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2013년 6월까지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6살 차이 나는 남편과 함께 산 지 만 8년이 된 신아무개(73)씨는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부부동반 모임에도 함께 가며 무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그들에게 시련이 닥친 건 4년 전. 남편이 암에 걸리면서부터다. 3~4달 전부터는 집과 병원을 계속 오가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의사는 '더 손쓸 게 없다'며 추가치료를 포기했다.

2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만난 신씨는 아들에게 "방금 아버지는 응급실로 옮기셨고 입원수속을 해야 할 거 같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수속을 밟는 데 따라가지는 않았다. 4년을 꼬박 간호했지만 신씨는 남편의 '보호자'로서 대우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률상 남편과 신씨는 서로 남남이다. 남편과 신씨는 8년째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반자인 상태. 아들 역시 남편 전처의 아들이지 법률상 모자관계는 아니다. 그래도 8년 째 서로를 '어머니-아들'이라 부르며 한 식구로 지냈다.

"입원수속 같은 걸 내가 못할 때, 그때 좀 서글프네요. 우린 부부인데…. 다 아들이 하니까 그러려니 하긴 하지만…."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신씨의 자식 4명 역시 지금 남편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따랐다. 주변인들은 이미 신씨 내외를 '동거인'이 아닌 부부로 인식하고 있다. 신씨는 그럼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를 "또 어느 호적에 오르고, 등본을 떼면 내 자식들이 어느 밑으로 들어가게 되고 복잡해지는 게 싫었다, 남편은 가진 재산이 나중에 분쟁거리가 될 걸 우려한 거 같다"라고 설명했다.

쌍방 합의하에 동반자로 지낸 세월이 이제 9년을 바라보고 있다. 

진선미 의원, 10월 안에 동반자법 발의 예정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 의원은 부부로 지냈지만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거인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보호하는 법(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 이하 '동반자법')을 10월 내에 발의할 예정이다.

진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법적으로 생활동반자의 권한이 명시될 뿐만 아니라  법으로 규정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까지도 바뀔 것이라 기대한다"라며 "둘의 관계를 인정하면 병원 수속 등 민간영역도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신씨처럼 사실혼 관계임에도 동반자의 입원수속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안에 따르면, 성년이 된 사람이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며 관계의 효력은 가정법원에 당사자 쌍방이 연서한 서면을 신고함으로써 발생된다.

신씨처럼 동거를 선택하는 이들이 증가하니 자발적으로 그 관계를 신고할 수 있는 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실제 결혼식 비용이 없어서 동거부터 시작하든, 먼저 동거한 뒤 결혼 여부를 가늠하든, 재산 분쟁 때문에 혼인 신고를 미루든, 자식들이 반대해 결혼을 못하든, 모두 각자의 사정에 의해 동거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신씨의 사례를 보듯, 동거는 더 이상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회 인식도 차츰 변하고 있다. 2011년 발간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가족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사는 것'에 찬성한 비율이 50.6%로 나났다. 2012년 통계청이 공개한 사회조사 결과에서도 '동거할 수 있다'는 반응이 45.9%로 나타났다. 2년 전보다 5.4%p 상승한 수치다.

그러나 우리 사회 내 동거인의 규모는 명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다. 동거 찬성 의견이 증가하는데도 한켠에 사회 편견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진 의원은 "동거하는 분들이 정말 많음에도, 그들에게 씌워지는 편견이 있어서 자기 상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라며 "그래서 목소리가 모아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집단화되지 못하는 동반자들의 목소리는 힘이 없고, 여전히 동거인들은 법의 외곽에 있다. 이에 진 의원은 동반자법과 더불어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10개의 일부개정법률안도 함께 발의 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10개 개정안은, 임대조건에 관한 기준에서 생활동반자관계를 부부에 준해서 보고(임대주택법 개정 사항) 생활동반자 역시 혼인 배우자와 마찬가지로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하며(소득세법 개정 사항), 자녀 출산·양육을 위한 지원을 받도록 하고(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 사항), 가족구성원이 동반자를 포함해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받게 하는(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 사항)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진 의원은 "법률적 혜택도 중요하지만 동반자법으로 동반자들의 결합이 폄하되는 차별 의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라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만든 제도가 어느 시점부터는 그 사회에 맞지 않으면 '수선'해 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동반자법' 출산율 상승에 기여할 것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유성호

동반자법 통과로 기대되는 또 다른 긍정적 효과는 바로 출산율 상승이다. 실제 공동생활약정(PACS : 동거 커플에 대한 법적 지원이 보장 됨. 1999년 제정)법이 적용되는 프랑스의 경우 혼외출산 아이를 차별하지 않는 방식으로 출산율을 높이고 있다.

PACS법에 따라 프랑스 국민은 미혼이어도 자녀를 양육하면 각종 휴가와 수당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에 프랑스 출산율은 1993년 1.6명이었으나 2012년 2.01명까지 상승했다. 물론 출산을 지원하는 각종 정책들이 프랑스 출산율을 높인 직접적 원인이지만, 동거 가정의 아이도 차별 없이 모든 혜택을 받게 한 PACS 제도 역시 출산율 증대에 기여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프랑스 내 10쌍 커플 중 9쌍(2006년 의회 보고서)이 동거를 선택했고 48.3%가 혼외출산을 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진 의원은 "지금 '초고령화 초저출산화 시대'를 얘기한다, 엄청난 위기감을 부추기면서도 '혼인'이라는 법적 제도는 다양한 동반자 형태에 손을 놓고 있다"라며 "사회가 그렇게 위기라면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좀 살아봐'라고 권장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는 출산율이 늘고, 부모가 결혼하기 전 태어난 아이들이 전체의 80~90%에 달한다"라며 "프랑스는 PACS법을 통해 동거 가정의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해 준다, 우리도 출산율을 권장하는 효과가 있는 제도는 다 도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생활동반자법#동거#진선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