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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혜
"아저씨! 생선 많이 파셨어요? 그런데 대목장 치고는 너무 한산하네요. 아직 한 번 더 남아 있어서 그런가요?"
"대목장요? 그런 소리 마세요. 오히려 평상시 오일장보다 못해요. 도대체 사람들이 나와야 생선을 팔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예요. 이러다 우리 조상님 차례상엔 생선만 잔뜩 올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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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소연은 비단 생선가게 아저씨뿐만이 아니었다. 과일가게 아줌마도 야채가게 아줌마도 또 옷 집 아줌마도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평상시 오일장보다 못하다는 대목장. 그들은 당연히 속이 상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로 봐선 그들의 속내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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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안 된다고 구구절절 읊어봐야 무슨 소용이야. 내년에는 좀 나아지겠지. 그나마 찾아주는 사람들이 고맙지. 그래서 돈은 못 벌어도 복은 많이 벌 심산으로 손님들에게 그저 인심만 푹푹 쓰고 있지. 각박한 세상, 인심이라도 나눠야 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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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가게 아줌마는 고사리를 한주먹은 더 얹어 주셨고 생선가게 아저씨는 한바구니 떠놓은 동태포에 다시 포를 떠 몇 점 더 얹어 주셨다. 부모님들 드릴 양으로 홍시를 사는 내게 과일가게 아줌마는 쫄깃쫄깃한 곶감 몇 개를 맛이나 보라며 애써 손에 쥐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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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와 올케 몫으로 들기름 몇 병을 사야 했다. 전을 펼치고 계신 할머니는 장사보단 수다에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연탄화덕 위에 네모난 깡통을 엎어놓고 그 위에 딱딱한 시루떡 몇 조각이 구워지고 있었다. 친구인 듯한 두 분 할머니는 이야기에 정신이 없었다. 오가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순 없었지만 기분 좋은 웃음소리로 봐 깡통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시루떡만큼이나 고소한 듯했다.

"할머니! 들기름 몇 병 주세요. 그리고 이 호박오가리도요."
"그려. 많이 든 놈으로 가져가. 호박오가리도 한주먹 더 넣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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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잡화상 아저씨의 난전엔 정말 없는 거 빼고 다 있었다. 바늘에 골무에 수세미에 요즘 고무줄 넣는 팬티가 어디 있다고 팬티에 넣으라는 까만 고무줄까지…. 그중 '윳 천원'이란 종이가 눈에 띄었다.

"아저씨! 이 윷놀이 세트 정말 천원이예요?'
"그려. 거저 주면 아쉽고 천원만 내놓고 가져가."

아저씨 목소리는 길 건너에서 들렸다. 커다란 드럼통 안에는 연탄화덕이 있었고 그 위에 얹어진 석쇠 위엔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오일장 장바닥에서 먹는 막걸리와 돼지고기 맛은 둘이 먹다 하나가 기절해도 모를 거야."

드럼통을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저씨들의 우스갯소리에서 또 그들의 사람 좋은 너털웃음에서 사람 사는 푸근한 정을 느꼈다. 그러나 아주 잠깐. 그들의 주름진 눈가를 스치는 쓸쓸함을 발견하고 말았다면 사람 사는 정이 뭔지 모르는 내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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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의아한 것이 있었다. 대목장이라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것이 '뻥이요'하는 순간 하얀 연기 피워 올리며 온 사방에 강냉이 튀어 오르는 뻥튀기 장면이건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장바닥을 헤매 뻥튀기 아저씨를 찾아냈건만 줄지어 늘어선 찌그러진 깡통과 깡통 옆에 쪼그려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미 만들어진 강정들이 파란 봉지 안에 담겨 대목장 손님들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 김정혜
대목장. 손님보다 물건이 더 많은 듯했다. 너무 한산해 쓸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목장을 지키는 사람들은 씩씩했다. 하지만 그들의 씩씩함이 그리 온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라고 한산한 대목장이 왜 속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나마도 찾아드는 손님들을 위안 삼고 있었다.

ⓒ 김정혜
ⓒ 김정혜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설. 그 설을 기다리는 대목장과 대목장 사람들.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다. 마송장으로의 추억여행은 잠시 비친 겨울햇살만큼이나 따스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과일가게 아줌마가 쥐어주신 곶감 한 개를 입속에 넣었다. 쫀득쫀득한 것이 아주 달짝지근했다. 이번 설은 대목장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처럼 더불어 행복한 설이 되었으면 싶다. 쫀득쫀득하고 달짝지근한 곶감 같은 설을 우리 모두가 맞이할 수 있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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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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