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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피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초년성공, 중년불안, 그리고 노후빈곤이라고 한다. 누누이 강조해도 그야말로 가슴에 와 닿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리에 동의한다면 인생을 3등분 해서 초년고생, 중년안정, 노후풍요는 그야말로 추구해야 할 세 가지가 아닌가.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하고 풍요한 노후생활은 누구나 추구하는 바일 것이다.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초년에 고생하고 중년에 안정을 찾고 노년에는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다닌다든지 의료비의 걱정이 없을 여건만 만들어진다면 이보다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너무나 바쁘고 지치는 현대인의 삶에 '노후대비'도 한가한 염불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에게 "노후생활 대비 계획은 가지고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지" 또는 "글쎄" 등등과 같이 전혀 남의 일로 생각하기 일쑤다.

▲ 재무설계 강연회에서 고령화사회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참가자들.
ⓒ 오마이뉴스 김시연
"투자는 인구 통계 특성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모든 자산 가격의 하락과 상승은 그 이면의 인력과 정보와 자금이 모이는가 여부로 결정이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는 곳의 상가가 번성하고 또 사람과 돈이 모이게 마련이고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의 가격이 이러한 수요의 바탕 위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자산의 가격도 생물처럼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해서 성숙해지고 노화되는 사이클을 거친다.

30년짜리 모기지론으로 한도껏 대출 받아 서울 및 수도권지역에 아파트를 사려 하시는가? 주식 투자는 위험하다 싶어 노후자금을 강남 오피스텔에 묻어두셨는가? 주의하시는 것이 좋다. 부동산 투자 불패의 신화를 만들었던 베이비붐 세대의 첫 주자, 55년생들이 2010년 초반부터 우리나라의 평균 퇴직 연령인 만 56살에 들어선다.

아니, 이나마 성공적인 퇴직이 전제 조건이라고 봐야 하고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횡행하는 요즈음엔 이마저도 예측의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예측을 위해 살펴보자면 2010년대 후반엔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주자 63년생이 노후생활을 시작한다. 이들이 퇴직 뒤에도 수도권에서 살까? 노후자금은 쓰지 않고 부동산만 깔고 앉아 있을까?

워낙 우리나라 사회가 다이내믹하다 보니 10-20년을 쳐다볼 엄두가 안 나거니와 지금 현재도 '인해전술' 하면 떠오르는 중국의 인민해방군 250만의 정규군보다 40%나 많은 숫자인 341만 명의 '미래'는 생각의 영역 밖인 신용불량자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사치스러운 걱정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살펴보면 세 트렌드를 적어도 따라가거나 앞서 가지 않으면 투자이든 일이든 괴로운 미래가 계속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은 보통 노후자금을 연금과 저축으로 모은다. 직장일, 자기 공부에 바빠 주식, 채권은 할 시간이 없다. 2억의 빚을 내서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이사 간 회사원인 이모 부장(41)의 경우 그래도 저축을 매달 50만원씩 20년을 부으면 퇴직 때 3억∼4억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도 있다.(믿기는 어렵겠지만)

그는 15년 뒤 퇴직하면 그 돈으로 세계일주를 할 것이고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그는 집을 공기 좋고 살기 복잡하지 않은 전원주택으로 옮길 작정이다. 노후자금? 국민연금, 개인연금 말고 따로 마련한 것은 없다. 주식투자? 꿈도 안 꾼다. 97년 중간퇴직금과 여윳돈 1억원을 넣었던 계좌는 지금 1000만원이 되었다.

재건축붐을 타고 다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값이 오르면, 얼마 전 분양받은 방배동 주상 복합 아파트 23평형을 세 놓으면 노후는 그럭저럭 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생각한다. 그 돈으로 그는 2010년대 말 정년까지 버티다가 고향에 갈 계획이다.

자산시장 양극화가 시작됐다

이들 기성세대를 읽는 키워드는 자녀, 건강, 전통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40대의 제1 관심사는 자녀 교육이라고 한다. 건강은 2순위란다. 40대는 전통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캐주얼보다는 정장을, 양옥보다는 한옥을, 양식보다는 한식 밥상을 좋아한다. 인터넷 이용비율은 56%. 20∼30대의 이용비율이 72∼86%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재테크 수단으로는 다른 세대보다 부동산 선호도가 높고 주식 선호도는 낮다.

한국보다 10여 년 먼저 베이비붐을 겪은 미국이 그랬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46년생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85년부터 미국의 경제와 자산시장은 장기 상승세를 탔다. 고성장 시대가 길어지면서 과잉공급이 일어났다. 20년 뒤 베이비붐 세대의 아이들, 메아리 부머는 저성장 시대에 남게 됐다. 모든 자산의 값이 오르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주식 중에서도 배당수익과 시세차익이 높은 1등 기업, 독점기업 주가가 더 올랐다. 부동산 중에서도 캘리포니아, 보스턴같이 살기 좋은 해안지역 집값이 더 올라갔다. 오르는 상품만 계속 오르다 보니 자산시장 양극화는 심해졌다. 나머지 자산은 저수익, 고위험 상품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도 자산시장 양극화는 시작됐다. 주식시장에선 시가총액 상위종목 우량주들이, 채권시장에선 국고채와 일부 A등급 우량채가, 부동산시장에선 서울 강남 일부 지역만이 꾸준히 값을 올리고 있다. 그러면 우량주, 우량채, 강남 부동산에 투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 부분부터 한국과 미국이 다르다.

