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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어쩐다….'

 

무거운 한숨이 튀어나왔다. 원래 오늘은 오아하까 주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할라파(Jalapa)까지 가려고 했다. 그런데 중간에 산을 넘는 바람에 그만 길 위에서 일몰을 맞고 있었다. 사위가 어둑해질수록 선택의 여지는 줄어든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만도 없는 노릇.

 

산악지역만큼 지도의 직선거리를 왜곡시키는 곳이 없다. 지형을 고려해 코스 일정을 짜 보아도 도로의 경사와 굴곡, 그리고 날씨 등의 변수가 내 판단의 그름을 거칠게 쏘아붙인다. 겁 없이 뛰어든 초행자에 대한 대자연의 텃세인지 모른다.

 

가뜩이나 산길이라 조심스러운데 시야까지 어두워지니 슬슬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쌀쌀한 바람이 뺨을 스치지만 추위를 느끼는 것도 사치인 마냥 더 가속화한 라이딩으로 바람에 맞섰다. 식사를 챙기지 못해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났지만 모든 것은 도착하고 나서 누린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단 1분 동안에도 해가 떨어지는 각도는 날카롭기 때문이다.

 

 

해거름 무렵, 간신히 듬성듬성 보이는 몇 채의 집을 발견했다. 보통은 숙소를 찾는데 있어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도 하지만 어떨 땐 내 직관을 더 신용하기도 한다. 산길이라 한산하다 못해 어둠까지 깔리니 별안간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잠자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그 때 메인도로로부터 파생된 조그만 옆 샛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몇몇 집들이 있는데 여기서 묵을까, 아님 이 길을 따라 한 번 들어가 봐?'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들어갔다가 어차피 다시 나와야 한다고 해서 그냥 교차로 부근에  머물까 고민했다. 하지만 안에는 경찰서가 있단다. 마침 경찰차 한 대가 내 앞을 지나갔다. 경찰이라면 그래도 안전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2km만 더 가면 된다는 말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순전히 경찰서를 가기 위해서였다.

 

"어? 이게 뭐야?"

 

길 따라 쭉 들어간 나는 의외의 상황에 놓이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워낙 외진 곳이고 밖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아 조그만 경찰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상상을 뒤엎었다. 불빛이 가지런히 비치는 골목,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광장, 마을이었다. 이런 오지 산골에 비교적 계획성 있게 꾸며진 막달레나 떼끼시스뜰란(Magdalena Tequisistlan)이란 아담한 마을이 숨어 있던 것이었다. 마치 길을 잘못 든 주인공이 숲을 지나자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만화의 한 장면 같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어안이 벙벙해진 난 일단 광장 중심에 경찰서로 찾아 들어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는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의 비어있는 너른 공간에 잠자리를 허락받았다. 방이 없는 1층 콘크리트 바닥이라 매트리스를 깔고 자야하는 공간이었다. 아쉬운 대로 여기라도 감사하며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워 잠이 들려는 순간 밖에서 "헤이~ 치

노!"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와 손자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나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계단 위에 깔아놓은 매트리스 옆에 걸터앉아 이것저것 물어왔다. 피곤했지만 대답 하나하나 진정어린 마음으로 해 주니 연신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표정으로 질문한다. 그리고는 끝에는 뭐라도 먹지 않겠느냐며 권유하는 걸 거절하자 재차 물어보길래 그럼 콜라나 한 병 마시겠다고 할머니의 청을 받아들였다.

 

고마운 마음에 추리닝 차림으로 밖으로 나와 시원하게 콜라 한 잔을 들이키는데 또다른 한 녀석이 자꾸만 나를 주시한다. 요 녀석이 왜 그런가 싶어 물어보니 아주 당돌하면서도 정 많은 녀석이렷다. 아론(Aron)이라는 여덟 살 아이가 무턱대고 나를 자기 집에 데려가고 싶단다. 다시 왜냐고 물었다.

