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세종이 되려 했는데 태종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다."

KBS1 사극 <대왕 세종>이, 태종 이방원(김영철)을 묘사하면서 생각나는 발언이다. 누구의 발언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 발언을 떠올리니, 2004년 10월 10일자 <조선일보> 칼럼 <'太宗'이라도 되려면>이 떠오른다. 이종원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장 대우의 칼럼이다.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전략) 우선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으로 짧게라도 후세 국사교과서에 기술될 것이다. 이후에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국민들을 절대빈곤 상태에서 끌어올린 박정희 시대가 가장 길게 실릴 것이다. 그 밖에는 '민주화 요구를 무력 진압하고 통치권을 장악했다', '문민시대를 열었으나 환란(換亂)을 초래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나 측근 비리로 시끄러웠다'는 정도가 짧게 기록에 남지 않을까. 냉혹한 '역사의 신'을 느끼게 하는 추론이다.

역사란 기록자의 관점에 따라 평가와 서술이 달라지고, 시대가 바뀌면 그때 정치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내용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서민을 위한 대통령으로, 역사를 소외계층의 관점에서 기록한다면 나름대로 적지 않은 업적을 남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녕 서민을 위한 대통령은 '머리 좋고, 좋은 학교 나온, 힘 있는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그런 말만으론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제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살림살이에 주름이 가고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서민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먹고살 수 있게 해줄 때 진짜 '서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노무현 정권'은 '말 많고 시끄럽기만 했지 남은 것이 없는 시대'로 기록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스스로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고는 "냉혹한 '역사의 신'을 느끼게 하는 추론"이라고 첨부한 부분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요즘 유행하는 "뭐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표현의 근원을 알아볼 수도 있어 흥미롭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단군 이래 처음으로 국민들을 절대빈곤 상태에서 끌어올린"이라는 극찬도 재미있다.

이 칼럼은, 정작 노무현 대통령에게 "태종 이방원이라도 되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저 "소외계층은 '노무현'에게 적지 않은 업적을 남길 것이라고 하지만, 부자나 가진 자들을 외면하는 것을 보면 '말 많고 시끄럽기만 했지 남은 것이 없는 시대'로 기록될 것"이라는 꾸준한 주장을 재방송했을 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종은커녕 태종도 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본다면 화가 날 이야기겠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이 좋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사태' 이후, 열린우리당이 의회의 과반을 점하면서 '태종 이방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비유하자면, 낡은 고려왕실에 다시 권력을 내준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대왕 세종>의 '태종 이방원(김영철)', 노무현 대통령은 과연 '태종 이방원'이었을까?
 <대왕 세종>의 '태종 이방원(김영철)', 노무현 대통령은 과연 '태종 이방원'이었을까?
ⓒ KBS

관련사진보기


노무현 대통령과 태종 이방원의 공통점 '사대주의'

노무현 대통령과 태종 이방원의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대주의 정책'이다.

삼봉 정도전과 태종 이방원의 갈등 중 하나는 대 중국 정책이었다. 정도전은 북벌론자였다. 원·명 교체기의 혼란상이라는 것을 감안해, 전략적으로 여진족을 포섭하면서 명을 공격하고 요동 정벌을 시도하려 했다. 훗날 이 여진족이 중국 청 왕조의 주역이 됐다는 것을 감안해보자. 정도전이 몇백년 이후까지 내다보며 여진족을 포섭했을 리는 없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하지만, 세종 재위 당시에 절재 김종서가 군대를 이끌고 북방에 나아가 4군 5진을 개척한 과정도 생각해보자. 정도전의 요동 정벌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면, 이 기회비용은 다른 곳에서 더욱 유익하게 활용됐을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아쉽다.

<대왕 세종>에서도 다뤘던 이야기지만, 태종 이방원은 명과의 화친을 위해 명나라 환관에게 무시당하는 굴욕도 감수한다.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물론, 왕실과 나라의 '안정'은 보장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얻은 것은 없다.

사대주의의 위험은 '본국'이 위험에 처하면, '신하국'도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훗날 인조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친명정책을 고수하다가 삼전도의 비극을 당했다는 것을 살펴보자. 사대주의의 위험이다. 그 이후 '조선의 본국'의 위치는 고스란히 중원을 장악한 청 왕실이 차지한다.

