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화바위솔은 바위틈, 전통 기와집의 기왓장을 좋아합니다.
연화바위솔은 바위틈, 전통 기와집의 기왓장을 좋아합니다. ⓒ 김민수
이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해안가 절벽이나 바위틈, 척박한 땅에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꽃이 있습니다. 이파리가 연꽃을 닮아 '연화'요, 바위틈에서 자라기 때문에 '바위솔'이라는 이름을 얻은 꽃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바위연꽃'이라고도 합니다.

물에 피어나는 연꽃과 삶의 터전이 대비되는 꽃, 바위에 피어나는 연꽃인 셈입니다. 타는 목마름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고, 꽃을 피운 후 고사하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피어나는 꽃이 연화바위솔입니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제주도 해안 절벽에 자생한다고 식물도감에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아직 자연 상태에서 만난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아주 예쁜 자태 때문에, 보이는 족족 그를 탐하는 이들에게 뽑혀나간 까닭일 것입니다.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으면 절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자연이니까요.

꽃몽우리 가득안고 오랜 시간 기다립니다.
꽃몽우리 가득안고 오랜 시간 기다립니다. ⓒ 김민수
제주에 살 때 어느 분 집에 들렀다가 화분에 무성하게 피어난 연화바위솔을 만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거미줄처럼 늘어진 연화바위솔 서너 개를 얻어왔습니다. 작은 것을 키우는 재미가 좋다며 큰 것으로 주신다는 것을 마다했고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연화바위솔의 후손들이 퍼지고 또 퍼져 제법 풍성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키우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목마르지 않게 물을 주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내버려두듯 키워야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자랐습니다. 고운 흙에 심은 것은 약하게 자랐고 꽃도 엉성하게 피웠는데, 너무 많이 퍼져서 그냥 텃밭 한 구석에 던져둔 것이 애써 가꾼 것보다 더 잘 자랐습니다.

연화바위솔은 꽃을 피우면 말라죽는다고 합니다. 죽음의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마지막 열정을 꽃피운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때론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나를 위안하기 위하여 사랑할 것이 아니라 마음 아프더라도 그가 좋아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지요.

작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예쁩니다.
작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예쁩니다. ⓒ 김민수
제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연꽃이라도 바위에 자랄 수 없는 법이고, 연화바위솔은 물이 너무 많으면 상해버립니다. 그러니 어느 누군가에게 좋다고 모든 이에게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참기 힘든 상황이 그 누군가에겐 필요충분한 모든 조건을 갖춘 상황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연화바위솔이 바위에서 자라는 비밀, 그것은 다육질의 이파리에 있습니다. 수분을 충분히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아침이슬 혹은 바람타고 오는 습기까지도 소중하게 자기 몸에 간직했을 것입니다. 그 간직함은 차라리 목이 말라 죽을지언정 언제나 넘치지 않을 만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네 사람들은 늘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려 합니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 충분한데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자기에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들만큼 가지려고 하는 데서 비극은 시작됩니다.

남들만큼 가져야 성공한 삶이라고 부추기는 사회에서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실패자의 삶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필요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가지는 것이고, 가지는 만큼 자유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만큼 속박된 삶을 살아갑니다.

다른 각도에서 찍어보았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찍어보았습니다. ⓒ 김민수
언젠가는 자연의 품에 안긴 연화바위솔을 만나는 것이 꿈입니다. 아마도 그 꽃은 지금 내가 만난 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줄 것입니다. 그가 사람의 손길을 탄 꽃보다 못 생겼어도 내 마음은 더 콩닥거릴 것입니다.

자연상태의 꽃, 그것은 억만장자라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미 사람의 손길을 타는 순간 야생화가 아닌 원예종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런 점에서 들에 핀 꽃을 보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은 부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모든 이의 것으로, 자연의 것으로 알고 또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가끔 "어쩌다 꽃에 미쳤을까" 생각해 봅니다. 맨 처음에는 그냥 추억들이 들어 있는 꽃이라 신기했고, 예쁘니까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우리 산하에 피는 꽃들을 나 혼자 보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사진과 글로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이런 꽃, 저런 꽃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은 우리네 삶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다더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쁘고 행복하듯, 아름다운 들꽃 이야기를 들으면 기쁘고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들, 그것은 참으로 깊어서 혼자서 마음에 품고 있기에는 벅찼습니다. 물론, 그 감격을 온전히 나누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그들에게 늘 미안하지요.

무성하다 못해 빽빽하게 피어난 꽃입니다.
무성하다 못해 빽빽하게 피어난 꽃입니다. ⓒ 김민수
뭔가를 갈망하되 타는 목마름으로 할 일이다.
타는 목마름을 겪은 자라야 물맛을 안다.

그런 사람이라야
맨송맨송한 물이 왜 포도주보다 맛난지 알고
그런 사람이라야
맨송맨송한 삶이 왜 꽃보다 아름다운지 알고
그런 사람이라야
그날 같은 그 날이 왜 그 날이 아닌지도 알고
그런 사람이라야
사람 사는 맛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

뭔가를 갈망하되 타는 목마름으로 할 일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피어나는 바위솔처럼.


(자작시 '바위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