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기자가 보기에는 누가 이길 것 같나요?"

요즘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송전탑 공사를 두고 한국전력공사(아래 한전)가 이길 것인지, 주민들이 이길 것인지를 묻는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한테 역으로 다시 물으면 그 사람 또한 머뭇거린다.

한전은 지난 2일부터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건설 공사를 재개했는데, 20일 현재 9곳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전은 밀양 4개면(산외·부북·단장·상동면)에 총 52기의 철탑을 건설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신고리핵발전소 3호기의 제어케이블 부품 성능시험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가운데,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17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주민 발언을 들으면서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
 신고리핵발전소 3호기의 제어케이블 부품 성능시험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가운데,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17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주민 발언을 들으면서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그동안 한전은 공사를 벌이다 중단하기를 반복했다. 지난 5월 말에는 공권력 일부만 투입되었지만, 10월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됐다. 전국 일선 경찰서에서 경찰관과 의경들이 차출되어 공사 현장은 물론, 진입로까지 '철통 봉쇄' 하고 있다. 거의 매일 3000여 명의 경찰력이 동원되고 있다.

한전은 경찰의 보호 속에 공사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공사장 진입로에 주민들이 농성하면 경찰은 도로교통법 위반 등을 이유로 주민들은 옆으로 밀어내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계속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한전은 헬기로 공사 장비·자재를 운반하고 트럭을 동원하기도 한다. 한전은 주말뿐만 아니라 야간에도 작업을 벌인다. 지금까지는 철탑 현장의 진입로 개설과 기초굴착에다 철근을 묶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철근 작업이 마무리 되면 콘크리트를 넣는 작업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레미콘 차량이 들어가야 한다. 주민들은 레미콘 차량 출입을 막겠다며 진입로에서 농성하고 있다. 특히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 쪽에서는 진입로 농성과 관련해 경찰과 주민 사이에 충돌이 잦다.

법원도 한전에 유리한 결정을 하고 있다.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은 한전이 주민을 포함한 25명을 상대로 냈던 공사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한전이 요구했던 간접강제금(각 100만 원)은 기각했다. 법원은 공사를 방해하면 처벌될 수 있다는 내용의 결정 고시문을 현장에 부착했다.

송전탑 공사와 관련해 벌써 2명이 구속됐다. 이상홍 경주환경연합 사무국장과 주민 박아무개(57)씨가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됐다.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선 주민들이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계속 연행되고 있는 속에, 주민들의 걱정거리는 더 높아가고 있다.

한전은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호기의 부품 성능시험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송전선로 공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원전 3·4호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경남 창녕에 있는 북경남변전소까지 가져가기 위해 필요한 시설이다.

한국전력공사는 밀양 구간의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송전철탑 공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89번 철탑 현장에서 야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밀양 구간의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송전철탑 공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89번 철탑 현장에서 야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한국전력공사

관련사진보기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신고리원전 3·4호기 가동이 연기될 것이 뻔하기에 송전탑 공사 강행의 명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한전은 부품 교체를 통해 1년 안에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전은 그동안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는데, 더 이상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된 지금 이때 송전탑 공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송전탑 공사 막겠다는 계속되는 주민들의 몸부림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한 주민들의 몸부림은 멈추지 않고 있다. 경찰에 연행되거나 병원에 후송되는 사태가 속출하는데도 주민들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법원의 공사방해금지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주민들은 밤샘 노숙·움막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8일 바드리마을 진입로 농성장에서 만난 손옥자(62·동화전마을)씨는 "공사 재개한 지 보름이 훨씬 지났지만, 그동안 집에 들어가 자본 날짜가 3일 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곳에서 밤샘 노숙하고 있는데, 죽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가을 추수도 미루었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 빼앗기는데 가을 추수가 중요하냐"고 한다. 한 번 병원에 후송되었다가 바드리마을 진입로 농성장에 다시 나온 김필귀(75) 할머니는 "타작도 다 못했는데 송전탑을 막아야 하기에 나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억울하고 분하다는 말을 계속한다. 한전과 경찰, 정부에 대한 원망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한전이 송전탑으로 건강·재산 피해를 크게 만들고, 경찰이 농성자를 짐승 취급한다며 억울하고 분하다는 것이다.

재산 피해가 제일 크다. 금융기관들은 송전탑 경과지는 담보가 되지 않아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까지 한다. 부동산을 내놓아도 거래 자체가 안 된다. 밀양시 단장면에 사는 한 주민은 몇 해 전에 집을 내놓았는데, 최근에 매매가 성사되었다. 그것도 4억 원 정도 하는 집인데 매매가는 1억5000만 원 정도였다.

