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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래시장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끈끈한 정과 애환을 느낄 수 있다.
ⓒ 유병관

6월 4일. 아침식사 후 우리 일행은 예정에 없었던 재래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현대식 건물인 백화점이나 상가들 보다 좁은 골목을 바쁘게 움직이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활기를 느낄 수 있고 저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8시가 조금 지났지만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장사를 시작하려 분주히 손님 맞을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시장 대로변에는 택시 역할을 하는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있었다.

▲ 작품을 완성해 가는 열정을 볼 수 있다.
ⓒ 유병관

재래시장을 둘러 본 후 천년 전 앙코르 시대를 살다간 조상들의 업적을 재현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지어준 조각학교를 방문하였다. 이 학교는 목공예와 석공예 두 가지인데 관광목적으로 소량생산 판매하는 곳이다.

▲ 주말에는 시민들의 수영장으로 이용된다
ⓒ 유병관

서 바라이는 11세기 초반에 건축된 앙코르 유적 중 가장 큰 인공 호수이다. 당시에는 물을 관리하기 위한 인공호수가 여러 개 있었는데 서 바라이가 가장 큰 규모였고, 또 유일하게 메워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서 바라이는 8×2.2km 크기로 동 바라이 보다 조금 크고 깊이도 평균 7m로 더 깊게 만들었다.

▲ 천년의 세월을 함께한 수뽕나무
ⓒ 유병관

사원건립 초기에는 수뽕나무가 사원을 파괴하는 존재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보호하고 있었다. 영화 안젤리나 졸리의 <툼레이더> 촬영지인 이 곳에서 관람 포인트는 단연 나무이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앙코르 제국의 희로애락을 저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따 프롬 사원은 12세기 중반~13세기 초에 자야바르반 7세의 어머니에게 바쳐진 불교 사원으로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된 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과 인간이 만든 사원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마치 정글처럼 나무뿌리가 사원의 기둥과 지붕을 감싸 안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소멸과 생성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 자야바르만 7세 어머니의 방
ⓒ 유병관

내부 벽 전체에 구멍 난 곳은 힌두교 우주론과 일치하는 사파이어 4320여개의 장식과 4만개 진주 등 보석으로 장식되었던 방이었다고……. 따 프롬은 통행로만 만들어 놓은 것을 빼고는 전혀 복구하지 않은 사원이다.

자연이 사원을 어떻게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따 프롬 사원은 아직까지 발견 초기의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다.

▲ 소원을 비는 사람들에게 향은 경건함을 더해준다
ⓒ 유병관

▲ 쁘레야 칸
ⓒ 유병관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지은 불교사원이다. 왕은 동쪽 입구로 드나들었고, 신하들은 서쪽 입구로 출입했는데, 사원의 중앙으로 갈수록 문의 높이가 낮아진다. 이것은 왕을 접견하기 위해 중앙 사원으로 들어가거나 신성한 중앙 사원에 참배하러 들어갈 때는 복종의 의미로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실크 농장
ⓒ 유병관
6월 5일. 캄보디아는 종교적 청정성과 부합되는 뽕나무를 많이 재배하고 있고 비단이 유명하다. 실크 농장은 살아있는 누에가 뽕잎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나뭇가지에 고치를 만든 거라는지, 비단제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또한 넥타이, 스카프, 지갑, 방석 등 비단제품을 살 수 있다. 비단은 한국과 달리 약간 거친 느낌이 들었다.

▲ 왓 트메이
ⓒ 유병관

근처 우물 안에 있던 해골을 모아 놓은 곳으로 프놈펜 근처에 있는 유명한 작은 킬링필드이다. 크메르루주의 잔학성을 볼 수 있는 아픈 상처와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킬링필드 희생자들의 유리로 된 내부에 유골을 모아놓고 명복을 비는 위령탑이 있다.

폴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즈 정권이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지식인, 공무원, 판사, 안경쓴 사람, 반대파들을 무참히 학살한 수가 무려 캄보디아 전체인구의 1/3인 300만 명이나 되었다니 인간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 그 당시 내무장관의 아내였다고
ⓒ 유병관

사진의 여성을 사형시키기 위해 머리에 드릴을 대고 있다. 저 여인 앞에는 자식인 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때 내무장관의 아내로서 권력의 중심 안에서 살다간 저 여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캄보디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간접자본이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도로나 항만, 전기, 상수도, 전화 등 이 매우 어려운 사정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평이나 한숨보다는 오히려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이른 봄 용수철처럼 뛰어 오르려는 새싹처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4박 5일간의 캄보디아 여행은 막을 내린다. 앙코르 천년의 역사를 직접 만지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많은 사람들이 솜사탕 같은 행운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때론 실망과 좌절을 하다 결국 그 행운을 보지 못하고 행복마저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있다. 행복이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마음의 여백을 갖는 일이 아닐까? 앞으로 다가 올 즐거운 순간을 기다리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 행복이란 결국 기다림의 다른 말은 아닐까?

끝으로 5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긴 아름다운 동행을 계획하고 1년간 준비해온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그:#캄보디아, #따 프롬 사원, #서 바라이, #실크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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