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기념비를 그 자리에 돌려놓아라

[정윤수 칼럼] 미당 유택 · 박정희 글씨 등도 남아있는데...

등록 2004.01.12 11:42수정 2004.01.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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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서정주 시인의 유택을 보존키로 하고 7억5천만원을 들여 관악구 남현동의 봉산산방을 매입했다고 한다. 미당이 30년 동안 살면서 문단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는데, 작고 후 그 유택은 작년 11월에 건설업자에게 팔려 다세대주택으로 재건축될 참이었으나 서울시의 매입 결정으로 일단 그 자취는 남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잘 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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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민노당 최장준씨. 그 옆에 구한말의 교육기관을 기념하는 표석이 있다. ⓒ 정윤수

논란이 없지 않은 미당이지만 그 흔적이 아예 없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육당 최남선의 우이동 고택, 빙허 현진건의 부암동 고택이 포크레인으로 사라진 마당에 미당의 흔적도 사라진다면 그것은 냉정한 평가를 위한 상징적 공간마저 멸실되는 것이다. 미당의 고택 마루에서 20세기 한복판을 관통한 시인의 삶에 대하여, 시인 고은이 표현한 바, 실로 '한여름에 담장을 넘어가는 구렁이'의 능란한 언어와 오욕의 처세에 대하여 숙고한다는 것은 하나의 포즈가 아니라 절실한 현장 학습이 된다.

미당의 빈곤한 역사의식과 그 훼절에 대하여 비판을 하는 사람이나 그의 문학적 업적을 따로 떼어내 존수하는 사람이나, 혹은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라는 그의 [자화상]을 십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나 유택의 상징성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역사적 흔적은 단순한 추념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학습의 장이다. 더욱이 그 흔적이 과거 어느 한 때가 아니라 지금 이 당대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형성해낸 것이라면 더욱더 학습 효과는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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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대학교에는 지난 민주화 과정에서 숨져간 젊은 넋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를테면 그 잔디의 한켠에서 청춘의 호르몬을 못이겨 떠들고 깔깔 웃다가도 문득 그 추모비를 보고 차마 민망하여 자리라도 옮긴다면 그 자체로 이미 역사는, 그 흔적은, 고인의 넋은 역사 교사의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촛불 기념비를 냉큼 철거해버린 종로구청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몰상식한 행동의 총괄 책임자인 김충용 구청장의 어이없는 발언은 울컥 화가 치미기 보다는 오히려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데 그 발언의 내용과 수준으로 보건대 공무를 담당하는 책임있는 공무원의 소명의식, 아니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이 그저 일반적인 시민의 상식과 감수성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를테면 기념비의 글씨체가 '북한체'라는 것이다. 구청장은 일반 궁서체로 쓰여진 관내의 수많은 안내판이나 표석들, 그리고 전국 각지의 묘비명 글씨체를 보면서 어떻게 성묘라도 가는지 궁금하다. 종로구청 안내 데스크의 글씨체와 추모비는 거의 흡사한데 왜 유독 그 '관공서체'는 그대로 놔두는지 묻고 싶다.

통행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철거했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그 현장을 확인해보면 터무니없다. 교보문고 앞 가로수 두 그루 사이의 추모비가 어떻게 통행에 지장을 준다는 것인지. 만약 기념비 때문에 통행이 어렵다면 아마 그 사람은 인도로 걷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마치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처럼 버스 안내판을 올라가고 휴지통을 타넘고 가로수 사이를 빙빙 돌다가 그만 기념비에 걸려 넘어졌다면 통행에 지장을 준 셈인데 세상에 그런 사람도 없거니와 누가 기념비를 세우면서 사람들이 지나가기 어렵도록 하겠는가. 기념비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못마땅하고 불편해서 그런 몰염치한 행동을 한 것에 불과하다.

통행 불편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김충용 구청장은 관할 종로구가 얼마나 걷기 불편한 비인간적 공간인지 한번 확인해보기 바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관용차로 폼나게 드나들지 말고 종로구청 정문을 한번 걸어보기 바란다. 인도조차 제대로 없는 구청 앞은 수많은 차량과 행인과 민원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조합의 접촉 사고를 피하기 위해 정말 초조하게 사방을 살피며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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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 앞 횡단보도에는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어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 정윤수

핵심은 김충용 구청장의 역사인식이다. 앞의 모든 말들은 엉겁결의 핑계이거나 담당 직원의 궁여지책이다. 누가 압력을 넣었다면 명색이 대한민국 1번지 구청장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겠으나 이미 구조화되고 박제화된 낡은 역사의식, 그렇게 부르기에도 부적절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과 권위적인 관료 의식이 보기 사납게 일그러진 결과이다.

물론 기념비에 대하여 정서적으로 불편하거나 반감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 성동지구당 최창준 위원장과 '소파개정과 한반도평화실현 운동본부'의 이성필 차장의 말에 따르면 기념비에 대하여 심정적으로 불편한 사람들이 자주 항의도 하고 현장에서 시비를 걸기도 했다.

그때마다 양 측이 약간의 옥신각신을 동반한 '토론 아닌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끝내 쌍소리를 하며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 기념비는 그렇게 그 현장에 있음으로 해서 또 하나의 역사 교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열렬한 추모는 둘째치더라도 '그것이 그곳에 있음'으로 해서 교보문고 앞을 약속 장소로 정한 수많은 선남선녀들에게, 순간이나마 자신이 역사의 한 축에 서있음을 가만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광화문을 보라. 거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박혀 있다. 그 앞으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고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다. 그 뿐인가.

한강 하류 행주산성 대첩비, 파주 화석정, 강화도 전적기념비, 수원 농민회관, 충주 충렬사, 강릉 문성사, 안동 하회마을 영모각, 목포 하구언 등 방방곡곡에 박정희 글씨다.

"진충보국, 멸사봉공" 여덟 글자를 혈서로 써서 만주군관학교 입학 허가를 받았다고도 하는 박정희의 글씨인데 아마 맘이 불편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미년 독립만세를 외친 탑골공원의 정문에 만주군관 출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창씨명)가 쓴 현판('삼일문')이 한동안 나붙어 있다가 수 년전 뜻있는 몇몇 시민들의 손에 헐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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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로 쓰여진 '광화문'. ⓒ 정윤수

그럴진대 결코 과실지사 이상의 역사적 무게를 갖는 두 여중생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 한반도의 2002년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촛불 집회의 갸륵한 마음들이 서로 상생하고 응축하여 세워진 기념비. 가로수 두 그루 사이에 가만히 서있음으로써 오히려 많은 말을 나눈 그 기념비 아닌가.

그 상징물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이도 있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도 있다. 그게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촛불 집회의 상징성이 바로 그 자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서로 상충하는 듯 대화하고 시비 붙는 듯 토론하는 것이다.

이를 강제로 철거하여 다양한 의미의 생성을 차단할 권한이 구청장에게는 없다. 강제 철거는 물리력의 충돌과 격렬한 몸싸움만 낳는다. 김충용 구청장에게 결코 이로운 결과도 아니다. 당장 그 자리에 돌려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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