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송림백사장 부근 언덕에서 본 장항갯벌..눈으로 보이는 곳이 매립예정지다.
송림백사장 부근 언덕에서 본 장항갯벌..눈으로 보이는 곳이 매립예정지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석양을 몰고 오는 바람끝이 제법 차가웠다. 한동안 이어진 송림을 지나 언덕에 올랐다. 충남 서천 장항읍 앞바다가 한눈에 내리꽂히는 명당이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만이 아니었다. 파도의 흔적을 밭이랑처럼 새긴 끝없이 펼쳐진 갯벌이었다. 코 끝으로 뻘 내음이 묻어났다.

바닥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줄을 둘러 놓았다. 뻘 전체가 어민들의 일터요, 생명을 보듬고 있는 땅임을 알리는 징표였다. 이리저리 눈길을 돌렸지만 오히려 빈터를 찾기가 어려웠다. 동행한 서천환경운동연합 여길욱 사무국장(45)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펼쳐진 갯벌 전체가 매립예정지이기 때문이다. 이 곳은 16년 전인 1989년, 장항 군산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 관련 부지로 지정돼 매립계획이 확정됐다. 이후 일부 어민들에게는 어업손실보상금이나 폐업보상금이 지급됐다. 아직까지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은 수요가 없어 매립시기를 늦춰온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공사는 더 이상 공사를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사업비로 570억원을 확보해놓은 가운데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통과되는대로 곧바로 사업에 착수할 계획. 갯벌 매립공사가 한창인 새만금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에 불과하다.

"멸종위기 조류 최대 서식지... 보호는 못할망정"

매립예정지 구역도(ㄴ선). 남쪽은 군산이고 북쪽은 서천 마서면 이다.
매립예정지 구역도(ㄴ선). 남쪽은 군산이고 북쪽은 서천 마서면 이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매립예정지는 눈으로 보이는 곳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 사무국장은 나머지 절반 이상의 매립예정지는 산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며 산너머를 가르켰다. 총 374만평.

언덕에서 다시 20여분간 차를 몰아서야 매립예정지가 시작되는 매바위 앞 바다에 다다랐다. 바람자락에 실려 새울음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한 두마리가 아닌 한 무리의 새가 내뱉는 울음이었다.

여 사무국장은 "매립예정지는 멸종위기종인 검은머리물새떼 등 수많은 철새들의 서식지고 휴식처"라며 "검은머리 물떼새의 경우 전 세계 1만 마리 중 5천마리가 이곳 금강하구 지역에서 서식한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국제보호종이며 천연기념물인 검은 머리물떼새의 세계 최대 도래지다.

이 너른 갯벌을 무엇에 쓰려고 매립하려 하는 것일까.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공사와 승인기관인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당초 기본계획대로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16년 전 기본계획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당초 490만평에서 매립면적이 다소 줄고 '복합'이라는 단어가 '국가산업단지' 앞에 붙은 것뿐이다.

갯벌 매립을 요구하는 측의 근거는 '지역개발'이고 '경기부양'이다. 서천발전협의회 등이 참여하고 있는 '장항산단 조기착공추진위원회'는 6만명의 고용창출과 17만명의 인구유입 효과가 예상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어메니티 서천'을 외치며 지난 해 인근 군산시 방폐장 유치에 반대했던 나소열 서천군수도 "산업단지 조성은 서천군민의 숙원사업"이라며 "조기착공을 주장하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군산지구와 같이 지정됐는데 군산지구만 개발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충남이 수도권 공장입지 요구를 감당 못하고 있는 만큼 장항은 계획대로 개발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군산지구 분양률 25% 불과, 그런데 또다시 갯벌 매립

장항읍내 곳곳에 내걸린 '조기착공' 촉구 현수막
장항읍내 곳곳에 내걸린 '조기착공' 촉구 현수막 ⓒ 오마이뉴스 심규상
하지만 장항에 앞서 조성된 맞은 편에 위치한 군산지구 대부분이 미분양 상태로 방치돼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산업단지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며 조성한 군산지역 산업단지의 현재 분양률은 25%에 그치고 있다.

당시 군산시는 공단조성 후 70만 인구를 예측했지만 현재 군산시 인구는 26만명 정도. 이 때문에 갯벌을 매립하는 면적 만큼 미분양률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토지공사 측은 구 모델인 군산국가산업단지와는 달리 장항국가산업단지는 학교, 병원 등 문화교육시설을 갖춘 복합산업단지로 건설할 계획이어서 기업 유치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항산단 조기착공추진위원회는 "산업단지 조성이 끝나는 10년 후에는 오히려 산업단지 부족현상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발 이유는 "장항 갯벌은 이미 썩어서 갯벌의 가치가 없다"는 주장으로까지로 이어졌다. 지난 달 21일 서천군 박종렬 경제진흥과장이 군의회 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박 과장은 지난 해 6월 열린 환경영향평가 검토협의회 자리에서는 "장항쪽 갯벌에는 조개가 없고 질이 안좋아 현지인도 먹지 않고 어민도 떠나는 실정"이라며 "환경영향이 적은 만큼 금년 내에는 착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날 협의회에서 이현우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은 "금강하구지역에서 멸종위기 조류 10∼20여종을 확인했으나 환경영향 평가서에서는 이에 대한 조사결과와 환경적 중요성이 축소돼 있다"며 "제대로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군청 과장 "갯벌 썩었다"... 장항 어민들 분통

