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기자말] |
복지관에서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과 글쓰기를 한다. 우연히 만난 다른 강사가 복지관 강사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걸 듣고는 페이 낮은 일을 왜 하냐고 물었다. 나는 진짜 '왜'가 궁금한 줄 알고 성의껏 대답했다. 그랬더니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질문을 가장한 무례함이 읽혔다.
"그래도 일에 비해 페이가 낮지 않아요?"
나는 광대를 살짝 올리고 눈꼬리는 부드럽게 내린 채 상냥하게 대답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오래 일하기라고 생각해서요."
"페이 적은 일은 내 가치를 깎는다는 걸 모르나요?"
"최고의 노후 대책은 오래 일하기라고 생각해서요."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하는 게 어때요?"
"최고의 노후 대책은 오래 일하기라고 생각해서요."
생글생글 웃으며 토씨 하나 안 틀린 대답을 반복했다. 세 번째 대답을 했을 때 그 사람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이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같은 대답을 다정하게 반복하는 건 무례한 질문을 무력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르신들은 이미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 인생을 '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칭찬이다. 칭찬에 미소는 기본인데 미소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었다.
어느 수업에서 남자 어르신의 식사 제안을 받았다. 둘만 만나기는 부담스러웠고 다음 일정도 있는 터라 두 번 연속 거절했다. 그랬더니 3주차에 그 어르신은 수업을 철회를 하셨다. 철회 이유는 '강사가 불친절함'이었다.
다른 수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전략을 바꿨다. 광대는 살짝 올리고 눈꼬리는 부드럽게 내리며 대답했다.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그건 어렵겠네요."
"밥 그거 30분이면 먹는데 그 시간도 없어요?"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그건 어렵겠네요."
"내가 글을 좀 더 잘 써보려고 해요. 밥 먹으면서 힌트 좀 줄 수 있잖아요?"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그건 어렵겠네요."
교실을 나가던 다른 어르신이 '젊은 사람들은 원래 바쁘니 빨리 나오라'며 말을 보탰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그분은 2주간 결석하더니 수업 철회를 했다. 사유는 '건강상 문제'였다.
상대방의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다칠 수도 있기에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일은 분명 부담스럽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다보니 다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라간 광대와 부드럽게 내려간 눈꼬리가 생각보다 간단하게 상황을 해결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간직한 이야기를 수업에서 선명하게 풀어내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 풀어낸 이야기에 뿌듯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 믿음은 이 일을 되도록 오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만든다. 그러니 어쩌다 치고 들어오는 무례함을 무력화 시키는 건 이 일의 지속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든 좋은 면만 있을 수는 없을 터, 예상 못한 공격을 가볍게 받아치는 단단함을 쌓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은 우선 올라간 광대와 부드럽게 내려간 눈꼬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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