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러 왔다가 끌려간 아버지는 결국..."

[인터뷰] 대전 산내 학살사건 유가족 전숙자 시인

등록 2007.07.31 10:46수정 2007.07.3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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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에서 시를 낭송하던 중 울고 있는 전숙자씨 ⓒ 오마이뉴스 장재완

빈 방에는 새 이불이 정갈하게 깔려 있다. 벽에는 고인이 된 아버지 사진과 자신의 시인 등단 상패를 걸려 있었다.

"아버지, 모든 억울함은 다 풀어버리세요. 남은 문제는 제가 안고 갈 테니 걱정 마세요."

충남 부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전숙자(60)씨. 그녀는 시인이며 소설가이기도 하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그녀는 대전 산내 학살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반백년이 지난 일이건만 아버지를 떠올리는 내내 몇 번씩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가 끌려갈 당시 그는 겨우 첫 돌이 지난 상태였다. 아무것도 기억하는 것은 없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들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기 걷는 거 보겠다고 오셨다 잡혀간 아버지

"우리 아버지 바로 한살 아래 삼촌은 좌익 활동을 했대요. 그 삼촌을 숨겨준 죄로 아버지는 경찰에게 쫓겨 산에 숨어 계셨어요. 어머니가 저를 낳고 3일째 되던 날엔 아버지랑 방 안에 있었는데 경찰이 구두발로 들어와 아버지를 끌고 나갔답니다.

그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허리까지 쌓인 날이었대요. 아버지가 끌려 나가니 어머니가 쫓아갔대요. 산후 조리도 못하고 말이에요. 경찰들이 들어가라고 했지만 아버지를 석방시켜줄 때까지 본인도 안 가겠다고 하면서 경찰서 안에서 그냥 대소변을 다 봤대요."

결국 아버지는 이틀 만에 석방되었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대문 앞에서 쓰러졌다. 외가에서는 산후 조리를 위해 어머니를 데려갔고 갓난아기는 설탕물을 먹으며 지내야 했다.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는 좌익 활동을 그만 뒀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당시 제가 첫 돌이 지나고 걷는다는 소식에 저를 보러 내려오셨다가 잡혀가셨습니다. 그게 1949년 12월 14일 당시 아버지 나이 25세셨어요.

잡혀갈 당시에 아버지는 저를 안고 있었대요. 경찰이 들어와 아버지 멱살을 잡고 일으키니 제가 아래로 떨어졌던 모양이에요. 제가 막 울었더니 경찰이 첫 돌 지난 애기, 저를 그렇게 때리고 집어 던졌대요. 아버지가 경찰한테 애기가 무슨 죄가 있냐고 막 소리치니 경찰이 차고 있던 허리띠를 풀러 아버지를 때렸대요."

그렇게 끌려간 아버지는 서천경찰서에서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다. 약 7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셈이다. 지인이 알려주기를 1950년 7월 4일 쯤에 형무소에서 끌려 나갔다고 했지만 그마저 정확하지 않아 답답할 뿐이라고.

정신 놓은 할아버지 똥빨래 하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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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자씨 아버지 사진과 전씨의 시인 등단 상패 ⓒ 김영선

전씨의 집은 부유하고 남부러울 것 없었던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하에 아들 삼형제와 딸 둘을 두었고 똑똑한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으면서 살았다. 하지만 좌익과 우익의 이념문제는 전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집이 망하니 지붕에 풀이 나더라고요."

아버지가 군경에 의해 총살되기 전, 전씨 위로 4살 위 오빠가 있었지만 우익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독살을 당했다. 막내 삼촌은 연좌제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46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전씨는 "징용을 간 큰고모부를 비롯해 여러 분들이 돌아가셔서 집안에 청상과부가 4명이었다"고 씁쓸해 했다.

