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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압박을 받아오던 대전시의회 김남욱 의장이 오는 3월 임시회 이후 사퇴 명분이 마련되면 명예롭게 사퇴하겠다는 견해를 지난 11일 열린 의원간담회에서 밝혔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 진퇴의 모양새도 중요한 만큼,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는 것이 김 의장의 뜻이라는 것이다.

 

정치인이 어떤 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모습을 우리는 그리 쉽게 목격하지 못한다. 최근 사퇴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모습에서 보듯이 '어차피 사퇴할 것이라면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많은 국민들의 지적은 김 내정자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인 또는 행정수장에 해당한다.

 

어떻게든 자리를 지켜보려고 아등바등하다가, 또는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결백하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더 큰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서야 물러나는 모습은 참 불명예스럽고 추잡스럽기까지 하다.

 

과연 그렇게 며칠, 또는 몇 달을 버텨서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명예가 지켜진 사례가 있는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내고 떠난 사례가 있느냐 말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들이 차지한 자리가 얼마나 좋은 자리이면, 또 얼마나 명예로운 자리이면, 그렇게 놓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김남욱 의장의 '명예롭게 물러날 명분' 운운은 어쩌면 이해할 만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명예롭게 물러나겠다'는 그 말에 코웃음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다.

 

대전시의회 하반기 의장단 구성 과정에서 발생한 '감표도장' 부정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7월 대전시의회 하반기 의장단 구성 과정이다. 어느 지방의회에서나 나타나는 폐해지만, 지방의원들의 자리다툼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지방의회는 미리 '누구파', '누구파'를 나누어 담합하고, 합숙을 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막상 투표일이 다가오면 배신해서 큰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전시의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김남욱 의장을 의장으로 밀고 있는 이른바 주류파들은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을 확보한 채 전날 모처에서 모임을 열고, 다음날 투표에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이번 투표의 감표위원인 김태훈 의원은 주류파에 속했고, 감표도장을 찍으면서 자파의원들의 투표행위, 즉 혹 배신하는 사람이 없을까 해서 감표도장의 방향을 의원마다 달리하며 찍었던 것이다. 분명히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속에 19표 중 10표를 획득한 김남욱 의원이 새로운 의장으로 당선됐고, 부의장 2명도 김 의장파에서 모두 배출됐다.

 

문제는 김태훈 의원의 부정행위가 우여곡절 끝에 발각되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 대전시의회의 갈등과 파행이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의장단을 비롯한 상임위원장 자리 하나도 얻지 못한 '비주류파' 의원들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의장불신임안'을 제출했고, 또 법원에 '대전시의회 의장선거 투표함 증거보전신청'을 제출했다.

 

법원의 확인 결과, 의원들의 투표용지 감표도장이 비정상적으로 찍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의원들 간의 합의를 권고했지만, 비주류파의 의장단 사퇴 주장에 주류파가 맞서면서 6개월여의 의회 파행을 몰고 왔다.

 

과연 중요한 명분은 무엇인가

 

그러자 이번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시의원 19명 전원을 비밀 선거와 무기명 선거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들은 시민의 대표로서 자격이 없는 김남욱 의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왜 자신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논리를 내세워 사퇴를 거부했다.

 

비주류파와 시민단체의 사퇴 요구에 대응하는 김 의장의 발언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 2008년 7월 9일 (의장선거 다음날)

"의장단 선거 및 상임위원장 선거에서는 법률적 문제나 또는 회의, 선거 규칙에 어긋난 부분은 전혀 없었다. 아무런 절차적 하자도 없다. 이미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선출되었는데 사퇴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2008년 8월 12일 (법원의 투표함 현장검증 후)

"의장사퇴 요구는 법률적으로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 동의하기 어렵다."

 

- 2008년 10월 28일 (검찰의 김태훈 의원 기소 후)

"대화합을 전제로 금명간 사퇴를 포함한 거취를 결정, 발표하겠다."

 

- 2009년 1월 7일(법원이 김태훈 의원에게 벌금 500만원 선고 후)

"지금은 의회가 화합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의회의 화합 여부를 조금 더 지켜본 뒤 입장을 밝히겠다."

 

- 2009년 2월 2일 (지방일간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거취 표명 시기 등은 상반기를 넘기지 않겠다. 그러나 남은 임기를 채울 생각은 전혀 없다."

 

- 2009년 2월 3일 (임시회 개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나를 지지해준 과반수의 의원이 사퇴를 권고하지 않는 한 사퇴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에 의해 의장직을 그만두는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

 

- 2009년 2월 5일 (의원간담회 자리에서)

 "빠른 시일 내에 반드시 책임지겠다. 11일 입장을 밝히겠다."

 

- 2009년 2월 11일 (의원 간담회 자리에서)

"3월 임시회 이후 사퇴 명분이 마련되면 명예롭게 사퇴하겠다. 정치인으로서 진퇴의 모양새도 중요한 만큼,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

 

참 우습다. 우습기 짝이 없다. 이렇게 말장난을 이어 가면서 지켜야 할 명예가 무엇일까? 과연 김 의장이 생각하는 명예로운 사퇴의 명분은 어떤 것일까?

 

한시라도 빨리 의회 파행의 원인이었던 자신이 자리에서 물러나 시의회가 진정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의회로 정상화되는 것이 가장 큰 명분이 아닐까?

 

시민단체의 사퇴 요구에 대해 '제3자가, 외부세력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라고 반응하는 김 의장에게 중요한 명분은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깨끗하게 '내 탓이오'하고 책임지는 모습, 정령 볼 수 없는 일인가

 

김석기 내정자가 자신의 서명에 의해 출동한 경찰특공대원의 희생 앞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러면서도 검찰에 보낸 서면답변에서는 당시 무전기를 꺼 놨었다고 답변했다.

 

그 위험한 곳에 부하들을 투입시켜 놓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특공대 투입 결정에 대해) 구두로만 보고 받았다'고 대답했다가 결재 서명을 들이밀자 마지못해 서명을 시인하고, 거기에 더해 긴박한 작전 상황에서 무전기를 꺼 놓았다고 답변하는 뻔뻔한 태도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분노해야 했던가?

 

김 내정자는 퇴임식에서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따라 이제 떠나는 자신은 명예로운 사퇴라고 생각하면서 억울함의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그의 사퇴를 명예롭게 보아줄 리 만무하다.

 

그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버텨왔던 지난 몇 주 동안 국민들 가슴에는 멍이 들었다. 아무리 큰 사건이 발생하고, 큰 잘못이 저질러져도 깨끗하게 '내 탓이오'하고 책임지는 모습은 정령 볼 수 없는 일이란 말인가?

 

김남욱 의장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명예가 그렇게 중요해서 시기와 명분이 필요하다면, 그러한 미적대는 태도에 분노하고, 상처받는 시민들의 가슴은 왜 헤아리지 못하는가 묻고 싶다.

 

과연 3월이 오면, 김 의장의 명예로운 사퇴는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대전시의회#김남욱#대전시의장#김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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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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