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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 왕성하게 열렸을 때의 우리 집 감나무
ⓒ 정판수
시골에 살아본 경험이 없더라도 며칠 머물러 본 사람이라면 도시보다 일찍 일어나게 된다. 그 이유는 보통 세 가지다. 첫째 새가 우는 소리와, 둘째 닭이 우는 소리와, 셋째 새벽부터 들려오는 경운기 소리 때문이다.

이 중에서 새 소리를 들으며 눈 뜬다는 건 보통 어마어마한 행운이 아닐 게다. 그러나 달내마을에 살고 있으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후두둑 후두둑", "호로롱 호로롱", "쑤꾹 쑤꾹", "삐쭈 삐쭈", "삐요 삐요", "삐비 삐비", "찌이 찌이 찌이", "찌리 찌리 찌" 등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소리 속에 살고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가.

솔직히 난 소리만 듣고 어떤 새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아니 새 소리를 듣고 구별 못 할 뿐 아니라 새를 보고도 무슨 새인지 이름을 아는 경우보다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가끔 다른 이의 글 속에 나오는 '이름 모를 새'니, '이름 모를 꽃'이니, '이름 모를 나무'니 하는 표현을 경멸하면서도 나도 종종 쓴다.

백과사전을 뒤져 보면 봄에 우는 새로 제비, 참새, 까치, 꿩, 멧비둘기, 소쩍새, 쏙독새, 파랑새, 밀화부리, 꾀꼬리, 물까치, 호랑지빠귀, 찌르르기, 후투티, 벙어리뻐꾸기, 휘파람새, 청호반새 등이 나오지만 아는 이름보다 모르는 이름이 더 많다.

▲ 왼쪽이 처음 뿌리가 썩어가는 상태, 오른쪽은 백토를 넣어도 계속 썩는 면적이 늘어난 상태
ⓒ 정판수
그런데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새 울음소리는 다섯 마리 정도다. '째잘째잘째잘'하고 요란하게 울어대는 참새야 다 들어 알 테고, '호르르르'하고 마치 호루라기 부는 소리를 내는 휘파람새와 까치, 까마귀, 박새 등이다.

이 녀석들 모두가 나의 아침잠을 방해하는 건 아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까악 까악' 하고 울어대는 까치소리에 잠을 깬다. 녀석의 울음소리는 다른 새들에 비해 훨씬 선이 굵다. 그래선지 들으면 이부자리에 계속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우리 집에는 나름의 자랑인 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까치집이 있다. 감나무에 까치집이 있다고 하니까 우리 집에 까치가 세 든 것처럼 보이나 사실 따지고 보면 까치는 우리가 이사 왔을 때 이미 집을 짓고 살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세 든 셈이다.

우리 집 감나무는 참으로 크다. 그 크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높이는 10m쯤 되고, 둘레는 어른 둘이 손을 맞잡아야 할 정도다. 그러니 달리는 잎사귀와 열매의 무게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이 감나무가 재작년부터 뿌리 쪽이 썩어가기 시작하더니 그게 점점 더 커져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 현재의 까치집 모습인데, 이 감나무가 쓰러지면 아랫집 지붕을 깨뜨리게 될 위험이 있어 잘라내야 함
ⓒ 정판수
그동안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썩어가는 뿌리 쪽에 무균흙(황토나 백토)을 채워 넣으면 더는 부식이 진행되지 않을 거라고 했으나 처치가 잘못됐는지 계속 썩어가는 게 아닌가. 이제 곧 나뭇잎이 달리고 또 감까지 달리게 되면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테고.

그래서 결정해야 했다. 감나무를 자르기로. 다 잘라낼 필요는 없지만 현재의 높이를 반으로 줄이지 않은 상태에서 태풍이 와 견딜 수 없어 넘어지게 되면 전봇대를 넘어뜨리고 아랫집을 덮치게 된다.

감나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자르면 그만이나 그 위에 터를 잡은 까치집의 처리가 난감하게 된 것이다. 까치집이 감나무 위쪽에 지어져 있으니. 아마 거시적(?)으로 보면 까치집을 없애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리라.

▲ 작년 벼 타작할 무렵의 한가한 까치 모습
ⓒ 정판수
까치가 행운을 불러오는 길조(吉鳥)에서 어느 순간 해조(害鳥)로 바뀌었음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녀석이 쪼아 피해를 준 사과, 배, 포도 등으로 과실 손실이 엄청나고, 당근 감자 마늘 등의 밭작물도 까치떼가 지나가면 수확량이 팍 떨어진다.

그리고 다른 조류의 알이나 파충류도 잡아먹어 지역 고유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고, 전신주에 만들어진 까치집은 정전사고를 일으켜 공장 가동 중단 등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화재의 위험까지 낳는다.

하지만 내게 까치는 해조도 길조도 아닌 반조(伴鳥)다. 내 집에 녀석이 들어온 게 아니고, 내가 녀석의 집에 들어왔기에 좀 봐 달라고 사정해야 할 판이다.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쫓아내서는 안 될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새인 셈이다.

나는 나무를 잘 타지 못하기에 우리 달내마을 나무타기의 고수인 양산 어른께 부탁했더니 역시 "올라가 자르는 건 문제가 아닌데 까치집이…"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신다. 아무리 하찮은 새집이라도 집은 집인데 '어떻게 함부로 허느냐'는 말씀이다. 특히 요즈음이 산란철인데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 날아다닐 때가 지나면 자르자고 하신다. 그러다가 감나무 뿌리를 한 번 더 보고 오시더니 "급하게 됐는데…" 하셨다.

▲ 먼 곳을 응시하는 까치는 혹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을까?
ⓒ 정판수
우리가 집을 짓지 않고, 아랫집도 집을 짓지 않고, 길도 내지 않았으면 까치는 그냥 그 자리에 살아도 아무 탈 없었을 게다. 만약 감나무 뿌리가 썩어 쓰러지면 동물의 본능 상 제가 먼저 알고 피할 테고.

그런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처럼 먼저 까치집을 철거해야 하다니…. 미안한 마음에 다시 한 번 까치집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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