마을 어귀에는 출항을 앞둔 배가 늘어서 있다
마을 어귀에는 출항을 앞둔 배가 늘어서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장항 갯벌이 썩었다"는 박 과장의 주장에 어민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이의승 송림어촌계장 등 인근 5개 지역 어촌계장들은 "수 천명이 어민들이 갯벌 생물을 잡아먹고 수입을 올려 먹고살고 있다"며 "갯벌매립을 위해 못먹을 것을 잡아다 파는 파렴치한 사람으로까지 어민들을 몰아갈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매바위 근처에서 만난 한 어민은 마침 모닥불에 구은 조개를 술안주 삼아 먹고 있었다. 이 어민은 "이곳 갯벌에는 조개, 실뱀장어 등 안 나는 게 거의 없다"며 "김 양식을 하는 어민의 경우 올해 평균 3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고향인 전남 광양에서 뱃일하며 살다 매립으로 터전을 잃고 이곳까지 돈벌이하러 왔다"며 "여기마저 매립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해양수산부도 갯벌 매립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해 6월 환경영향평가 검토협의회에서 "본 사업은 멸종위기 조류의 서식지 훼손은 물론 해양환경에 큰 영향이 예상된다"며 "입지타당성에 대한 고려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양수산부는 또 "사업지구에는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갯벌이 잘 발달돼 있어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고 평가했다.

초읽기에 들어간 막바지 환경영향평가 협의는 어떤 결론이 내려질까. 새만금처럼 '저감대책'과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갯벌매립의 수순을 밟게 되는 건 아닐까.

여 사무국장은 "1조5천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갯벌을 죽이기에 앞서 해안 송림과 백사장, 멸종위기종 도래지 등 천혜의 자원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해 보자"고 거듭 제안했다.

마을 어귀마다 고깃배들이 어둠이 깔리는 바다를 향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장항읍내에 들어서자 서천군 요청으로 내걸었다는 '조기착공'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즐비했다.

장항 어민들은 내일, 그리고 내년에도 갯벌을 지나 앞바다에 고깃배를 띄울 수 있을까.

서천군 "이미 9월착공 여론화".. 평가연구원 "환경중요성 왜 축소했나"
[요약] 환영영향평가서 검토협의회 토론내용

지난 해 6월 금강유역환경청 주최로 장항국가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한 환경영향평가 검토협의회가 열렸다. 주요 토론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 갯벌매립, 퇴적 문제점, 금강하구지역 멸종위기종을 확인했으나 평가서에는 조사결과가 축소돼 있다. 새만금이 개발된다면 이곳의 갯벌 보존가치는 크다.

한국토지공사 환경평가팀장 본 사업은 현재 실시설계 단계다. 해안 매립은 아마도 장항이 마지막일 것이다. 조사해보면 갯벌 토질은 조개가 살 수 없을 정도로 갯벌의 기능을 상실했다. 사업시행시 환경을 보전하면서 개발하겠다

서천군 경제진흥과장 장항쪽은 조개가 없고 잡히는 것도 질이 안좋아 현지인은 먹지 않고 어민도 떠나는 실정이다. 새도 매립대상지에서 4km 떨어진 곳에 많다. 따라서 사업시행으로 인한 환경영향은 적을 것이다.

군산대 교수 장항은 낙후된 지역이니 환경피해 최소화하면서 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

충남대 교수 인간은 환경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중·소규모 개발은 난개발이 되기 쉽고 오히려 환경훼손이 심하다. 산업단지 조성을 해야 관리도 잘된다. 다만 사업주체도 개발시 환경보전을 위한 구체적 관리방안이 필요하다.

충남도 기업지원과 충남은 수도권 공장 입지 요구를 감당 못하고 있다. 장항이 계획대로 개발되어야 한다.

한국토지공사 환경평가팀장 사업만 추진할 수 있다면 평가자료는 보완하겠다. 일단 호안공사를 한 후 토지이용의 효율적 측면을 재검토해 사업추진하겠다.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 환경영향평가서에는 환경적 중요성, 종의 규모 등이 축소돼 있다. 이를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

한국토지공사 환경평가팀장 사업추진만 가능하면 의견대로 하겠다. 서천군민이 기다림에 지쳐 있다. 현재 공사발주를 의뢰한 상태다. 미진한부분은 조건부로 의견을 내주기 바란다.

해양수산부 해양보전과 해양수산부는 금강유역환경청에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자문을 하기 전까지 사업이 시행되는지 등에 전혀 알지 못했다. 사업 진행방식에 문제가 있다.

서천군 경제진흥과장 (이미) 올 9월 착공을 여론화했다. 보완지시 하더라도 금년내에 착공하도록 협조를 요망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