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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곶감과 대추, 밤을 길가에 놓고 파는 아주머니와 마주쳤습니다. 곶감이 먹음직스러워 얼마냐 물으니 천 원에 세 개, 삼천 원에 열두 개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먹어보라고 합니다. 아이들 둘이 곶감 하나씩 들고 맛을 보더니 맛있다며 사달라고 합니다. 먹는 건 서비스고 사는 건 그대로 열두 개를 검정 비닐봉투에 넣어줍니다. 몇 명의 아줌마들도 곶감과 대추, 밤을 사가지고 갑니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예쁘게 포즈를 취하고 웃습니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예쁘게 포즈를 취하고 웃습니다. ⓒ 김현
길 건너 한쪽에선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들이 채소를 놓고 팔고 있습니다. 추위에 모자를 푹 눌러썼으면서도 얼굴엔 미소가 가득합니다.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이쁘게 찍어 줘얀디" 하고 매무새를 고치는 모습이 새색시 같습니다.

"많이 파셨어요?"
"많이 팔기는… 사람들만 많이 왔다 갔다 하지 그냥 그려."

"그래도 좀 나을 거 아녀요."
"쪼깨 낫기야 허지만 근디 채소는 그냥 혀."

"웃는 모습이 참 이쁘시네요."
"응, 내 아들이 지금 대학생이여. 호호 내가 서른여섯에 낳는디 백골부댄가 뭔가 제대해 가지고 지금 대학 다녀."

육십 중반을 훌쩍 넘겼다는 아주머니(할머니)가 늦둥이 자식이야길 하며 이것저것 자랑하자 옆에서 장사하시던 분이 '그 할맘 아들 효자여 효자' 하신다. 장사가 잘 될 땐 하루 삼사만원 하고 그렇지 못할 땐 만 원도 하고 이만 원도 하는데, 그래도 요걸로 자식들 공부시켰다며 웃는 모습이 행복하고 정겨워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설 풍습도, 장보는 모습도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젊은 측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 오십 중반을 넘는 분들입니다.

막 꺼낸 시루떡에서 김이 무럭무럭 납니다.
막 꺼낸 시루떡에서 김이 무럭무럭 납니다. ⓒ 김현
난 가끔 일이 없어도 재래시장을 찾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물건을 사는 게 없어도 시장엔 사람냄새가 있기 때문이죠. 시장을 돌아다녀도 잘 꾸며진 가게에 진열된 물건보단 오이 몇 개, 호박 몇 개 나물 조금 갖다 놓고 길가에 쪼그려 앉아 물건을 파는 할머니들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가끔 아내를 데리고 시장에 가 그 할머니들에게서 야채 몇 개를 사곤 하면 왜 멀리까지 와서 사냐며 그런 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의문을 표하면 그저 웃곤 했었습니다.

명태포 떠주는데 1마리에 5천원이유.
명태포 떠주는데 1마리에 5천원이유. ⓒ 김현
시장을 가끔 찾는 것은 이상하게 그곳에 가면 마음이 스산하면서도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점차 대형 마트에 밀려 침체되어가는 재래시장을 보면 스산해지면서도, 그곳에 가면 젊은 시절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돌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물건을 샀던 기억이 나를 편안하게 해줍니다.

ⓒ 김현
이번에도 시장을 돌아다니며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시장 귀퉁이 한쪽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할머니들입니다. 세월이라는 인생의 주름살을 가득 이마에 세우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 속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설 풍습도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이중 가장 큰 변화는 세배하기 일 것입니다. 예전에 설날 아침이면 설빔을 차려입고 동네 어른들께 끼리끼리 모여 세배를 다니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모습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직장 동료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상대편에게 계좌번호를 대라고 합니다.

"야, ○○야, 니 계좌번호 대보라."
"……."

"내가 세뱃돈 부쳐줄라고 그러지.
"세배도 안했는데….(필자 생각)"

"니가 언제 세배 했었냐. 어서 퍼떡 대라."
"……."

"그래 내 오늘 20만원 부칠 테니까 네가 10만원 가지고, 나머진 니 두 동생에게 5만원씩 주거라."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참, 요즘은 세뱃돈도 통장으로 부쳐주네요" 했더니 그냥 껄껄 웃습니다.

요즘은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바쁘니까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돈만 부쳐준다고 하더니 이젠 세뱃돈까지 통장으로 입금시키는 시대가 왔나 싶어 한편으론 긍정하면서도 씁쓸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서로 얼굴을 못보고 지내는 요즘, 힘들지만 명절 때라도 일가친척이 모여 서로 사는 모습도 이야기하고 덕담 한 마디 나누는 그런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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