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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보이는 파이프 물고기
자주 보이는 파이프 물고기 ⓒ Mark from Saipan

우리 10명의 다이버들을 태운 배는 바다로 향했다. 구름을 뚫고 파도를 뚫고 힘차게 달렸다. 일년 반만에 다이빙을 하는 나의 경우, 오랫동안 다이빙을 하지 않았으면 복습 코스를 거치는 게 원칙이었지만 시간상 건너뛰었다. 그런 상태에서 차디찬 파도를 맞으니 온 몸이 긴장되어 경직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오늘 나를 챙겨줄 개인 가이드가 있다. 복습 코스를 받지 못한 대신 하루 개인 가이드와 함께 하기로 했다.

"오늘의 다이빙 포인트는 빅 드롭 오프(Big Drop Off) 과 터틀 코브(Turtle Cove) 입니다. 첫 다이빙은 빅 드롭 오프입니다."

@BRI@나는 개인 가이드와 내려가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오늘의 다이빙 포인트를 설명하는 저 사람과 함께 내려가야 한다. 공기통에 장비들을 연결하고 납 두 덩이를 허리춤에 차고 열심히 설명을 듣는다. 내용은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쯤으로 나올 것이며, 조류 방향은 어떻고, 그 곳의 지형은 어떤지에 대해 그리고, 이곳에서 자주 보이는 물고기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려준다.

배가 멈췄다. 모두들 장비를 챙기고 물 속으로 뛰어든다. 짠물이 느껴진다. 공기를 빼면서 물 속으로 들어간다.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추위가 느껴진다. 귀가 아픔을 느낄 때마다 코를 잡고 압력을 맞춰준다. 이곳은 바다 속의 절벽을 뺑 둘러보는 월 다이빙(Wall Diving)이다. 무엇을 봤는지,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나는 지금 이 곳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그날 저녁 적은 노트에 상어 세 마리, 작은 거북이 한 마리, 세로로 서있는 파이프처럼 생긴 물고기 등이 적혀 있어 그런가 보다 할뿐이다.

함께 다이빙한 마크가 찍은 거북이. 팔라우는 어디서나 거북이는 쉽게 볼 수 있다.
함께 다이빙한 마크가 찍은 거북이. 팔라우는 어디서나 거북이는 쉽게 볼 수 있다. ⓒ Mark from Saipan

긴장감과 추위로 나의 공기 소모량은 대단했다. 게다가 배에서 내릴 때 좀 헐겁다 생각했던 마스크 때문에 코로 물이 들어가 버려 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코에 짠물이 들어가면 그만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가지 겹치니 나의 공기량은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안전 정지를 하는데(안정 정지는 바다 속 깊이 내려갔다 올라올 때 행하는 것으로 깊은 곳에서 갑작스레 올라오면 몸에 질소가 압력에 의해 배출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게 되 몸 속 질소 농도가 높아 어느 정도 올라온 뒤 몇 분 동안 그 높이에 유지해 몸 속의 질소 농도를 낮추는 것이다. 안정 정지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경우가 많다) 레귤레이터(공기통에 연결되어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는 호스)를 통해 나에게 들어오는 공기의 느낌이 이상하다. 숨은 쉬는데 무언가 충분치 못한 느낌. 공기가 반만 오는 느낌. 그 느낌은 점점 더 강해졌다.

'아! 이게 공기가 떨어진 거구나.'

바로 옆 사람에게 공기가 떨어졌다는 신호를 보내고 옆 사람의 호스(옆 사람이 공기가 떨어졌을 때 주기 위한 호스를 옥토퍼스 라고 한다) 하나를 집어 물었다. 처음 다이빙을 하면서 열심히 배웠으나 공기가 떨어졌다는 신호를 쓸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의 공기를 쓸 줄이야! 이 어이없는 상황에 개인 가이드는 안전 정지를 충분히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함께 나와버렸다. 머리가 망치로 맞은 것처럼 띵하다. 가이드에게 나를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항의하니 나의 다이빙 실력은 아주 괜찮다며 괜히 다른 소리를 해댄다.

