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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질쿰 사막 계속 펼쳐지는 사막
▲ 키질쿰 사막 계속 펼쳐지는 사막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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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띵하다. 시간은 오전 8시. 도보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늦게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나를 재워준 식당 주인 알리셰르는 나를 보더니 자기 머리를 두드리면서 뭐라고 묻는다. 아마 내 머리가 괜찮냐고 하는 것 같다.

"괜찮아! 괜찮아!"

사실은 안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기색을 보일 수는 없다. 나는 대충 세수를 하고 짐을 꾸렸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새벽 1시까지 맥주와 보드카를 마셨던 것 같다. 나는 그 술값과 안주로 먹은 음식값을 지불하려고 했는데, 알리셰르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단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니까 자기가 대접한 것으로 한단다.

그 가족들도 돈 필요없으니까 그냥 가라고 한다. 고마운 사람들. 손님을 환영하는 유목의 전통이 남아있어서인지 이곳의 현지인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알리셰르 가족도 마찬가지다. 나는 알리셰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생수와 탄산음료를 각각 1리터씩 사서 출발했다.

걷다보니까 어젯밤에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함께 술을 마셨던 누리딘의 말에 의하면 여기에서 28km 떨어진 곳에 작은 마을이 있다고 한다. 그 마을은 그야말로 사막 한가운데의 마을일 것이다. 누리딘은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이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즈스탄에 가려면 비자가 없어도 된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에 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 우즈벡과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교류가 있지만 투르크메니스탄과는 아무런 교류가 없단다.

누리딘은 자기도 한국에 가고 싶다면서 한국에서 일하면 돈을 얼마나 벌수있냐고도 물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면 한달에 얼마나 벌더라? 나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1000-1500달러 정도 벌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었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 한달 수입의 10배 가량 되는 돈이다.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누리딘

키질쿰 사막 사막에서 일하는사람들의 숙소
▲ 키질쿰 사막 사막에서 일하는사람들의 숙소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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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쯤 걷다보니까 사막 안쪽으로 작은 집 한채가 보인다. 저 집도 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집일까. 나는 핸드카를 밀면서 그 집쪽으로 걸어들어 갔다. 나를 맞아준 것은 두 마리의 커다란 개였다.

"컹! 컹!"

개들은 큰소리로 짖으면서 나에게로 뛰쳐나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한마리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한꺼번에 두마리가 달려들면 무슨 수를 써야하나. 그때 그 집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나오더니 개에게 뭐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개들은 멈춰서더니 꼬리를 내리고 되돌아간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여기는 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숙소다. 젊은 사람들 여러명이 이곳에 모여있다. 사막 저멀리 무슨 파이프가 보인다. 내가 그것을 가리키자 그들은 가스 파이프라고 말한다. 저 가스 파이프를 유지보수 및 관리하고 있는 것일까.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이 집은 나한테 아주 훌륭한 휴식처이다. 짐을 한쪽에 놓고 방으로 들어가자 이들은 차를 내오면서 마시라고 권한다. 넓은 방에는 컴퓨터와 에어컨, TV가 있고 집 한쪽에는 여러개의 침대가 놓여있는 침실도 있다. 나에게 밥을 먹고 가라고 하면서 잠시후에 감자와 양파를 삶은 요리를 만들어왔다.

보드카를 권하길래 나는 웃으면서 연신 손사래를 쳤다. 그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낮잠도 조금 잔 후에 다시 출발했다. 나를 대접해준 친구들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면서. 개들도 내가 손님인줄 아는지 얌전히 앉아있다.

길을 걸으면서도 그 개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꾸 떠오른다. 도보여행을 하는 도중에 커다란 개와 마주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이곳 현지인들은 결코 개를 묶어두는 경우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를 풀어두는 사람들이 종종있는데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오죽할까.

도보여행자에게 달려드는 개들

키질쿰 사막 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
▲ 키질쿰 사막 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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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개들이 도로를 지나다니는 트럭이나 승용차를 보면 가만히 있는데, 걷고 있는 나를 보면 맹렬하게 짖으면서 거리로 뛰쳐나온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송아지만한 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수 있는 개들보다는 더 크다. 도로 앞에서 커다란 개와 단독으로 대치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처음에는 경험이 없어서 어찌할줄을 몰랐다. 그런 경우에 개는 내 바로 앞까지 와서 고개를 들고 힘차게 짖어댄다. 내가 겁을 먹고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면 개도 한두 걸음 다가오며 계속 짖는다.

이래서는 답이 안나온다. 몇 차례 이런 경험을 하고나서 나도 요령이 생겼다. 개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더라도 절대로 물러서면 안된다. 나도 그자리에 멈추어서서 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대치하다가 내가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다가가면 십중팔구 개도 한 걸음 물러선다. 내가 개를 두려워하듯이 개도 나를 꺼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움직이면서 개의 영역을 벗어나면 된다.

