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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에서 탄 소형 아시안스피릿 비행기.
마닐라에서 탄 소형 아시안스피릿 비행기. ⓒ 김동희

"거기를 왜 그렇게 힘들게 갔다 오려고 하는데?"
"아마 삼 일만 있으면 지겨울걸.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취소하고 다른데 가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소리를 들어가면서 왜 팔라우를 가려고 했는지,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투명한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그곳의 닉네임으로 붙은 '신들의 정원'이라는 말 때문에 생긴 환상을 쫓아 간 것이었을까?

@BRI@일주일에 두 번 팔라우로 가는 전세기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음에도 좀 더 머물고 싶은 생각에 다른 방법을 알아보느라 머리가 쥐가 날 정도였다.

"방법은 몇 가지 되요. 괌에서 매일 팔라우로 가는 비행기가 있죠. 또 대만이나 일본, 그리고 필리핀 마닐라에서도 갈 수 있어요."

시간과 돈 여러 가지 생각을 한 후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주일에 세 번 팔라우로 가는 아시안 스피릿 항공사 (Asian Spirit Airline: 개인적으로 항공사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이름을 지어냈을 수 있는지! 하늘에 아시아인의 정신을 띄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어렵사리 비행기 표를 사 들고 도착한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조그만 아시안 스피릿 비행기는 정말 가볍게 하늘로 올라갔다. 필리핀 다바오를 거쳐 팔라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 너무나 작고 조그마한 공항 그리고 가장 번화하다는 코로 시내를 지나 숙소로 가는 길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놀라웠다.

"수도가 우리나라 읍내 같다고 하더니 읍내보다 더 한산하네."

팔라우에서 번화한 코로 시내 거리. 느낌은 우리네 읍내 같다.
팔라우에서 번화한 코로 시내 거리. 느낌은 우리네 읍내 같다. ⓒ 김동희

띄엄띄엄 보이는 네온사인, 조그마한 단층 또는 이층 높이의 가게들, 간혹 보이는 몇 층을 넘기지 못하는 숙소들을 지나 짧은 다리를 지나면 말라칼 섬으로 넘어간다. 너무 조용한 이곳, 이곳이 나의 숙소가 있는 곳이다. 말라칼 섬은 코로의 큰 부두가 있는 섬으로 알고 가서 그래도 번화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그저 큰 부두가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숙소 앞에는 슈퍼마켓이 두 개나 있었다. 이곳의 물건들은 다국적이었다. 미국에서 수입된 쌀, 고기들, 통조림들, 그리고 필리핀에서 들여온 음료수와 과자들, 일본과 대만에서 들여온 여행객들을 위한 라면들과 인스턴트 식품들로 가득 찬 진열장 어느 곳을 봐서도 팔라우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이 곳에 있는 물건 중 팔라우에서 만들어진 건 도대체 몇 개나 될까? 내가 확인 한 바로는 물 밖에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 늦은 저녁도, 그 다음날 아침 겸 점심도, 그리고 저녁까지, 가게에서 산 재료들로 한끼 한끼를 때웠다. 오는 길이 너무 피곤해서 나가기 싫었고 오랜만에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곳에서 게으름을 피워보고 싶었다. 또 더더욱 게으름에 핑계거리를 주도록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여행 와서 비가 온다는 것, 항상 싫어하던 그 것. 짧은 여행에 비가 온다는 것은 정말 저주스러울 정도로 싫은 것이었다. 특히나 해가 반짝 들어야 더욱 더 빛나는 바다에 왔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솔직히 내일이 걱정되긴 하지만 밤 새 세차게 몰아치는 빗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밤이었다.

아침에 비는 멈춰 있어도 금새라도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은 가시지 않았다. 어제의 기분은 어디로 가고 걱정이 앞선다. 항상 맑았으면 하는 여행자의 마음이 다시 꿈틀거린다.

여행이 끝날 때쯤 어떤 사람이 나에게 행운아라고 했다. 있는 내내 날씨가 쾌청했다며 자기 형이 놀러 온 2주 동안 내내 비가 와서 형은 우울해 했다고. 그는 다른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이곳은 비가 많이 와야 해요. 이 작은 섬 나라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먹을 물, 그리고 사용할 물이 없어 고생할걸요. 매일 단수가 될 테고 제대로 씻지도 못할 테니까요. 생각해봐요. 얼마나 끔찍할지."

나만의 기쁨을 위해 밝은 햇살만을 원했던 철저히 이기적인 여행자. 자연이 뿌리는 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가 오던 해가 뜨던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은 그게 안 된다.

말라칼(Malakal)에 대해 상상했던 모든 것은 다 나의 상상이었다. 최소한 이것은 있겠지 하는 것들은 그곳에 없었다. 다이버 샾들이 많아 대부분의 바다 여행의 출발지라는 말라칼. 나는 당연히 그런 배들이 출발하는 큰 부두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큰 부두는 없었다. 대부분의 부두는 흩어져 구석에 박혀 있었다. 다이버 샾들은 다들 자신의 부두를 가지고 있었고 그 곳에서 배는 출발했다.

다이빙샾의 개인 부두.
다이빙샾의 개인 부두. ⓒ 김동희

내가 하루 중 가장 사람을 많이 보는 시간이 바로 아침 다이버 샾에서이다. 다이버 샾의 아침은 항상 분주하다. 장비를 준비하고 챙기는 사람들, 오늘의 다이빙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 배에 싣고 갈 음료와 점심을 챙기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친다.

나도 큰 가방에 나에게 맞는 장비들을 챙겨놓았다. 인간이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그 속의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만나기 위해,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로 아침은 분주하다.작은 배에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다이빙을 준비하는 사람들.
함께 다이빙을 준비하는 사람들. ⓒ 김동희

구름 낀 어둑한 바다로 나간다. 구름 낀 하늘 아래에서도 팔라우의 바다는 에메랄드 빛을 보여준다. 난 그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1월 13일부터 9일간 팔라우 여행을 했습니다. 팔라우의 수도는 코로에서 바벨다옵의 멜레케옥으로 이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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