"첫 다이빙에서 어떤 사람은 갑자기 5m 이상 떠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넌 아주 잘하는 거야."

배에서의 점심은 힘들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편하지가 않다. 머리 아픈 것이 없어질 즈음 우리는 두 번째 다이빙을 준비했다. 첫 번째 다이빙에서 엉망이었던 마스크를 꽉 맞게 조이고 터틀 코브에 들어갔다. 터틀 코브라고 해서 거북이가 있는 건 아니라는 가이드 말대로 거북이는 보이지 않았고, 까만 도미(Black Snapper)가 가득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지나가니 너무 아름다웠다. 긴장이 좀 풀린 탓에 첫 다이빙보다 많이 편안했다.

호주에서 온 조가 찍어준 자그마한 물고기
호주에서 온 조가 찍어준 자그마한 물고기 ⓒ Joe from Australia

다이빙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구름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바다가 빛이 나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은 다른 세상이었다. 회색 빛이었던 깊은 바다는 새파랗게 바뀌어있었고, 옥색 빛들은 더 영롱하고 선명하게 자신의 색을 내기 시작했다. 햇빛이란 같은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커다란 힘이 있다.

배에 탄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깔끔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아름다운 팔라우의 바다를 멋지게 찍기에는 나의 사진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지만 내 눈으로 본 세상과 프레임으로 본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괜시리 속이 상한다.

한참을 지나 부두로 돌아온 우리 배는 근처로 세 번째 다이빙을 가기로 했다. 가이드의 샹들리에 동굴(Chandelier Cave)이라는 말에 환호성을 지른다. 이곳은 물고기를 보러 가기보다는 특이한 물 속 동굴 지형을 경험하기 위해 간다. 물 속으로 들어가면 올라가는 동굴이 있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그 공간을 빠져 나와 다른 방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이렇게 4번의 숨을 쉴 수 있는 동굴 속 공간을 만나게 된다.

"그럼 오늘 다이빙 횟수 총 6번이네요. 한번에 네 번이라…."

이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손전등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조금만 들어가기만 해도 어두워 손전등이 없으면 보이질 않는다. 첫 번째 방에 사람들이 모였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가 레귤레이터(공기를 들이마시는 호스 및 장치)를 빼고 숨을 쉬다니! 머리 위에는 종유석이 아름답게 내려와 있다.

"누가 이걸 발견했대요? 찾아내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어부래요."

해가 나자 팔라우의 바다 색은 영롱하게 바뀐다.
해가 나자 팔라우의 바다 색은 영롱하게 바뀐다. ⓒ 김동희

정말이지 물 속에 이렇게 숨 쉴 수 있는 동굴을 찾아내다니 그 어부는 장비 없이 어떻게 찾아냈을까? 신기하다. 서로의 손전등으로 어두운 동굴 속을 비추며 모두들 감탄을 연발한다. 물고기 한 마리 보지 못했지만 이 특이한 다이빙 포인트는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서 숨을 쉬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이곳이 바다 속 사랑방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굴 속에서 나올 때는 들어갈 때와 달리 손전등을 모두 꺼버린다. 그러면 바깥에서 은은하게 들어오는 빛을 찾을 수 있고 그곳으로 달려나가면 된다. 그 은은한 바깥 세상의 빛이 몽환적이다. 아무리 가도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저 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마법의 세상 같은 빛.

다이빙 숍에 돌아왔을 때는 그저 따끈한 물에 힘들었던 하루를 녹여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멋모르고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을 때는 주변의 잘한다는 칭찬에 내가 잘하는 줄 착각했었다. 매번 바다 속에 들어가는 것이 설레고 신났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의 당황된 순간을 겪고 나니 어떨 때는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고되기도 하고 빨리 바다 속에서 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얼마나 더 해봐야 물 밖에서처럼 편안하게 물 속 친구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해봐야 내 몸이 바다와 하나가 될까? 그저 내일은 아름다운 신들의 정원이 날 더 포근하게 받아주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1월 13일부터 9일간 팔라우 여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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