강남 아파트? 지금 팔 수 있는 사람은 행운. 받아줄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도 앞으로는 위험자산이다. 금융과 부동산의 연계성이 높아지면서 가격 변동폭이 커지는 추세다. 장기적으로 보면 기대수익률도 다른 자산보다 낮다. 90년대 이후 누적수익률을 보면 서울 아파트 수익률이 종합주가지수보다 높았던 때는 딱 두 번, 98년 외환위기 때와 2002년-2003년뿐이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시연
부동산에 많은 자산을 묻어두는 것은 좋지 않다. 리츠, 오피스 같이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피스텔, 원룸은 임대수익을 꾸준히 내기엔 공급초과 상태다. 채권 같은 안정적 금융자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추천한다.

금융시장 트렌드도 미국과 다르다. 저금리 시대에 경제활동을 시작한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주식, 뮤추얼펀드 같은 고위험 자산 투자를 주저하지 않았다. 고금리 시대를 산 한국의 1차 베이비 붐 세대는 주식이라면 신물을 낸다. 몇 번 주가 폭락을 겪은 탓이다. 개인 자산 중 주식비중은 미국인이 30%를 넘는 데 반해 한국인은 7.8%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저금리 시대가 본격적으로 왔으니 우리 금융자산 구조도 바뀔 것이다.

새 트렌드, 부동산 지고 금융자산 뜬다

국민연금 등 대형투자자의 시장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기대해볼 만한 호재다. 국민연금연구센터 기금정책과의 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금융자산 투자액은 2012년에 주식 41조 원, 채권 192조 원을 넘어선다. 그 당시 시가로 봤을 때 한국 주식시장의 10%, 채권시장의 18%를 차지하는 규모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미국의 기업연금과 비슷한 퇴직연금제를 도입했다. 미국에선 기업연금, 개인연금, 뮤추얼펀드가 커지면서 주가와 채권값이 올랐다. 한국에선 무려 20여 년 늦게 그런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트렌드는 시작됐다. 자산시장 변화의 예고편은 상영되고 있다. 예고편은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부동산은 지는 해고, 금융자산은 뜨는 해다.' 이런 상황에서 20년 뒤를 내다보며 모기지론으로 한껏 대출받아 집을 산다? 노후자금을 마련하려고 부동산에 장기 투자한다? 잃는 기회는 없나, 다가올 위험은 없나 꼼꼼히 따져볼 때다. 한국 자산시장에 다른 물결이 몰려오고 있으니.

그러면 월세로 살면서 있는 자산을 한국 주식, 한국 채권에 '몰빵' 투자한다? 잠깐! 베이비 붐 세대 불황이란 함정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98년 외환위기로 1차 베이비붐 세대들이 감원 대상으로 몰려 전체 실업률이 7%로 치솟았을 때,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속한 청년세대 실업률은 12.2%를 기록했다. 지금도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가 넘는 6.9%에 이른다. 불황 탓, 생산성 향상 탓도 있지만 대졸자 숫자가 많은 탓도 크다.

LG경제연구원은 청년실업 문제가 대졸자 감소세에 가속이 붙는 2007년까지 지속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 뒤도 첩첩산중이다. 한국 금융시장이 탄탄하게 뜨려면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이 주도하는 한국의 산업이 중국, 인도란 만만치 않은 경쟁자와 싸워 살아남아야 한다. 게다가 2019년부터는 인구 14%가 65살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출산율 1.08명 상황을 지속시키면 국내 경제활력은 뚝 떨어진다.

2020년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하고 난 이후, 자산시장 트렌드 예측과 이에 대한 대비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현실의 무게 속에 그다지 비중 있게 평상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나만의 문제가 아닌 공통의 관심사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금융자산 '몰빵' 투자는 위험

비정규직 증가의 폐단도 해소해야 한다. 내일 돈벌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고용자가 주식이나 펀드 같은 위험자산에 돈을 집어넣는 것은 투기행위에 가깝다. 현재 추세대로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기업연금, 개인연금 시장의 성장은 바라기 어렵다. 미국에선 정규직 고용이 늘어나면서 기업연금, 뮤추얼펀드 시장이 커 주식시장으로 돈이 흘러들었다.

물론 국민연금만으로는 장기투자 문화 형성이 불충분하다. 재정고갈 시점이 언제냐 골머리를 앓는 처지에 한국 금융시장을 받쳐주자고 투자 규모나 기간을 늘일 순 없을 것이다. 벌써 국민연금 내부에선 분산투자 차원에서 해외투자 비중을 금융자산의 5%까지 늘리겠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국내 매수세가 탄탄치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는 언제든 손 털고 나간다. 큰손들이 이러는데 개미들이 배겨날 재주는 없다. 제아무리 금융시장이 중장기적으로 뜰 전망이라고 해도 '몰빵' 투자는 위험하다.

2023년 전후 인구감소와 고령화 심화는 필연적으로 '금융시장 빅뱅'을 가져올 것이고 현재까지 자산 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인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생활 시작에 따른 연금과 자산관리의 위기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도출될 수 있는 추정이다.

베이비붐 세대 호황은 실물경제가 떠받쳐주지 못하면 한순간에 베이비붐 세대 불황으로 바뀐다. 결국 금융의 영원한 콤플렉스는 베이비붐도 해소해 줄 순 없다. '금융은 실물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민감한 사회적 사안인 국민연금의 고갈과 국내 투자자산 시장 성장의 한계, 그리고 필연적으로 고려해야 할 외국 분산투자에 대한 수요 증가에 대한 이슈, 2030세대의 소비패턴과 부동산 지고 금융자산이 뜨는 미래 등, 그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낭만 중산층으로 남고 싶은가? 이런 대목을 주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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