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 하순이면 수업 1시간을 할애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에 관한 계기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뿐 아니라, 학생회 임원들이 대표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교내 방송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어주는 것도, 이곳 광주의 중고등학교에선 이맘때쯤 빠지지 않는 학사일정 중의 하나다. 나아가 교내에 분향소를 설치하거나, 5.18 음악회 등을 열어 그 의미를 되새기는 학교도 있다. 5.18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광주 시민의 몸에 각인된 'DNA' 같은 것이다.
올해 계기수업은 특별히 '공수부대원과 아이히만'을 주제로 삼았다. 5.18 당시 '화려한 휴가'를 나온 공수부대원들과 수백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충직한' 군인 아이히만을 비교하며 인간의 본성과 그들의 책임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다. 또, 그들의 야만적 행위에 대한 우리나라와 독일의 처벌과 역사적 평가를 두루 비교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기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오로지 히틀러에게만 물을 순 없다. 5.18 역시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 한 사람에게만 학살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건 진실을 밝히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아이히만의 책임이 명령권자인 히틀러 못지않다는 맥락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당시 공수부대원들이 져야할 책임 또한 결코 작지 않다고 봤다. 아무튼 홀로코스트와 5월 광주는 그렇게 엮였다.
그런데,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로 여겨서일까. 아이들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보여주는 흑백 사진과 영상을 보고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5.18 사진 앞에서는 사뭇 달랐다. 공수부대원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몽둥이질을 해대고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시민들이 숨진 채 도로 위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을 보고는 다들 경악했다. 그 와중에 한 아이가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많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저 군인들은 이후 어떤 처벌을 받았나요? 설령 처벌을 받았다고 해도 양심의 가책 때문에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지는 못할 것 같아요. 만약 살아있다면 지금 환갑쯤 됐을 텐데, 저 같으면 지금껏 수십 년 동안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단 하루도 발 뻗고 자지 못했을 것 같아요."나치가 패망한 뒤 도피 생활을 하다 체포된 아이히만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과문한 탓인지, 시민을 학살한 공수부대원들 중 법적 처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하긴 '반란 수괴' 전두환조차 모르쇠로 일관하며 당시 발포명령자조차 밝혀내지 못한 상태로 36년이라는 세월을 허송한 마당에 그들만 단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히틀러는 버젓이 살아있는데, 그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아이히만에게 그 죄를 대신 치르게 할 순 없잖은가.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떻든 학살을 자행한 공수부대원들의 죄를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정에서 군인으로서 직속상관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며 항변한 아이히만을 두고 '생각 없음이 죄'라고 갈파한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지적을 그대로 인용했다. 곧, 5.18 당시 공수부대원과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 아이히만은 그 '죄질'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거죠.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피해 규모 운운하며 600만 명과 600명이라는 희생자 수부터 따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외려 5.18 학살에 대한 책임을 두루뭉수리 물 타기하려는 꼼수에 속아 넘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 달 가까이 지난 계기 수업 이야기를 굳이 다시 꺼낸 건, 며칠 전 국가보훈처가 광주에서 열리게 될 6.25 전쟁 66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11공수특전여단(이하 11공수)을 동원할 계획이라는 뉴스를 들어서다. 주지하다시피 11공수는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던 그 부대다. 몇몇 아이들도 그 소식을 들었던지, 수업시간 죄에 있어서 아이히만 못지않다고 결론지어진 공수부대원 이야기가 다시 화제가 됐다.
아이들은 "5.18이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마당에 11공수는 그때 해체됐어야 하는 부대 아니냐"며 반문했다. 아무리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게 군인이라지만,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부대가 지금껏 그대로 남아있다는 건 우리 국군의 수치라는 거다. 한 아이는 지난 세월호 참사 때 구조 실패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조차 해체시킨 나라인데, 그깟 부대 하나를 손 못 대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선 군인이 '갑'인 모양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광주 시민들은 물론, 야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국가보훈처는 행사 계획을 황급히 취소하긴 했지만, 예정대로라면 11공수는 5.18의 뜨거웠던 현장인 금남로에서 시민들 앞에서 특공무술 시범을 펼칠 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도 건재함을 과시하는 그들의 '쇼'를 광주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배례모와 군복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많은 광주 시민들에게 11공수는 그 이름만으로도 여전히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행사를 주관한 국가보훈처가 이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뻔히 알고도 그런 계획을 세웠다면, 5.18 정신 나아가 민주화운동 전체를 노골적으로 폄훼하는 반민주적 행태이며,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뒤엎으려는 야만 행위다. 만에 하나 몰랐다면,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할 줄 모르는 이들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국가보훈처야말로 '일베'의 소굴"이라는 아이들의 조롱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이번 일로 아이들도 '박승춘'이라는 이름을 모두 알게 됐다. 그가 지난 번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 때 제창하도록 하자는 국민들의 요구에 몽니를 부렸다는 사실까지 덤으로 알게 됐다. 5.18을 폄훼하고 조롱하는 일부 패륜적인 집단에 되레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막장 행태에 대해 한 아이는 분노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가만히 보면 저 분은 '관심 종자' 같아요. 주목을 받고 싶어 온갖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 사람 말이에요.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민주화운동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생떼를 쓰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곧바로 해임시키는 게 당연한 조치일 텐데, 나 몰라라 하며 되레 해임 요구에 귀를 막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죠.우리 현대사에서 '광주'는 곧 '민주'라고 배웠는데, 5.18을 욕보이고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국가보훈처장과 대통령이 그렇듯 한통속이라면, 이제 '박승춘'의 해임에 목 매달 게 아니라, '박근혜'의 탄핵을 당당히 요구해야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