대한민국 보수정치는 사대주의의 일색이다. '한미 FTA 협상'에 찬성하는 이들 일색이며, 심지어 자국의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세우는 이들도 많다. 이런 이들이 자칭 '정통 보수'라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하지만 똑바로 알아야 한다. 노인계층에 대한 정치적 선동 소재 정도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요구하고 싶어서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군제전략을 신속기동군 체제로 바꾸면서 필요에 의해 제안의 뉘앙스를 남긴 것이다. 그나마의 재협상도 알맹이를 유엔사령부에 넘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많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반미하면 어떠냐"는 발언으로 물의까지 빚었다는 것을 감안해보자. 그러다가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북한 어딘가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었을 것"이라며 입장을 바꾸었다.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들이 '철군'을 공약으로 내걸어 인기를 얻고 있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파병연장'을 주장하고 있다. 보수세력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해야 할 이유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큰 틀의 정책에 있어서는 그네들의 요구사항을 너무나도 잘 들어줬다.

 '대국 황제의 칙사'라고는 하지만, 일개 환관이 횡포를 부린다. 분개하는 양녕대군과는 달리, 태종 이방원은 이를 감수한다. <대왕 세종>에서는 태종 이방원의 대처를 능숙함으로 미화했지만,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삼봉 정도전의 '요동 정벌'이 현실화됐다면, 조선왕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대국 황제의 칙사'라고는 하지만, 일개 환관이 횡포를 부린다. 분개하는 양녕대군과는 달리, 태종 이방원은 이를 감수한다. <대왕 세종>에서는 태종 이방원의 대처를 능숙함으로 미화했지만,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삼봉 정도전의 '요동 정벌'이 현실화됐다면, 조선왕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KBS

관련사진보기


대통령이기에, 대통령만이 알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무조건 친미정책만 고수한 것은 아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모토로 미국 내의 대북강경파와의 알력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요구는 실현됐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도 큰 틀에서 보면 미국식 투기자본들이 환영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색이었다. "반미하면 어떠냐",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책임지지 못할 발언을 한 것이다.

'양위 파동'과 '대연정'

'용의 눈물'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아마도, 냉혹한 마키아벨리스트라는 평에도 굴하지 않고 용으로서 '인간의 눈물'을 감수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을 진행해 왕권을 강화했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용의 눈물>과 <대왕 세종>에서 잘 드러나듯이, 태종 이방원은 끄떡하면 양위 파동을 벌였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를 관철시킨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재미있는 장면이다. 태종 이방원의 '양위 파동'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은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연정은 조금 그… 바로 내 전략이 보통은 옳았다라고 하는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입니다. 내 딴엔 건곤일척의 카드라고 던졌는데, 그게 흑카드가 됐어요.

나는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할 줄 알았어요, 상대방이. 내가 그때 내다본 것은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지고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일사불란하고 우리쪽은 갑론을박이 돼 버렸어요(웃음). 거꾸로 총알이 그냥 우리한테 날라오고. 수류탄을 (적을 향해) 던졌는데 데굴데굴 굴러 와 가지고 막 우리 진영에서 터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이, 감당할 수가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아주 뼈아프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수류탄은 함부로 던지지 말아야죠(웃음)."

<오마이뉴스> 2007년 10월 10일자 기사 <"연정 제안하면 한나라 당황할 줄 알았다 수류탄 던졌는데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려">, 오연호 대표기자가 시도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발언이다. 태종 이방원이 '양위 파동'을 일으킨 이유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곧,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과 자멸을 시도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야당이었음에도 기득권 세력과의 밀착을 통해 여전한 권세를 누리는 한나라당의 자멸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야당임에도 여전한 권세를 누리는 정당'이라는 것을 감안했어야 했다. '대연정'해봐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그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계산을 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수류탄은 데굴데굴 굴러와 열린우리당에서 터진 것"이다.

반면에 태종 이방원은 '양위 파동' 뒤에 반드시 희생자를 남겼다. '양위 파동' 당시, 매부 무서운 것 모르고 날뛰던 처남들이 '양위 파동' 때마다 매부의 진의를 모르고 웃고 다녔다. 결국 그들은 그를 이유로 귀양을 갔다가 곧 목숨을 잃었다. 왕조 국가에서 왕권과의 가까움을 매개로 왕권을 능가할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외척'이다.