본인도 지인의 소개로 미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가지 못했다. "당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서 몰랐지만 훗날 보니 연좌제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며 "나 대신 미국으로 간 사람은 지금 박사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우환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큰아들이 잡혀가고 둘째 아들마저 경찰을 피해 북한으로 탈출하면서 할아버지는 경찰에게 시달려 눈물 마르실 날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집으로 오는 편지는 경찰서로 갔습니다. 경찰들이 집안 구석구석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살폈어요. 감시도 심했고. 경찰들에게 너무 시달리셨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는 인구조사만 한다고 하면 그렇게 우셨어요. 아버지가 잡혀가신 후 할머니는 청각 장애인이 되셨고, 할아버지는 저 11살 때 정신을 놓으셨습니다."

그 때부터 대소변을 못 가리는 할아버지의 빨래는 모두 전씨의 몫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 즉 전씨의 어머니가 보기 안타까워 강제로 출가시켰기 때문이다.

"고모 두 명이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정신을 놓으셔서 저 빼고 다른 사람 모두 '아들을 잡아간 사람'으로 보셨어요. 고모들이 오기만 하면 솥뚜껑이고 낫이고 모두 집어던져서 집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죠. 할아버지가 무서워 동네 사람들도 못 왔어요."

추운 겨울날 맨손으로 빨래를 하다 학교에 늦었다. 선생님이 이유를 물었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절대 대답하지 않았다.

"왜 늦었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절대 대답하지 않았어요. 친구들 앞에서 할아버지 똥빨래 했다고 말하기는 싫었거든요. 그래서 대나무 회초리로 손바닥 열대를 맞았는데, 얼은 손에 맞아서 손이 자줏빛이 되었어요. 나중에야 선생님이 알고는 미안하다며 절 안고 울더라고요."

그렇게 3년을 투병하시던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정신이 돌아오셔서 전씨의 손을 잡고 "나 죽으면 누구랑 사냐"는 한 마디만 남기고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힘든 여생을 보내다 돌아가셨다.

아버지 사진 아래는 시인의 상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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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자씨가 꾸며놓은 아버지 방 ⓒ 김영선

전씨는 11살 때부터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지인이 말해준 음력 5월 21일에 지내고 있다. 고된 시집살이로 힘들 때에도 시집 식구 몰래 탕국을 끓이고 보리밥을 지어 아버지 제사를 모셨을 정도로 극진하다.

"지금도 아버지 제사 준비하면 성에 안 차요. 또 다시 준비하고 그렇게 반복해서 시내에 있는 가게를 몇 번씩 돌아다녀요. 그렇게 살다가 위령제에 참석하게 되었죠. 우연히 산내 위령제 플래카드를 보고 참석한 것이 올해 두 번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고, 그 덕에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받은 상패를 아버지 사진 아래에 걸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이부자리를 깔아 아버지가 편히 쉬시게 방을 꾸며 놓았다. "차라리 산내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몰랐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한 가닥 희망조차 버려진 것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를 짓는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전씨는 그녀의 시 '나는 상중이오'에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임종은 고사하고 아비 죽어/ 반백년 상 못 치루는 불효/ 나는 나는 상중이오".

전씨는 정부와 대전시, 관할 구청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부서 힘써줘서 고맙지만 수박 겉핥기식이고 우는 애 사탕 하나 주는 격 밖에 안 됩니다. 대전 시장이랑 동구청장은 어둡고 추운 사람들 보살펴 줘야지 대우 받고 편한 자리만 참석하려고 하면 어떻게 지역의 어버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실제 대전시장과 암매장지가 있는 산내 골령골 관할 동구청장은 8년 동안 한 번도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 세기가 지나도록 대전시장과 동구청장의 성의 없고 무관심한 태도에 총알 없는 총에 맞아 가슴에 구멍이 나는 심정입니다."

총알없는 총, 그의 가슴에 구멍을 냈다

그의 심장은 선천적인 기형이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니 "모태에 있었을 때부터 너무 많이 놀라 선천적으로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다. 실제로 "아버지가 숨어 다닐 때 경찰들이 방안에 들어와 산모인 어머니에게 총을 겨누고 아버지를 내놓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때문에 어렸을 적 몸이 약해 호적에도 늦게 이름이 올라갔다.

하루 빨리 발굴 작업을 끝내서 암흑 속에 있는 영혼이나마 편안하게 모시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전숙자 #대전 산내 학살 #시인 #나는 상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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