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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률
대명률 ⓒ 이정근
'우매한 중생도 깨달으면 곧 부처다'라는 말이 있다. 심오한 말이다. 이방원이 야인시절 정도전이 전해준 맹자(孟子)를 책장이 헤지도록 읽으며 '덕을 잃은 군주는 폐하여도 된다'라는 말에 심취하여 혁명에 뜻을 품었고 하륜이 전해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독파하며 군주의 덕을 깨달았다. 대학연의는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다.

태조 이성계는 무골(武骨)이다. 이 때문에 가방끈이 짧다. 이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유학을 깨우친 군졸을 군막에 불러들여 성리학을 공부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이방원은 다르다. 어려서 스승 원천석으로부터 혹독한 인성교육과 함께 성리학을 공부했고 과거에 급제한 문인(文人)이다.

이 때문에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태종 조의 학자 조준, 권근, 하륜 등 당대의 성리학자는 학문적으로 이방원에게 범접하려 들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잘 알고 있는 태종 이방원은 세자 양녕에게 공부하라 독려한 것이다.

상소에서 "신극례를 부추겨서 친남(親男)의 먹장난(墨戲)한 종이를 취하여 찢게 하고 말하기를 '제왕의 아들이 영기 있는 자가 많으면 난을 일으킨다'고 하였다"는 대목에서 나오는 먹장난을 한 친남은 충녕 즉 세종대왕을 지칭하는 말이다. 세종은 어려서부터 먹과 가깝게 놀았고 총기가 있었다. 이 때 충녕은 10세였다.

영의정 이화의 상소가 있자 민무질이 억울하다며 대질을 요청했다. 상소에 적시한 혐의가 사실로 인정되면 대명률에 따라 참형에 처해질 중죄인의 운명이다. 죽음의 계곡을 빠져나가기 위한 안간힘이다.
#태종#이방원#양녕대군#권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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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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