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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마을을 빙 둘러 묵계 터널로 가는 도로와 마을로 연결된 길로 갈라졌다. 우리는 마을로 연결된 길로 갔다. 이 마을 이름은 원묵계라고 했다. 이름의 의미로 봐서 원래의 묵계라는 것이다.
동네 길가에는 사람이 없어 애써 집에 있는 사람을 불러서 묵계치를 넘는 옛길이 있냐고 물었더니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마을에 대부분 요양을 위해 온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옛날부터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고 그가 이장이라고 하는데 아마 어디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고 보니 마을 전체가 잘 꾸며진 요양 촌 같았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박덕성(62)씨에 따르면 이 마을은 해발 640m이고 약용식물이나 고로쇠, 토종벌을 키우고 벼농사를 하는 곳은 없다고 한다. 그것도 고작 한 두 명이고 다른 사람들은 외지에서 살다가 주말에나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뿐이라고 했다. 본인도 이 마을에 이사 온지 10년쯤 된다고 했고 휴양을 위해 왔다고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2004년에 뚫린 묵계터널의 차량 소음 때문에 불만이라고 했다.
그는 묵계치를 넘어가는 산길은 잘 보이지 않으니 터널 안으로 직접 걸어가라고 했다. 그의 설명대로 우리는 터널로 가는 길을 따라 원묵계 마을을 빠져 나왔다. 생활인이 아닌 요양인만 사는 마을은 또 다른 마을에 형태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며 뭐라고 해야 하는지 아무튼 생활력이 없는 마을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터널은 마을 바로 뒤편에 있었다. 묵계터널은 꽤 긴 터널이었다.
>묵계 터널 안에서
만약 당신의 차가 얼마나 큰 소음을 내며 먼지를 내고
유독가스를 품어 내는지 알고 싶다면 터널로 가라!
자동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터널은
충분히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묵계 터널을 걷는 것은 산속에 심장을 걷는 것처럼 서늘한 기분이기도 했고 굉음을 내고 달려가는 자동차의 공포를 정확하게 체험 할 수 있는 일종의 자동차 공포 체험장이기도 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이 터널 안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자동차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체험을 해보게 하고 싶었다. 아마도 진절머리가 나서 차를 쳐다보는 것도 잠시 동안은 주저하게 될 것이다.
조카와 나는 지겨운 터널을 빠져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터널 안은 특유의 탁한 공기와 서늘함과 자동차의 굉음 때문에 가파른 오르막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터널에는 언제나 끝이 있는 법이다. 20여분을 걷자 드디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하게 밝아오는 터널의 또 다른 입구이자 출구에는 잠시 잊고 있었던 강열한 열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터널 넘어 8월의 아스팔트에는 아지랑이가 수도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묵계 터널을 빠져 나오면 하동에서 산청으로 군을 옮겨 타게 된다. 묵계 터널을 내려와서 곧장 밑으로 내려가면 거림계곡이 나온다. 거림계곡으로 지리산 세석평전으로 오르기도 하는데 나는 한 번도 거림계곡으로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거림계곡에서 민박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중산리 넘는 고갯길을 물어보니 자기는 잘 모른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동네 사람들도 그 고갯길을 몰랐다. 단지 그 고개를 넘으면 중산리가 나온다고만 했고 정확하게 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청년들이 마을 점포에 있어서 길을 물었지만 중산리 고갯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너무 오래되어서 길이 없을 것이라고 했고 젊은 사람은 가보지 않아서 길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나 모두 오래된 산길을 몰랐다.
단지 나이 드신 분들이 아마 위로 올라가면 길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만을 듣고 우리는 길을 찾아서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 분의 말대로 내서보건소에서 꺾어서 오르막으로 계속해서 오른다가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야 했는데 길이 아주 가팔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 길로 가는 길에 예쁜 집 두 채가 있는데 몇 해 전에 시골로 내려와서 사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 분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길을 따라서 올라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 길로 웬일이냐면 집으로 초대를 해주신 것.
집 주인장도 지리산이 좋아서 지리산에 터를 잡고 산다고 했다. 오미자차와 계란을 내어 주었다. 5가지 맛이 난다는 오미자는 주인장의 인심과 더위에 어름이 담겨 있어 7미 이상의 맛이 느껴졌다. 지리산 산길도 여기 저기 잘 알고 있어서 이 고개를 넘으면 바로 중산리가 나오고 중산리에서 내원사 가는 오래된 산길이 있으니 그 길로 가라고 길도 가르쳐 주신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쉬었다가 점심을 먹고 가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그분 말대로 조금 올라가자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이 나왔고 곧장 내려가자 중산리가 나왔다. 중산리는 지리산 천왕봉을 가장 빠르게 가는 루트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우리도 묵계치를 넘어 중산리까지 쉬지 않고 왔더니 점심 먹기 전에 도착했다. 시원한 중산리 계곡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8월의 태양은 여전히 우리의 머리 위에서 작열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농민에게 힘을 주는 직거래 참거래 농민장터에도 올립니다.(www.farmm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