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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나 건강공단 직원을 사칭한 환급 사기가 잦아들 기미가 없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국세청이나 건강공단 직원을 사칭한 환급 사기가 잦아들 기미가 없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제 한숨 돌렸다고 마음놓던 참이었습니다.

지난 여름 아내가 욕실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크게 다쳤습니다. 교통사고로 2급 장애인이 되어 20년 가까이 힘겹게 살아온 아내. 이번 사고는 정말 아내 표현대로 '이제는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치명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마쳤고 건설회사에서 수술비도 받았습니다.

10월 24일은 아내와 제가 맞선을 본 날입니다. 결혼기념일도 제대로 못 챙겨주는 남편이 이 날이라고 별수 없어 라면에 밥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그 때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맞선기념일에 65만원 환급? 이게 웬 떡!

"여기는 건강보험공단인데요. 건강보험료를 과오납하셔서 통장으로 넣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에 저희 팀장께서 정확한 금액과 수령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공단 직원 목소리 뒤로 여러 직원들이 통화하는지 시끌시끌하더군요. 공단에서 많이 바쁠텐데 전화로 이렇게까지 알려주니 고맙네 싶었습니다.

바로 다른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여기 공단 지불담당 팀장입니다. 확인을 하겠습니다. 주민등록번호를 말씀해주세요. 저희가 65만원을 환급시켜드리겠습니다. …네, 본인이 맞으신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보내드릴 은행계좌번호를 말씀해주십시오. …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근처의 은행이 어디 있는지요?…30분 내로 가실 수 있다고요. 그러시면 현금인출기가 있는 쪽으로 가셔서 전화를 기다려주십시오. 저희가 인증번호를 불러드리면 바로 송금을 시켜드리겠습니다."

저는 상대방이 제 말을 잘못 들을까봐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를 또박또박 말해주고 확인까지 끝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내에게 으쓱한 기분으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맞선본 날이 아주 좋은 날인가 보네. 먹고 놀아도 공돈이 들어오게. 자, 마나님 저는 수금 좀 하러 갑니다."

은행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공단 직원에게서 전화가 바로 걸려왔습니다. 잡음이 들리고 끊기기까지 하면서 소음이 아주 많이 나서, 저는 공돈을 빨리 못 받을까봐 채근까지 했습니다.

"전화를 다시 걸어주세요."

현금 인출기 앞에 서라고 합니다.

"신용카드를 가지고 오셨지요. 그러면 카드를 카드 미는 곳으로 밀어주세요. …좋습니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계좌조회라고 나오지요. 눌러주세요. …인증번호를 불러드립니다. 일곱 숫자입니다. 앞은 '0'입니다. 누르시지만 모니터에는 뜨지 않습니다. 눌러주세요. 5. 0. 0. 5…… 확인을 하세요. 좋습니다. 그리고 고객님의 비밀번호를 불러주세요."

직원이 참으로 친절하니, 저는 착한 어린이가 되어 하라는 대로 합니다. 공돈이 생기니 아내에게 맛난 것을 사주고 적자난 가계부를 조금은 때울 수 있겠다 싶어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사기 눈치챘을 땐 이미 사라진 내 돈

서로 대화가 끝난 뒤에 기계에서 명세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명세표를 보니 요청금액이라며 제 계좌에 있던 500만원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아직 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당황하고 놀라서 전화기 속 직원에게 외쳤습니다.

"여보세요. 내게 준다는 돈은 어디 가고 내 돈이 빠져나가니 이게 무슨 일이오?"

은행 CD ATM기기에는 환급 사기를 조심하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지만 이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행 CD ATM기기에는 환급 사기를 조심하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지만 이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잠깐만요. 컴퓨터 오류입니다. 착오가 생겼습니다. 잠깐 기다려주시오. 바로 입금 조치해 드릴게요."