새파란 이복동생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외척과 그에 결탁한 신하(정도전)가 어떻게 왕권을 위협하는지를 지켜본 태종 이방원이다. '외척 말살'은 태종 이방원이 체험을 통해 깨달은 왕권 강화의 숙명적 과정이다. 그래서,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줘 뒷전에 물러났음에도 군사권을 틀어쥐고 핑계거리를 잡아 사돈 집안까지 멸문에 처한 것이다. 병약한 아들의 왕권을 고려한 처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누린 집단이라는 것을 염두에 뒀어야 했다. 권력을 오랫동안 누렸기에, '권력'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다. 그런 프로들을 상대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수류탄'을 던졌으니, 다시 돌아와 터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륜(최종원, 우측)'은 태종 이방원의 '장자방'이 될 수 있는 정견과 경륜을 동시에 갖추며, 진정한 '장자방' 노릇을 했다. 반면, 민무구(김응수, 좌측) 형제는 태종 이방원이 벌이는 '양위 파동'의 첫 타깃이 돼 몰락한다.
 '하륜(최종원, 우측)'은 태종 이방원의 '장자방'이 될 수 있는 정견과 경륜을 동시에 갖추며, 진정한 '장자방' 노릇을 했다. 반면, 민무구(김응수, 좌측) 형제는 태종 이방원이 벌이는 '양위 파동'의 첫 타깃이 돼 몰락한다.
ⓒ KBS

관련사진보기


게다가, 태종 이방원에게는 '하륜'이라는 정국의 향방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 경륜을 갖춘 '장자방'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그런 존재도 없다. 안희정씨나 유시민 의원은 '장자방'이 되기에는 재능이 있을지언정 경륜은 짧다.

태종 이방원과 노무현 대통령의 차이는 결국 '체험'이다.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가면서까지 계모와 이복형제들을 죽여 '외척 말살'의 의미를 깨달은 태종 이방원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은 2번의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이겼지만 그들의 본질을 깨닫지는 못했다. 권력에 대한 대처는 맛을 본 자일수록 능숙하다.

<대왕 세종>, '태종 이방원'의 '양위 파동'을 다루다

<대왕 세종>은 19일과 20일에 방영될 5·6회분에서 태종 이방원의 처남 민무구·민무질 형제가 숙청되는 과정을 이야기할 것이다. 세자인 큰 조카의 1등공신을 자처하기 위해 어린 셋째 조카를 죽이려 하던 비정한 외삼촌들이다. 천륜까지 끊을 비정함을 각오한 권력욕은 한계가 없다. 태종 이방원으로서는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주든 반드시 숙청해야 할 대상들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노무현의 양위 파동'이라 할 수 있는 '대연정'은 실패했다. 오히려, 조선왕조의 옛 적수였던 '고려왕실'이 부활해버렸다. 권력에 복권한 '고려왕실'은 총선에서도 압승이 예정돼 있다. 뿌리깊은 권력의 실체를 제대로 뽑아내지 않는 한, 구체제는 언제든 살아난다. 구체제는 어느 나라에서든 쉽게 뿌리 뽑히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혹시 <대왕 세종>을 시청할까? 그렇다면 그는, '태종 이방원'을 보면서 무엇을 느낄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란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오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외척을 말살했고, 공신들의 세를 약화시키기 위해 공신들이 무엇보다 아끼던 사병까지 몰수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태종 이방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아들인 세종은 '수령금지고소법'과 '신문고 폐지'로써, 신권을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태종 이방원이 '정도전'이라는 이름 때문에라도 무척이나 싫어했던 '의정부서사제'까지 부활했으며, 이는 수양대군이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된다.

돌고 다시 돌고, 정치는 그런 것이다. 한나라당 대선승리와 총선 압승 가능성의 적지 않은 부분은 '안티 노무현 정서'의 국민적 확산이다.

설령 그것이 보수언론의 왜곡 때문이라 할지라도, 큰 틀에서의 정책에서 한나라당과 뜻을 같이 하며 '대연정 수류탄의 내부 폭발'로 인해 지지자들을 이탈시킨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엄청난 실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태종 이방원이 되는 것에도 실패한 본질적인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대왕 세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