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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가 살렸고 죽였어."

지난 31일 가야산 자락에서 만난 이래홍씨(65)가 던진 말이다.

가야산 자락에서 나고 자랐고 공직에서 물러난 후 5년여 동안 가야산에서 칩거했던 이래홍씨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이곳을 소개하기 전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94년경부터 수학여행, 국내외 관광객이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994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를 통해 가야산 일대의 문화유적을 소개했다. 이로 인해 가야산 일대는 답사코스로 급부상했다.

현재 가야산에는 총 27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토박이는 6가구뿐이고 나머지는 행락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뜨내기들이다. 이곳 주민들은 유명세를 타기 전 나무를 내다 팔거나 나물, 버섯 등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했다. 산골 오지여서 차도 들어오기 힘들었다.

여름철이면 “들어오는데 2시간, 나가는데 2시간”이 걸릴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산세가 좋고 계곡물이 맑을 뿐 아니라 입장료도 없어 관리를 받지 않는 탓이다.

서산시는 가야산이 각광을 받던 1994년 이 일대를 유흥, 위락 등 관광지로 개발하려 했다. 주민설명회까지 마쳤지만 사업은 유야무야되었다.

당시 환경부는 상수원보호구역 일정범위 내에서 개발허가를 하지 말라는 지침을 지자체에 내려보냈다. 가야산 초입은 서산, 홍성, 예산, 당진의 젖줄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서산시가 이를 숙지하지 못한 채 관광지 개발을 추진했다. 이씨에 따르면, 관광지 개발계획 홍보, 주민설명회 등으로 9800만원의 세금만 낭비하고 책임지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 백제 불교문화의 성지 '가야산'이 내포문화권 개발 계획의 광풍에 몸살을 앓고 있다. (출처=가야산연대)
ⓒ 박신용철

가야산 일대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3년 건설교통부가 충남 전체 면적의 29.8%인 2500㎢를 지역특색에 맞는 문화·관광지역으로 종합개발한다는 내포문화권 특정지역 개발계획추진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건교부는 2004년 12월 6일 국토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충남 서산시, 보령시, 홍성군, 예산군, 태안군, 당진군 등 2개시 4개군 955㎢ 일원을 '내포문화권 특정지역'으로 지정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내포문화권 개발은 충남 서북부 가야산 주변지역으로 서산 마애삼존불, 보원사지 등 불교문화권 유적,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 ‘솔뫼성지’, 해미순교지 등 가야산 유적지 주변정비 등 30개 문화유적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 이 일대는 서해안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어 문화관광의 중심지로 발전 잠재력이 높은 곳으로 평가받아왔다.

내포란 충남 서북부 가야산 자락에 있는 10개 마을의 통칭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생선과 소금, 부자, 사대부가 많고 난리가 미치지 않은 승지(勝地)'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의 마지막 숨결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야산은 백제가 660년 나당연합군에 멸망하고 난 후 백제부흥운동의 거점도로 초입을 막으면 자연요새의 지형이었다. 이들은 3년을 버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국가사적 제309호 보원사지에 대한 발굴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내포문화권 개발 사업의 일환이다.

▲ 보원사지 발굴 현장. 1탑 1금당 형식의 전형적인 백제 가람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산시는 저 멀리 관광버스가 세워진 좁은 길을 2차선으로 확포장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박신용철

서산시는 가야산 입구에서 보원사지를 관통해 덕산의 남연군묘(가야사지)를 잇는 2차선 관통도로를 추진하고 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석불’(국보 제84호)에서 100m 떨어진 앞산에 터널이 뚫릴 계획이다. 현장에는 확장공사를 위한 붉은 천을 단 나무막대가 꽂혀 있었다. 4월부터 주민보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만난 서산시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12년 계획으로 보원사지를 발굴하고 있다"며 "발굴 중 유적이 나오면 발굴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졌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가야산 계곡은 산세가 좋고 물이 맑았다. 그러나 유홍준 청장이 이 일대를 소개하면서 개발의 광풍에 시달려왔다.
ⓒ 박신용철
가야산 살리기 문화한마당에 참석한 한 불자는 “보원사지 발굴기간이 최소 12년이라는 것인데 발굴도 하기 전에 사적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놓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계획”이라고 비난했다.

수덕사 주지 옹산 스님은 “보원사지를 관통하는 순환도로를 추진하고 있는데 도보길로 트래킹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산보를 하면서 관광하는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보원사지를 둘러싼 330만 평의 임야는 현재 산림청 소유다. 1994년까지만 해도 가야산 일대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자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전경환 회장이었다. 당시 산림청은 국비 24억여원을 들어 매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외에도 한국전력공사의 송신탑 공사로 가야산 일대가 파헤쳐지고 있다. 충남 예산군 규암에서 해미변전소로 연결되는 송전탑 30여기가 가야산 곳곳에 세워질 예정이다.

가야산시민연대(추) 공동대표 선광스님(개심사 주지), 집행위원장 정범스님(보원사 주지), 삼서스님(일락사 주지)은 지난달 20일부터 가야산 450m 능선에서 ‘송전탑공사 중단, 가야산 관통도로 백지화’ 등을 요구하며 13일째 천막정진기도를 벌이고 있다.

가야산연대, 31일 가야산 지키기 문화한마당 개최
"백제의 미소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충남녹색연합․송전탑반대 신창리 주민대책위 등 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가야산연대는 지난달 31일 오후 충남 서산시 보원사지에서 '가야산 살리기 문화한마당'이 열었다. 이들은 충남시민사회단체, 불교계 등이 모여 ▲가야산 송전탑 반대 ▲관통도로 건설반대 ▲도립공원 지정을 통한 문화유산 보존을 요구했다.

수덕사 주지 옹산 스님은 “산은 지구의 어머니고 숲은 지구의 허파다. 지구와 허파를 훼손해서는 안된다. 철탑을 세움으로 해서 미관상, 풍수상 좋지 않고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김제남 전 사무처장은 “가야산 능선에 30여기의 송전탑이 세워질 계획으로 어머니 속살을 후벼 파내듯 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개심사 불자들도 “경주의 남산이 산라 불교문화의 성지라면 가야산은 백제 불교문화의 성지”라며 “가야산은 지금 포크레인과 전기 톱날 소리가 날카롭게 계곡을 지르며 생명을 죽이고 문화유적을 훼손하고 역사를 매장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원사 주지 정범 스님, 심사, 용현리 주민들과 등은 지난해 11월 20일 등산객들이 ‘철탑을 세우는 데 주민들은 뭐하는거냐?’는 소리를 듣고 반대농성을 시작했다. / 박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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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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