밀양 송전탑 공사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으면서, 129번 철탑(원안) 현장 쪽에 새로 움막을 설치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으면서, 129번 철탑(원안) 현장 쪽에 새로 움막을 설치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9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새로 설치했다. 사진은 127번 철탑 현장의 움막농성장에서 바라본 모습.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9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새로 설치했다. 사진은 127번 철탑 현장의 움막농성장에서 바라본 모습.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주민 공동체가 깨진 지는 이미 오래 됐다. 주민들은 송전탑 찬성·반대로 갈라섰다. 한 동네에 초상이 나도 가지 않는다. 집 앞에 감시 카메라까지 생겨났다. 밀양시 부북면 도방·지시골마을의 송전탑 찬성 주민의 집 앞에는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주민들 끼리 고소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있다. 철탑 공사 현장에 움막을 지어놓은 주민들은 구덩이(무덤)까지 파놓았다. 특히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127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 바로 앞에 성인 2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구덩이를 파놓았다. 경찰이 주민들을 끌어내기 위해 들어오면 구덩이 안에 들어가 저항하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구덩이에 '오물통'까지 갖다 놓았다.

또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쪽 주민들은 129번 철탑 현장에 움막농성장을 최근에 새로 지었다. 주민들은 아직 이곳에 언론은 물론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민심이 천심... 철탑 1기라도 막을 것"

127번 철탑 현장 움막에서 농성하고 있는 한옥순(66)씨는 "민심이 천심이다"며 "신고리원전 3호기 부품 성능시험에서 실패했는데, 송전탑 공사 중단 요구는 점점 더 커질 것이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 움막에는 태극기를 매달아 놓았다. 이곳 주민들은 "우리는 장기전에 대비한다, 한두 달 안에 끝날 일이 아니고 1년이고 2년이고 싸울 것"이라며 "송전탑 52기 중에 1기라도 못 세우면 송전선로는 안 되는 것인데, 우리는 나중에 1기라도 막기 위해 싸울 것"이라 다짐하고 있다.

한씨는 "나는 송전탑 때문에 경찰서에 수없이 불리어 갔고, 벌금과 손해배상소송도 당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교사 출신인 이남우(71)씨의 부인이다. 몇 해 전 땅과 집을 자식(아들 2, 딸 1) 앞으로 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씨는 "만약에 재산을 자식 앞으로 빼돌려 놓았다면 우리 부부가 이렇게 송전탑 반대에 앞장서도 명분이 서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부부는 벌금·손배소 등으로 재산을 다 빼앗기면 움막에 살 것이라 각오한다"고 말했다. 또 한씨는 "바깥양반(이남우) 앞으로 연금이 얼마 나오는데, 송전탑 반대 대책위 활동비로 거의 다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으면서 움막 바로 앞에 구덩이를 파놓고, 오물통을 갖다 놓았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으면서 움막 바로 앞에 구덩이를 파놓고, 오물통을 갖다 놓았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16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진입로에서 송전탑 공사 차량의 진출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던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 제압된 뒤 도로 옆 대추나무밭에 모여 있다.
 16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진입로에서 송전탑 공사 차량의 진출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던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 제압된 뒤 도로 옆 대추나무밭에 모여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곽정섭(67)씨는 며칠 전 서울을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왔다. 곽씨는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가 '전기도 모자라는데 송전탑 공사를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 난리를 쳤다"며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교사 출신인 이남우씨는 "지금 정부·한전 관계자들은 <국민윤리> 책 한 페이지도 보지 않았던 것 같고, 사회정의와 인간존엄성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으로 민심을 헤아려야 한다, 지금 보면 자기 아버지(박정희)보다 더 한 것 같다, 유신 후예들이 둘러 싸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금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정부와 한전이 어떤 고통을 주더라도 송전탑 공사만은 막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가을 추수가 마무리 되면 농성에는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누가 시켜서 송전탑 반대에 나선 게 아니다. 60~80대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스스로 판단해 '죽으라'고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섰다. 주민들은 '보상이 필요 없다'고 외치며 아름다운 밀양 땅에서 살도록 해달라고 호소한다.

한전은 밀양에 송전탑을 다 세울 수 있을지, 경찰은 언제까지 밀양에 대규모 공권력을 유지할지, 주민들은 언제까지 싸울지에 대해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한전과 주민 가운데 '누가 이길 것이냐'는 '누가 질기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누가 이기기보다 지금이라도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국민의 관심거리이자 현안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부처, 여야 정치권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를 떠나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태그:#밀양 송전탑, #한국전력공사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