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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그윽한 눈길로 산소 주변을 둘러보고 계십니다.
아버님이 그윽한 눈길로 산소 주변을 둘러보고 계십니다. ⓒ 이승숙
"그기 참 히안체. 꿈에 너거 할매가 보이는기라. 할매가 내 손을 잡아끌며 자꾸 할매 다리를 만지는기라."

어머니는 잔디를 심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무이요, 와 카시니껴? 어데 안 좋으시니껴? 이카면서 내가 너거 할매 다리를 주물러 줬다 아이가. 자꾸 주무르다가 잠이 깼는데 암만 캐도 이상하더라 카이. 그래서 너거 아부지한테 캤지. 어무이 산소에 한 번 가보라고 너거 아부지한테 캤지."

지난 장마에 시댁 조부모님 산소의 축대가 무너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그만 산소 축대를 휩쓸고 지나가 버렸나 봅니다. 시할머니가 누워 계신 아래쪽 축대가 무너졌답니다. 비 온 다음 날 아버님이 산소를 둘러보고 오셨는데도 이를 못 보고 오시자 할머니가 어머님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신 겁니다.

한 달쯤 전에 아버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야, 9월 17일은 날 비워 놔라이. 그 날 산소 좀 돌봐야겠다. 그러이 그 날 내려오너라."

윤달에 산소 일을 하면 좋다고 하시며 날을 받으셨답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고향인 의성으로 내려갔습니다. 시조부모님을 모신 곳은 따뜻하고 아늑해 보였습니다.

"나는 암만 와봐도 여게가 좋다. 너거 눈에는 그래 안 보이나?"

아버님은 산소 자리를 둘러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님이 태어나시기도 전에 아버님의 아버님, 즉 우리 시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합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유복자로 태어나셔서 아버지 얼굴도 못 보고 자랐습니다.

먹고 살 논밭전지도 얼마 없었던 우리 집은 시할머니의 길쌈과 삯바느질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지문이 다 닳도록 일을 해서 자녀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산소 둘레에 잔디를 심고 있습니다.
산소 둘레에 잔디를 심고 있습니다. ⓒ 이승숙
"너거 할매는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나는 어무이만 생각하마 눈물이 나온다."

효성이 지극했던 우리 아버님은 할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적십니다.

"조상님한테 잘 하마 복 받는다. 부처님도 믿고 하느님도 믿는데 조상님 믿으마 더 좋제. 우야든동 조상님한테 잘 해야 된다."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잘 사는 거는 다 조상님이 돌봐주셔서 그래 사는 거다. 내가 열심히 살았고 또 너거들이 다 잘 따라줘서 이만큼이라도 살게 됐지만 그거도 다 조상님이 살펴봐줘서 그런기라. 우리 집은 인자 잘 사는 일만 남았다. 옛날에 못 살았으니 인제는 잘 사는 일만 남았다. 그러이 너거도 더 열심히 살아라."

아버님은 잔디가 듬성하게 자란 봉분에 흙을 돋우시며 다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거 엄마하고 내 자리는 저게 해 도고. 할부지 모신 자리보다 좀 낮은 곳에 저 쪽 방향으로 해서 해 도고."

아버님과 어머님이 누우실 자리도 이 참에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성으로 제물을 차려놓았습니다.
정성으로 제물을 차려놓았습니다. ⓒ 이승숙
"아버지, 앞으로 백 년 뒤에나 저 자리에 가시지 그 전에야 가시겠습니까?"

맏아들인 우리 남편이 아버님께 그리 말하자 옆에서 잔디 심고 계시던 어머님이 "하이고 야야 그거사 듣기 좋은 소리지만 앞으로 언제 닥칠지 우에 알겠노. 그러이 미리 너거한테 말해 두는 거지" 하십니다.

"어머니, 백 년은 좀 심했고 앞으로 오십 년 뒤에나 어머니 아버지 저 자리에 안 누우시겠습니까"하며 내가 말하자 남편은 "무슨 소리하노? 백 년은 문제 없다. 어무이 백 년은 문제 없습니다"합니다. 산소 둘레에 잔디 심다가 백 년이네 오십 년이네 하며 잠시 아들들 사이에 웃음이 오갔습니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면 오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가곤 했습니다. 조상님들께 올리는 차례도 정성을 들여서 하기보다는 어른들이 하시는 대로 따라서 했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메를 뜨고 적을 굽는 어른들을 보면서도 그 마음을 이어받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조상님들의 돌보심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할머니 산소를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새로 심은 잔디를 손으로 꼭꼭 다져 주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이야기를 늘 들었으면서도 할머니 생각을 못 했습니다. 이제는 할머니를 마음으로 생각할게요. 할머니도 우리들을 어여삐 여겨 주세요. 할머니 증손자 증손녀들도 챙겨 주세요.'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눈을 꾹꾹 감았다 떴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정성을 다하면 그 정성이 결국에는 나한테로 돌아오겠지요. 지극한 마음으로 조상님들을 섬기는 어른들을 보면서 그 정성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우리 집 평화가 윗대 어른들의 보살핌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렸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렸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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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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