 

 

"형의 친구를 알고 있어요."

"친구?"

"꼬레아노라면서요? 여기 꼬레아나 두 명이 살아요."

 

녀석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전혀 뜻밖이었다. 아니, 산간지방 그 한적한 도로에서 다시 샛길을 따라 들어온 작은 마을에서 웬 한국인 타령인가? 하지만 아론 옆에서 그의 형 하렛(Jalet)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통에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니들 생긴 게 비슷해서 착각들 하고 있나 본데, 중국인이겠지?"

"아뇨!"

"그럼 혹시 여행하는 일본인 아니니?"

"아니라니깐요! 여기에 우리랑 같이 사는 한국여자들이라니깐요! 일단 우리집 가서 얘기해요. 자, 얼른 가요."

 

아론의 태도엔 200%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녀석들을 따라 집을 가보니 가게를 하는 곳이었다. 보무도 당당히 집에 들어선 아론은 형보다 더 의젓하게 나에 대해 녀석의 할머니와 어머니께 설명하고는 어디서 배웠는지 깜찍한 센스로 마무리 한 마디 날렸다.  

 

"엄마, 이 형 자전거 여행 하느라 배 고플텐데 밥이랑 음료수 줘도 되지? 내가 챙겨줄게."

 

그러더니 재빨리 걸음을 옮겨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고 손수 접시도 날라준다. 도저히 여덟 살짜리 눈치라고는 보여지지 않을 정도다. 식사를 하는 동안 녀석의 어머니로부터 한국인이 정말 이곳에 살고 있다는 확증을 받았다. 또 한 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어디론가 큰 아들을 보내더니 잠시 후 나에게 잠자리를 정리해서 성당으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오늘 밤 내 처소는 거기가 될 것이고 나의 친구들이 바로 성당에 있단 얘기였다.

 

"수녀님으로 오셨어요.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죠. 동네에서 유일한 이방인이기 때문이랍니다. 아마 신부님이 친절히 설명해 주실 거예요."

 

 

나는 여전히 반신반의 하며 짐을 챙겨 성당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드린 에르미니요 신부님이 환대해 주었다. 신부님과 인사를 한 후 거실로 들어선 나는 순간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했다. 동시에 드디어 그들의 말을 믿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식탁 위에는 '맛. 동. 산!'이라고 분명 한국이름으로 만들어진 과자가 놓여 있었다. 너무나 놀랍고 반가워 나는 단숨에 봉지를 매만지며 본토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아아! 어떻게 이런 꼭꼭 숨은 남의 나라 오지 땅에 한국인이 살 수 있는 걸까. 말도 안 된다며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이렇게 기가 막힌 인연의 끈이 이어진 것은 분명 하늘의 뜻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생경스런 상황에서 가슴이 뛰었다. 나는 내 얘기를 할 틈도 없이 먼저 수녀님들의 행방을 캐물었지만 신부님은 느긋하고 온화한 미소로 지금 여기에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파송나온 수녀님들이죠. 한 분은 아나(Ana), 다른 한 분은 엘리자베스(Elizabeth)랍니다. 그런데 마침 오늘 출타 중이시군요. 사역활동 때문에 다른 도시에 가셨거든요. 그분들은 아마도 내일이나 어쩌면 모레쯤 돌아오실 겁니다. 괜찮다면 여기서 기다린 다음 만나 뵙는 게 어떨런지요?"

 

 

편한 이곳에서 천천히 기다릴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분들이 차로 한 시간, 그러니까 자전거로 하루거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곳으로 달려가기로 했다. 다른 이유가 없었다. 다만 한국인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감정 때문이리라.

 

신부님께서 적어주신 주소를 받아들고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콘크리트 바닥보다 백만 배는 좋은 푹신한 침대에 눈을 감았다. 소풍 떠나기 전날 아이처럼 설레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멕시코#세계일주#자전거여행#라이딩인아메리카#오아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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