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생선 많이 파셨어요? 그런데 대목장 치고는 너무 한산하네요. 아직 한 번 더 남아 있어서 그런가요?"
"대목장요? 그런 소리 마세요. 오히려 평상시 오일장보다 못해요. 도대체 사람들이 나와야 생선을 팔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예요. 이러다 우리 조상님 차례상엔 생선만 잔뜩 올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런 하소연은 비단 생선가게 아저씨뿐만이 아니었다. 과일가게 아줌마도 야채가게 아줌마도 또 옷 집 아줌마도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평상시 오일장보다 못하다는 대목장. 그들은 당연히 속이 상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로 봐선 그들의 속내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장사 안 된다고 구구절절 읊어봐야 무슨 소용이야. 내년에는 좀 나아지겠지. 그나마 찾아주는 사람들이 고맙지. 그래서 돈은 못 벌어도 복은 많이 벌 심산으로 손님들에게 그저 인심만 푹푹 쓰고 있지. 각박한 세상, 인심이라도 나눠야 할 거 아니야."
야채가게 아줌마는 고사리를 한주먹은 더 얹어 주셨고 생선가게 아저씨는 한바구니 떠놓은 동태포에 다시 포를 떠 몇 점 더 얹어 주셨다. 부모님들 드릴 양으로 홍시를 사는 내게 과일가게 아줌마는 쫄깃쫄깃한 곶감 몇 개를 맛이나 보라며 애써 손에 쥐어 주셨다.
동서와 올케 몫으로 들기름 몇 병을 사야 했다. 전을 펼치고 계신 할머니는 장사보단 수다에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연탄화덕 위에 네모난 깡통을 엎어놓고 그 위에 딱딱한 시루떡 몇 조각이 구워지고 있었다. 친구인 듯한 두 분 할머니는 이야기에 정신이 없었다. 오가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순 없었지만 기분 좋은 웃음소리로 봐 깡통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시루떡만큼이나 고소한 듯했다.
"할머니! 들기름 몇 병 주세요. 그리고 이 호박오가리도요."
"그려. 많이 든 놈으로 가져가. 호박오가리도 한주먹 더 넣어가고…."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잡화상 아저씨의 난전엔 정말 없는 거 빼고 다 있었다. 바늘에 골무에 수세미에 요즘 고무줄 넣는 팬티가 어디 있다고 팬티에 넣으라는 까만 고무줄까지…. 그중 '윳 천원'이란 종이가 눈에 띄었다.
"아저씨! 이 윷놀이 세트 정말 천원이예요?'
"그려. 거저 주면 아쉽고 천원만 내놓고 가져가."
아저씨 목소리는 길 건너에서 들렸다. 커다란 드럼통 안에는 연탄화덕이 있었고 그 위에 얹어진 석쇠 위엔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오일장 장바닥에서 먹는 막걸리와 돼지고기 맛은 둘이 먹다 하나가 기절해도 모를 거야."
드럼통을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저씨들의 우스갯소리에서 또 그들의 사람 좋은 너털웃음에서 사람 사는 푸근한 정을 느꼈다. 그러나 아주 잠깐. 그들의 주름진 눈가를 스치는 쓸쓸함을 발견하고 말았다면 사람 사는 정이 뭔지 모르는 내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까….
문득. 의아한 것이 있었다. 대목장이라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것이 '뻥이요'하는 순간 하얀 연기 피워 올리며 온 사방에 강냉이 튀어 오르는 뻥튀기 장면이건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장바닥을 헤매 뻥튀기 아저씨를 찾아냈건만 줄지어 늘어선 찌그러진 깡통과 깡통 옆에 쪼그려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미 만들어진 강정들이 파란 봉지 안에 담겨 대목장 손님들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대목장. 손님보다 물건이 더 많은 듯했다. 너무 한산해 쓸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목장을 지키는 사람들은 씩씩했다. 하지만 그들의 씩씩함이 그리 온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라고 한산한 대목장이 왜 속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나마도 찾아드는 손님들을 위안 삼고 있었다.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설. 그 설을 기다리는 대목장과 대목장 사람들.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다. 마송장으로의 추억여행은 잠시 비친 겨울햇살만큼이나 따스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과일가게 아줌마가 쥐어주신 곶감 한 개를 입속에 넣었다. 쫀득쫀득한 것이 아주 달짝지근했다. 이번 설은 대목장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처럼 더불어 행복한 설이 되었으면 싶다. 쫀득쫀득하고 달짝지근한 곶감 같은 설을 우리 모두가 맞이할 수 있기를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