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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은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공개적인 여권 정계개편 논의를 시작했다. 김혁규, 이광재 의원과 참정연 대표인 김형주 의원이 나란히 앉아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지난 4일의 일이다. 그 뒤 미묘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가 최근 열린우리당 재선 의원 및 386 출신 초선의원들을 만나 노무현 대통령이 정계개편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다른 친노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정권 재창출의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탈당이 아니라 탈당의 할아버지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류가 급반전 되고 있는 걸까? 노무현 대통령이 범여권 통합의 길을 열어주기로 작심한 걸까? 지난 4일의 동교동 방문은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보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교동 방문을 "확대해석하지 말라"는 청와대의 설명 때문만은 아니다.

안희정 씨의 말, 즉 노무현 대통령이 정계개편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말을 확대해석하면 이런 뜻이 된다. 정계개편에도 여러 길이 있다. '도로 민주당'식 정계개편만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그 길이 뭘까? 노무현 대통령이 전에 한 말이 있다. 외부선장을 영입할 수 있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또 다른 최측근인 김병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한 말도 있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돌고 돌다 보니 다시 원점이다. 이렇다면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필두로 한 당 사수파의 주장은 당을 정비한 뒤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것도 하나의 정계개편이다. 당 정비과정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과정에서 외부세력에 문호를 개방하면 기존 정계에 새로운 세력을 얹히는 것이니까 개편이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얘기다. 점검 포인트는 따로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추구하는 정계개편이 정권 재창출을 보증할 수 있을까?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만으로 배를 수리한다고 해서 새 선장이 올까?

불발로 끝난 정동영계-김근태계의 만남

주목할 현상이 있다. 김근태계 의원들과 정동영계 의원들이 어제 저녁에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깨졌다. 만남을 제안한 쪽은 김근태계이고 약속을 깬 쪽은 정동영계다.

여론을 의식해서라고 한다. 가뜩이나 명분이 없는 통합 주장인데, 게다가 상황도 좋지 않은데 두 계파가 모여 세를 과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엔 전제가 깔려있다. 두 계파 모두 통합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다. 이런 전제에 입각해 보면 정동영계가 약속을 깬 건 상황에 맞게 보폭을 조절하는 차원이지 통합 원칙 자체를 조정하는 차원은 아니다.

정말 그럴까? 아닐 수도 있다.

<한국일보>와 <세계일보>가 어제 비슷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열린우리당 소속 140명의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응답자 수는 두 신문 모두 102명)였다. 결과도 비슷했다. 통합신당의 필요성에 대해선 <한국일보> 조사 결과 78.4%, <세계일보> 조사 결과 65.6%였다. 통합 대상에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해선 반대와 찬성이 각각 49% 대 38%(한국일보), 39% 대 36%로 갈렸다.

통합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태도는 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통합 주장은 아직 속을 채우지 못한 공허한 외침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세의 쏠림 현상에 따라 중간지대에 있는 의원들이 배를 갈아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동영계는 중간지대에 있는 세력이다. 누가 뭐라든 참여정부에서 2인자 구실을 한 이가 정동영 전 의장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은 모호하다. 열린우리당 창당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면서도 대안으로 통합, 더 정확히 말하면 '도로 민주당'식 통합을 못 박지는 않았다. 국민의 여론과 바람을 충분히 살핀 뒤 정하겠다고 했다.

정동영 전 의장의 처지도 그를 옥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대주주다. 최대 계파의 수장이다. 하지만 '도로 민주당'식 통합이 이뤄지는 순간 이 지분을 내놔야 할지 모른다. 호남의 예비맹주 자리는 고건 전 총리에 내줘야 할 판이다. 권력은 무상한 법, 힘이 빠지면 세가 약해지는 건 필연이다. 세가 약해지면 정동영 전 의장의 정치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

친노 세력이 넘어야 할 세 개의 관문

▲ 친노 세력이 당내 최대 계파인 정동영계와 손을 잡게 되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이 과정에서 추미애 전 의원의 역할을 기대해봄직 하다. 사진은 지난 10월 16일 추미애 전 의원의 법무법인 아주 대표변호사 취임식에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시 친노 세력으로 돌아가자. 친노 세력이 당내 최대 계파인 정동영계와 손을 잡게 되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통합에 적극적인 김근태계를 고립시키면서 당 잔류를 압박할 수 있다. 이 관문만 통과할 수 있다면 리모델링 된 열린우리당의 세를 앞세워 민주당 세력을 흡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추미애 전 의원의 역할을 기대해봄직 하다. 추미애 전 의원으로서도 지분을 얻게 되는 것이기에 손사래까지 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고건 전 총리가 합류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고건 전 총리는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그의 역할은 '도로 민주당'의 접착제라는 점에 있었다.

얼개가 대충 완성된다. 친노 세력에게도 가능성은 남아있다.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면 된다.

첫관문은 정동영계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열린우리당의 역학구도가 바뀌고 정계개편의 향배가 달라진다.

두 번째 관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민주당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호남표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라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척을 지지 않는 게 좋다. 후광을 얻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중립지대에서 미동만 하지 않아도 한번 해볼 만하다.

후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동교동을 찾았을 때 차만 마시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 쪽에서 오찬을 제안했다고 한다.

마지막 관문은 반노정서다. 세를 짜고 전열을 정비한다고 해서 국민의 반노 정서를 순식간에 희석시킬 순 없다. 방법이 뭘까? 이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의 할아버지'라도 감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외부 선장이 키를 잡았다는 전제 하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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