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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다. 이틀만 있으면, 어린 시절 기쁨과 설렘으로 기다렸던 우리의 최대 명절 설날이다. 해가 갈수록 그 느낌이 덜해지는 것 같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는 고향에 가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지, 몇 번이고 다짐을 해보지만 막상 닥치고 보면 이런저런 핑계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 문제로, 사는 게 바빠서, 하던 사업의 실패로, 직장을 아직 구하지 못해, 결혼을 하지 못해…. 올해도 또 꿈에 본 내 고향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언제쯤 찾을까. 그리운 내 고향을, 다 떨쳐 버리고 올해는 모두 다 어머님 품 속 같은 아늑하고 포근한 고향을 찾아 쉼표 하나 찍고 왔으면.
문득 고향생각에 어쩌면 어릴 적 고향의 첫사랑 순이, 개구쟁이 친구 철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여수의 재래시장인 교동시장을 찾았다.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오가는 사람들로 길을 지나기가 힘겨울 정도다.
여수는 지역 특성상 삼면이 바다여선지 시장에는 생선이 주로 눈에 띤다. 온갖 생선이 입구에서부터 즐비하다. 갑오징어와 꽃게가 싱싱하다. 갑오징어 5마리에 2만원, 꽃게는 4마리에 2만원이다. 한 바구니를 사면 덤으로 한 마리씩 더 준다.
파릇파릇 싱싱한 파래와 감태, 바다의 솜사탕 매생이, 물김을 팔고 있는 박연례(53)씨는 이곳에서 장사한 지 30년째다. 해가 갈수록 어렵다고 한다.
"장사 잘 됩니까?"
"별로요. 안 팔려요. 물가는 비싼 데다 진짜 너무 안 되는 거 있죠."
예년에 비해 반도 안 팔린다.
장보러 나온 김금임(53)씨는 모든 물가가 다 비싸다고 한숨이다. 시장바구니를 보니 버섯과 나물거리 파래를 샀다. 제수용품은 미리 구입을 했다. 가족이 모이면 함께 먹을 찬거리를 사러 나왔다. 물건 하나 살 때마다 몇 번을 망설인다.
"뭘 많이 안사시네요."
"설 연휴가 적잖아요. 그래서 간단간단히 준비해요."
박씨는 서대 회를 썰고 있다. 1kg에 2만원, 씨알이 자잘한 서대다. "이게 한국 서대입니다." 자신 있게 권한다. 새벽 3시에 시장에 나왔다고 한다.
"돈 많이 벌었어요?"
"돈 좀 보씨요. 별로 못 벌었어요."
"와~ 돈 많이 버셨네요."
박씨가 보여준 커다란 플라스틱 돈 통에는 만 원 권 서너 장, 천 원 권 지폐가 몇 장 꼬깃꼬깃 통 안에 웅크리고 있다. 그 안에는 또 하나의 통이 들어있다.
"이곳에서는 안 나는 매생이가 있네요."
"완도에서 가져왔어요."
미운 사위자식에게 준다는 매생이, 매생이는 펄펄 끓여도 김이 나지 않는다. 안 뜨거운 줄 알고 덥석 한입 떠먹다 입을 데이기 일쑤다. 매생이는 입에서 살살 녹아들어 바다의 솜사탕으로 불린다.
모처럼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시장바닥이다. 하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흥정만 하다 그냥 돌아서기 일쑤다.
올 설이 풍성하고 마음 따뜻한 설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난히도 추운 올겨울, 차가운 바닷바람 맞으며 한데서 고생하는 그들의 웃는 모습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