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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쫓으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정말 개처럼 생긴 녀석이 현관 바로 아래 계단에 웅크리고 있더란다. 그러나 개가 아니었다. 노루였다. 나와 함께 산책할 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던지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단다.
노루는 사람을 해치지 않지만 사람이 노루를, 바로 눈앞에 나타나 달아나지 않고 멀뚱거리며 바라보고 있는 노루를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길 수 있을까? 아내가 기겁을 하여 들어가 내게 바로 전화를 했던 것이다.
아내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기를 기다려 모임이 아직 끝나지 않아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아래 산음어른에게 말씀드려 보라고 했다.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앞장서 해결해 주시는 우리랑 가장 가깝게 지내는 어른이었기에 부탁드려 보라고 했다.
모임 중에도 걱정이 돼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다가 집에 부리나케 와 문을 열자마자 물었다.
“어찌 됐어?”
“산음어른이 오셔서 쫓았어요. 그런데…” 하며 말끝을 흐리는 품이 어쩐지 안도감보다 안쓰러움이 담긴 것 같아 다시 물었다.
“왜?”
“아무래도 잘못 쫓아낸 것 같아요.”
이어지는 아내의 이야기는 이랬다. 어른이 오시기에 몽둥이로 때려잡나 했더니, 집에 들어온 짐승은 해치는 게 아니라면서 어르신은 노루를 보며 갖고 온 지팡이로 댓돌을 툭툭 치며 이렇게 말을 했단다.
“니가 와 여그 와 있노?”
그래도 움직임이 없자,
“퍼뜩 니 집으로 가야제. 여 있으면 안 된다카이!”
제법 힘주어 하는 말에 그제서야 일어나 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빗 속으로 어슬렁거리며 가더란다.
나는 도무지 아내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노루가 사람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과 사람의 꾸짖음에 물러났다는 말이.
그러나 그보다 아내를 후회하게 만든 건 아무래도 새끼를 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뒤뚱거리며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런 마음이 들었단다. 새끼 낳을 때는 됐고, 비는 오고 해서 적당한 곳을 찾다가 우리 집으로 온 것이라고...
테라스 아래는 비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망사랑 천막이랑 넣어두었기에 바람도 막을 수 있었다. 한데보다 거기가 새끼를 낳는데 훨씬 나은 장소였으리라. 그런 걸 쫓아냈으니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꼭 새끼 낳으려는 게 아닐 수 있지 않느냐는 말에, 아내는 태백이와 강산이가 적으로 여겨 짖지 않고 친구처럼 짖은 것도 다 그 까닭이라 했다. 짐승은 짐승끼리 통하는 게 있다고. 아무리 적이라 해도 새끼 낳으러 온 노루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어제 우리 부부는 밤새 뜬눈으로 지샜다. 그리고 개 짖는 소리만 나면 밖을 나갔다. 그러나 한 번 떠나간 뒤 그 녀석은 자기를 반가이 맞아주지 않은 인간이 미웠는지 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 나를 배웅하려고 따라 나온 아내의 눈이 먼 산을 향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삽화는 김태현 선생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