힘들었다. 그래도 김원일 선생님은 소주를 드셨고 나와 오인태 시인은 들쭉술을 그리고 여자들은 하이네켄 맥주를 마셨다.

나는 나중에 발동이 걸려 송악소주에 대동강 맥주를 섞어 '통일 폭탄주'라 이름을 붙여 마셨다. 바의 접대원으로 있는 여성 동무는 얼마나 붙임성이 있고 입담이 좋은지 아주 활달한 여성이었다. 별도의 안주를 찾는 이들에게는 밖에 나가서 구해다 주는 열성을 보였다. 그것은 바에서 준비할 수 있는 안주가 마른안주 수준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정말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접대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도 재치있게 답했고 농담은 농담대로 적절히 받아 넘기는 재주가 뛰어났다.

그런데 한국의 술집이라면 술보다는 안주 값에서 이문을 남기고 바가지를 씌우는 것에 비해 이곳의 바는 있는 술만 파는 정도였다. 아마 개인 가게가 아니라서 그럴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었다. 나는 술기운을 빌어 접대원 아가씨에게 집에 바래다 주겠다고 했더니 배꼽을 잡으며 자기는 내일 아침에 교대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밤샘근무를 한다고 해서 웃고 말았다.

술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정도상 실장이 내려왔다. 그는 이번 대표단 회의를 성사시키느라 조선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다같이 그 공로를 치하하며 술을 돌렸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온 것이 아마 새벽 한 시 반이었으니 꽤 마셔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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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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