그리고는 잡음과 함께 전화가 끊겼습니다. 마침 제 전화는 전지가 나가서 통화할 수도 없습니다. 나중에 그 번호로 전화하니 외국 전화번호였습니다. 이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머릿속이 텅 빕니다.

일단 은행 직원에게 달려갔습니다. 직원은 혀를 차면서 "사기꾼에게 당하셨군요. 우리가 인출기 위에 써붙였는데 속지 말라고……."

은행원이 컴퓨터로 바로 조회에 들어가니 사기꾼의 계좌에 제 돈이 있었습니다. 거래중지 키를 누르는데, 이런 세상에, 은행원의 키보드가 눌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손동작이 둔하여 제 가슴이 타들어 갑니다.

그 은행원은 다른 직원에게 자료를 주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모니터에는 제 돈이 사기꾼의 계좌에 떠 있습니다. 직원이 거래중지를 쳤지만 이미 제 돈은 다른 은행 계좌로 이체되고 있었습니다. 다시 다른 은행의 계좌로 따라갑니다.

돈은 을지로에 있는 어느 은행 현금 인출기를 통해 현금으로 백만원씩 인출되고 있었습니다. 눈을 뜨고 제 돈이 사라지는 꼴을 보면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어지러워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습니다.

은행원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요, 사기꾼들은 어르신같이 은행 일을 모르시는 분들을 노리니까요, 아까 보셨지요, 다른 사람 돈 500만원이 사기꾼 계좌에 들어갔다가 바로 현금으로 빠져나가는 것을요, 돈을 찾을 수 없어요"라며 "경찰서에 신고를 하시려면 하세요, 본인은 당하셨지만 남들은 조심하게끔 범인을 잡도록 해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날아간 수술비... 아내 볼 낯이 없습니다

가슴이 졸아들고 입안이 타들어 갑니다. 집에서 공돈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에게 이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하려니 목까지 멥니다. 경찰서 가는 길에 공중전화를 찾아서 전화를 겁니다. 아내가 뒤로 자빠지는 모습이 전화기 위 허공에 그려집니다.

경찰서에 갔습니다. 제가 쓴 진술서를 형사가 보더니 "돈 많으시네, 이런 일이 많아요, 못 찾아요, 거하게 비싼 술 마신 셈 잡아요"라고 합니다.

신고는커녕 내 생전 처음 거하게 비싼 술을 마신 사람이 되어 걸음까지 휘청대며 저는 경찰서를 나왔습니다. 걸음이 천근만근이며 가슴에는 찬바람이 붑니다. 아내의 병원비며 당장 나갈 각종 공과금 생각에 죽을 맛입니다.

집에 들어섰습니다. 아내의 얼굴에도 혈색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내 수술비가 들어 있던 돈을 다 털리고 온 제 낯이 말이 아닙니다. 제가 그 돈을 받아내려고 건설회사와 다투던 하루하루가 떠오릅니다. 아내는 제 말을 묵묵히 들었습니다.

"은행원 손 동작이 빨랐으면 그 돈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더 약 올라. 나한테 불러준 인증번호가 우리 통장 잔액인 걸 보면 사기꾼들이 주민등록번호하고 계좌번호만 가지고도 잔금이 얼마인지 알 수가 있었다는 얘긴데, 은행 전산망에 구멍이라도 난 것 아냐?

"은행 현금인출기에 '공과금 환급 사기 조심하라'고 쓴 걸 나중에 보았다고? 그래요. 도둑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믿었지. 자기도 참, 계좌 조회라고 하고 자기의 암호를 누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얼른 중단을 했어야지. 자기에게 은행 일도 못 시킨다고…. 아이들만도 못하니 어쩐대요."

맞선 30주년, 아내에게 바치는 반성문

저녁이 다 되었습니다. 아직도 보조기로 절뚝절뚝 몸이 불편한 아내는 그래도 남편에게 끼니를 대느라고 남은 밥에다 새우젓을 넣고 끓여냅니다. 열불이 나서 밥이 안 넘어갈 우리 부부가 먹을, 맞선 30주년 성찬입니다.