그런데 가끔씩은 개 때문에 울화통이 터질 때가 있다. 안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개**들까지 설쳐댄다. 한번은 짜증을 이기지 못해서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하며 핸드카를 두손으로 번쩍 들어서 개에게 집어던지는 시늉을 했었다. 그러자 개는 움찔하더니 뒤돌아서 몇걸음 도망친다.

그럴 경우에는 그 자리를 벗어나기가 좀더 수월하다. 내가 개보다 센놈이라는 것을 개에게 보여주면 개도 함부로 나한테 달려들지 못한다. 개하고 내가 일대 일로 맞붙는 상상을 한적도 있다. 나도 어느정도 대가를 치르겠지만, 결국에는 내가 이길 것이다.

개가 가지고 있는 무기라야 기껏 튼튼하고 날카로운 이빨 뿐이지만, 나는 두손 두발을 모두 공격용으로 사용할수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나도 부실한 내 어금니를 얼마든지 동원할 수있다. 그러니 객관적인 전력면에서는 내가 우세한 것 아닐까. 물론 싸움이란 것이 전력만으로 판가름나는 것은 아닐테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개가 반쯤 정신이 나가서 나한테 달려든다면 그때는 싸우는 수밖에 없다. 걸어오느라 지쳤기 때문에 도망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겁먹거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맞붙는다면 얼마든지 개한마리 쯤이야 제압할수 있지 않을까. 이 먼곳에 와서 도보여행을 하며 별 상상을 다한다. 기껏 길을 걸으면서 한다는 생각이 고작 개 한마리하고 엉겨붙어서 싸우는 상상이라니.

작은 마을 무스타킬릭에 도착하다

키질쿰 사막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준 우즈베키스탄의 용사들
▲ 키질쿰 사막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준 우즈베키스탄의 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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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충분히 쉬었는데도 또 지친다. 며칠동안 사막을 걸어서인지 내 오른팔에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생긴 작은 물집이 십여 개 잡혀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까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보기에도 불쾌한 모습인데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뭐하나. 물집이 더 심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팔에는 손수건을 넓게 펼쳐서 감았다.

걷다보니까 군인들의 기념비가 나타난다. 나는 그 기념비가 만들어주는 그늘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도 시원한 대리석이다. 이들은 모두 1999년에 죽었다. 그 해에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는 앉아서 물을 한모금 마시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전사한 군인들의 기념비 앞에 눕는 것이 현지인들의 눈에는 불경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 몸의 상태는 그런 것을 신경쓸만한 여력이 없다.

그렇게 그늘에서 빈둥거리다가 다시 출발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무스타킬릭'이라는 간판이 나오고 그 옆으로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오후 5시. '무하마드 잔'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하룻밤 재워달라니까 작은 방 하나를 나에게 내준다. 차가운 음료수를 먹고 싶어서 말했더니 냉장고에 있는 생수 한병을 꺼내왔다. 그런데 이 생수도 차갑지는 않다. 사막의 열기가 냉장고의 냉기까지 증발시켜버린 모양이다.

마당의 평상에 앉아서 그 물을 홀짝이며 맞은 편의 사막을 바라보았다. 이 마을은 사막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어쩌면 평생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일생동안 사막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며칠동안 사막을 걷는 것 만으로도 진이 빠지고 멍청이가 된 기분인데, 일생동안 사막을 바라보며 살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막을 바라보며 사는 것과 도시 건물들 속에 묻혀 사는 것, 이 두가지는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전기도 풍족하지 않고 물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이 사막의 매력이다. 보이는 것은 모래벌판뿐이고 들리는 것은 바람소리뿐인 사막이 던져주는 심심함이다. 평범한 일상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사막을 방문해서 한 일주일 살아보면 어떨까. 진정한 권태와 단조로움이 무엇인지 아마 알게될 것이다.

하루종일 휴식시간을 많이 가졌는데도 비교적 일찍 목적지에 도착한 하루다. 짐은 대충 방안에 풀어놓고 마당의 평상에 큰 대자로 누웠다. 곧 해가 질테고 그러면 수많은 별들이 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북두칠성도 보이고 카시오페아도 떠오를 것이다. 카시오페아는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 고르곤을 박살내고 구해낸 안드로메다의 어머니다. 사막에서의 유일한 친구라면 밤에 떠오르는 수많은 별들이다.

키질쿰 사막 사막의 마을 무스타킬릭
▲ 키질쿰 사막 사막의 마을 무스타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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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타킬릭 마을 식당의 주인 무하마드 잔과 가족들
▲ 무스타킬릭 마을 식당의 주인 무하마드 잔과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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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도보여행#키질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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