세월이 가면, 내일이 오면 바라던 꿈이 이뤄질 줄 알았습니다. 이제 꿈을 꾸기엔 늙은 제 나이 육십입니다. 아내에게 '기쁨조'가 못되고 '미움조'가 되고만 이날 참으로 밉습니다.

젊은 날 힘든 나날 참고 살면 좋은 일이 있을 줄 알며 내일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 담보로 사업합네 투자하고 한 푼도 못 받은 억대가 넘는 돈 생각도 납니다.

내일보다 어제가 그립습니다. 속고 살아야 할 내일이 두렵습니다. 저보다 더 복장터질 아내의 심정을 헤아리면 괴롭습니다. 저는 반성문을 써 아내의 머리맡에 놓았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 세월의 강 건너
창가에 달빛 내리던 신혼의 밤
사랑해 당신을 하며 마주보던
그때 그 시절 그리워라 그리워

당신과 나 사이 세월이 물같이 흐른 지금
손잡으면 내 가슴에 무너지는 당신
슬픔마저 행복하였던
그때 그 시절 그리워라 그리워


"공과금 환급해준다는 전화는 100% 사기"
국세청·국민연금공단 직원 사칭 환급사기 피하려면...

국세청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직원을 사칭한 공과금 환급 사기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과오납금한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등을 계좌 이체해 주겠다고 속여 피해자 계좌에 있던 돈을 빼가는 수법. 이들 사기단은 중국을 본거지로 한국 내 점조직을 운영하면서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사건 발생 이후 각 기관과 은행에서는 현금인출기에 '환급 사기' 스티커나 안내문을 붙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으나 피해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세청에는 매일 많게는 100건이 넘는 신고 전화가 걸려오고 있으며, 다른 기관도 피해 접수가 계속되는 상황.

지난달 국회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보험료 환급 사기는 57건으로, 피해금액은 건강보험이 44건 1억6016만원, 국민연금은 13건에 31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청에서도 각 지방 사이버수사대를 중심으로 수사를 벌여 몇 차례 범인을 검거하기도 했으나 범인들이 추적이 힘든 대포통장이나 인터넷전화를 사용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세청 징세과 담당자는 "언론이나 은행을 통해 계속 홍보를 해도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리다 보니 똑같은 수법에도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거듭 주의를 당부했다.

범인들의 일반적인 사기 수법 및 주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공공기관에서 공과금 환급해준다는 전화는 100% 사기다. 국세청이나 국민연금관리공단, 건강보험공단 등에서는 전화나 ARS 등으로 환급해 주지 않는다. 걸려온 전화번호부터 확인하라. 필자에게 온 발신번호는 001-8008-2000000과 001-8008-2000003이었다. 필자에게 전화를 건 여성은 연변 말씨였고 ARS 자동음성안내로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주로 인터넷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화 연결 상태가 좋지 않다.

2. 피해자를 현금인출기로 유도한 범인들은 카드를 넣고 자신들이 부르는 '인증번호'를 입력하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계좌번호, 금액 등을 차례차례 누르게 하여 피해자 계좌에 있던 돈을 범인들의 계좌로 이체시키는 수법을 쓴다. 예를 들면 500만원을 빼가려면 피해자 의심을 피하기 위해 0500…식으로 500만원 앞에 인식되지 않는 숫자 '0'을 누르게 한다.

3. 현금인출기에 '환급 사기'를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으나 대개 고객들은 자기 볼일에 급급해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현금인출기 앞에서 휴대폰을 통해 범인들의 지시를 받는 점을 감안, 사기 피해자로 의심되면 청원경찰이나 은행직원이 다가가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국세청 신고전화: 02-397-1522~3
국민건강보험공단: 1577-1000
국민연금관리공단: 국번없이 1355
/ 황종원·김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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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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